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인] 김효헌 = 필자가 다니는 영국교회에 ‘태리’라는 할머니가 계신다. 할머니는 늘 단정한 단발머리로 교회의 광고를 알려주시는 분이시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중풍이 와서 교회를 나오지 못하셨다.

그러다 조금 호전이 되셔서 휠체어를 타고 교회에 나오신다. 할머니 옆에는 늘 다정한 표정으로 할머니를 극진히 모시는 아들이 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 필자도 어느 날 저렇게 병에 걸리면 우리 아들도 ‘태리’의 아들처럼 나를 지극히 보살펴주고 교회도 같이 와 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착한 아들이지만 아마 쉽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주 휠체어를 타고 교회에 오는 ‘태리’를 볼 때마다 참 착한 아들을 둔 복이 많은 할머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친한 리나에게 “태리 할머니는 참 좋겠다. 아들이 늘 저렇게 교회로 모시고 오시니 얼마나 좋을 까? 라고 했다. 그랬더니 리나가 하는 말 ‘태리’ 옆에 앉아서 태리를 돌봐 주는 남자는 아들이 아니고 남편이야”라고 했다. 필자는 귀를 의심했다 “ 뭐라고? 말도 안 돼, 아들 같아 보이는데, 적어도 20년은 어려 보이는데, 뭔가 잘못 알았겠지” 라고 하니까 리나가 하는 말이“아니야,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아들이 아니고 남편이래” 필자가 되묻기를 ”믿을 수 없어, 잘 봐, 엄마와 아들 같잖아 닮아 보이는데”라고 하니까 리나가 하는 말이 “ 맞아 태리가 80이고, 남편 닉이 60세야” 필자는 이 말을 듣고 완전히 기절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혹시나 리나가 잘못 알 수도 있을 것 같아 ‘로래인’에게 지나가는 말로 “태리 할머니는 참 좋으실 것 같아, 아들이 매주 저렇게 교회에 모시고 와서 같이 예배 드리고 예배가 끝나면 모시고 가시니 얼마나 복이 많은 분이 실까” 라고 하니까 ‘로래인’이 하는 말 ” 너가 말한 태리가 우리 엄마야, 그리고 옆에 앉은 사람은 아들이 아니고 남편이야, 우리 엄마의 세 번째 남편이지, 나와는 나이차가 2살 차이지 아마”라고 했다. 정말 문화적 충격이었다. 태리의 나이와 20년이나 젊은 세번째 남편, 그리고 그 사람이 바로 자신의 엄마라며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는 로래인, 이런 것이 문화차이인 가 보다. 그래서 좀 더 구체적으로 물어봤다. ”어떻게 만나셨는데? 라고 하니까 직장에서 일하다가 만나셨다고 했다.

태리 할머니의 남편 ‘닉’이 20년이나 젊다는 사실과 기독교인이 아니지만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같이 교회 와서 예배 드리는 모습이 참 아름답게 느껴졌다.

중풍에 걸려서 커피잔도 자연스럽게 잡지 못하고 떨리는 손으로 겨우 잡고, 대화도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윽한 눈빛으로 손과 발이 되어주는 닉 아저씨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다.

예배가 끝나고 커피를 타 가지고 태리에게 건내주며 인사도 하고 닉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태리는 힘겹게 커피잔을 잡고 연신 하는 말이 “나는 아파 나는 아파”라고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닉은 웃으면서 커피를 마시실 수 있게 도와주고 침도 닦아주고 마치 아기를 다루듯이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어떻게 이런 행동이 가능할까? 만약에 우리나라 같으면 남편을 벌써 떠나지 않았을까? 이건 어디까지나 필자의 추측이지만 말이다. 그 다음 주 예배시간에