서동 설화는 고대 건국 신화인가?
건국 신화의 서사 구조와 매우 흡사한 서사적 패턴
역사적 현실성이 떨어지는 설화 속 이야기
서동이 마한의 무령왕·백제의 동성왕이었다는 이설
서동이 수도를 익산으로 천도하고 미륵사를 봉축했다는 기록

국보 익산 미륵사지 석탑 전경(2019년, 국가문화유산포털 발췌)
국보 익산 미륵사지 석탑 전경(2019년, 국가문화유산포털 발췌)

[뉴스인] 김태현 =. 들어가며

한국학 중앙연구원 민족문화대백과 사전 정의에 따르면, 설화의 분류는 보통 신화(神話, myth), 전설(傳說, legend), 민담(民譚, folktale)으로 나뉜다. 하지만 설화 가운데에는 신화, 전설, 민담 중 두 가지 이상에 관련되는 것도 많으며, 이 셋 중 어느 것에도 포함시키기 곤란한 것도 있고, 야담·일화 등도 포괄하면서 구전설화와 문헌설화까지도 고려 대상에 넣어야 하기 때문에 설화를 삼분하여 분류하는 것에 문제가 없지는 않다. 따라서 본 기사에서 다루는 서동설화가 신화적 성격을 지니느냐의 여부는 본 기사의 주제로서 유의미한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고 볼 수 있다. 대신 본 기자는 서동설화와 한국 고대 국가 건국 신화와의 유사성 분석을 통해 서동설화가 가지고 있는 건국 신화적 특성을 파악하고, 서동 설화가 단순 전설이나 민담이 아닌 실제 국가 건설과 관련된 역사 기록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유추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기자는 우선 고조선, 부여, 고구려, 신라, 백제, 가야 등 고대 국가 건국 신화의 공통 요소를 추출해 낸 후 이를 서동설화에 직접 대입해 봄으로써 서동 설화가 지니는 건국 신화적 요소를 논의해 보기로 했다. 더불어 실제 역사 기록과 서동설화에 대한 해석학적 분석을 통해 실제 역사 기록과 서동 설화가 내용상 어떤 차이를 지니고 있으며 그 함의는 무엇인지 논의하고, 서동설화가 지니는 단순 설화적 요소와 건국 신화적 요소를 대별해 봤다.

 

. 서동설화와 고대국가건국신화 비교

 

[고대건국신화 공통요소]

 

 

특별한 출생

고행

주체적 여성

신앙성

고조선

천인(환웅)과 곰(웅녀)의 아들

어머니 웅녀의 고행

웅녀

천손신앙, 지신신앙

부여

알에서 출생

출생 전 알 제거 기도.

출생 후 암살 피해 도주.

시비

천손신앙

고구려

알에서 출생

출생 후 암살 피해 도주.

유화부인, 소서노

천손신앙, 지신신앙

신라

알에서 출생

알 수 없음

알영부인

 

알 수 없음

 

백제

인간에게서 출생

유리 위협 피해 도주.

소서노

알 수 없음

가야

알에서 출생

석탈해 등과 대결

허황옥

천손신앙

 

고조선, 부여, 고구려, 신라, 백제, 가야의 건국 신화는 거의 공통적으로특별한 출생을 통해 하늘로부터 신성을 부여받은 지도자가 여성(어머니 혹은 아내)과 함께 고행과 위기라는 통과 의례적 성장통을 치른 후 새로운 나라의 왕이 된다.’라는 동일한 서사적 패턴을 따르고 있다.

백제의 창립자인 온조의 경우 난생(卵生)이 아닌 인간 어미인 소서노를 통해서 태어났다는 기록만이 유일하게 다르고, 신라와 백제의 경우 신앙성을 직접 암시하는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 다른 건국 신화와의 유일한 차이다.

하지만 신라의 경우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박혁거세의 어미가 중국 황실의 딸인 사소라는 기록과 탈해를 거두어 기른아진의선이라는 두 가지 설이 병존하고 있다. 두 서술 모두 하늘을 섬기는 도교적 무속 신앙을 반영하고 있다는 데에선 공통적이며, 이는 다른 건국 신화에서 보여진 신앙성과 상통하는 면이 있다. 신라의 건국 시조인 박혁거세의 경우 고행을 암시하는 기록이 존재하지 않지만, 이미 잘 알려진 가설에 의거해 제정일치사회에서 지도자를 양성하는 임무를 띈 사제 아진의선의 훈육 속에서 자란 것이라 유추할 경우 제사장의 훈육 과정 자체를 고행의 일부로 치환해 볼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백제의 창립자인 온조의 경우만이 유일하게 난생이 아니지만, 천손인 아버지 주몽의 신성한 혈통을 이었다는 점에서 신성(神性) 유전자를 지니고 있는 점 역시 다른 건국 신화 주인공의 출생과 어느 정도 비슷한 연관성 상에 있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끝으로 부여 동명왕의 어머니인 시비, 박혁거세의 부인 알영의 경우 다른 여성 인물들에 비해 적극적 주체성을 보여주는 서술이 비교적 적으나 왕의 위협으로부터 동명왕을 키우는 시비, 남편인 혁거세처럼 알에서 태어나 함께 신라 건국의 주체가 되는 알영의 모습 속에서 건국의 과정에서 비교적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여성성에 대한 단초를 엿볼 수 있다.

 

[서동설화의 건국신화적 요소]

 

 

특별한 출생

고행

주체적 여성

신앙성

서동설화

용의 아들

장사치로 떠 돔

선화공주

미륵신앙

 

서동 설화는 건국 신화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매우 흥미롭게도특별한 출생을 통해 태어난 지도자(서동)가 여성(아내 선화공주)과 함께 고행과 위기(세상을 떠돌다 집에서 쫓겨난 선화 공주를 도와 결혼하게 됨)라는 통과 의례적 성장통을 치른 후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게 된다.’라는 동일한 서사적 패턴을 따르고 있다. 서동은 왕이 된 후, 미륵사를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미륵신앙은 도교적 색채가 강한 불교 신앙이라는 점에서 다른 건국 신화의 신앙성과 상통하는 면이 있다.

서동 설화와 관련해서 한 가지 주의 깊게 봐야 될 지점은 건국 신화 패턴의 마지막 요소인새로운 나라 건국부분인데, 이 점에 대해선 역사 기록과 서동 설화의 타임라인 분석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 역사기록과 서동설화의 해석학적 분석

 

결론부터 이야기하겠다. 중국 북사의 기록에 따르면 무왕의 이름은 부여장으로 위덕왕의 아들이라는 기록이 존재하는 점, 삼국사기나 다른 중국 사서에서는 법왕의 아들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점, 삼국유사에서는 법왕의 아들이라는 데 설화에서는 과부의 아들이라 한다며 이해할 수 없다고 서술하는 점 등 실제 무왕과 서동의 역사 기록은 시기상으로 일치하지 않거나 진위 여부가 불분명하다. 또한, 실제 역사 기록을 보면 무왕은 당시 적대국이었던 신라와 끊임없이 싸웠다고 전해지는데, 적국이었던 신라의 공주와 결혼한 장사치 서동이 백제의 왕이 됐다는 이야기 역시 현실성이 지극히 떨어진다. 백제 무왕이라는 설에 대해서도 역시 마한의 무령왕, 백제의 동성왕이었다는 이설들이 다양하게 존재하기도 한다. 결국 가설의 타당성 확보를 위해 설화 역시 한편으로는 역사적 기록이란 점에서 역사적 사실과 일치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는데, 삼국유사의 기록을 참조하면 다음과 같다.

 

삼국유사 무왕조의 기록에 따른 것으로 그 맨 마지막 각주에 의하면 삼국사에 이르기를 이는 법왕의 아들이다.' 라고 했는데 여기에 전하기를 홀어미의 자식이라 했으니 모를 일이다 라고 언급한 사실에서 삼국유사 편찬자는 서동이 법왕의 아들인 무왕으로 파악하고 있으면서도 다르게 전하는 그의 출신에 대해 몹시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마를 캐는 백제 아이와 신라의 공주재인용)

 

따라서 기자는 여기서부터 서동이 백제 무왕이 아니라는 가설 하에 추론을 전개해 보고자 한다. 본 기사의 목적에 비추어 볼 때 서동이 실제 어느 왕이었는지는 사실 크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또한 실제로 서동 설화가 백제 무왕이 아닌 다른 역사에 대한 기록일 가능성을 전제했을 때, 현실적으로 사료가 지극히 부족한 상황에서는 확실한 근거 하에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할 필요가 존재한다.

따라서 기자는 위에서 고찰한 다른 건국 신화와의 공통점을 근거로 서동 설화가 실은 백제가 아닌 새로운 국가를 창립한 인물의 건국 신화일 가능성을 제기한다. 실제 건국 신화와의 서사적 공통점 외에 서동 설화를 건국 신화로 볼 수 있는 근거는 더 존재한다.‘특별한 출생의 평민 서동이 실은 자신도 모르게 황금을 무수히 지닌 부자였으며 신라 공주와 결혼했다.’라는 점에서서동이 실은 신라와의 연합을 통해 백제에 대항하는 새로운 국가를 설립한 마한의 세력가 혹은 백제의 한계 세력이었다.’라는 가정이 성립될 수 있다. 이는 서동이 수도를 익산으로 천도하고, 미륵사를 봉축했다라는 기록을 통해서 그 타당성이 뒷받침된다. 그리고 익산이란 지역의 고도적 특성-준왕이 천도한 고조선의 마지막 수도, 목지국, 마한 등의 수도였다는 역사적 가설들-과 더불어 익산에 무왕과 선화비의 능이라 알려진 '쌍릉'이 존재하고 있는 점 역시 이와 같은 추론을 뒷받침한다.

 

. 기타 고려 요소

 

서동 설화는 문화학적으로는 광포설화내복에 산다’,‘제주 삼공본풀이’, 일본의마나노장자와 유사한 설화 구조를 지니는데 본 기사의 목적과는 직접적 연관성이 적기 때문에 추가적인 고찰을 생략했다. 이야기 줄거리만 놓고 보면 서동 설화는 바보 온달과 처용의 이야기가 섞인 듯 한 특성을 보이기도 한다. 따라서 서동 설화와 다른 설화의 비교를 통한 연구는 본 기사의 주제와는 직접 연관성이 없지만 추후 연구 주제로서 문화사적 가치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 결론

 

기자는 고대건국신화와 서동설화의 유사성 비교 및 역사 사료 검토와 해석학적 분석을 통해서동 설화가 단순 설화적 기록이 아닌 또 다른 건국 신화일 수도 있다.’라는 가설을 도출했다. 이와 같은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사료와 유적 등 관련 증거들이 필요하지만, 현재 남아있는 기록이 충분치 못한 점은 여전히 한계로 남아있다.

마룡지와 서동 생가터(익산시 문화 관광 사이트 이미지)
마룡지와 서동 생가터(익산시 문화 관광 사이트 이미지)

 

[참고문헌]

 

1. 마를 캐는 백제 아이와 신라의 공주 - 서동과 선화공주 (신라 속의 사랑 사랑속의 신라 - 삼국시대편, 2006. 5. 10., 경인문화사 재인용

 

2. 설화,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3. 박혁거세, 네이버지식백과

 

4. 김희태, 백제 무왕의 출생지로 알려진 익산 마룡지, 서동의 아버지는 누구인가?, http://blog.naver.com/bogirang/221042172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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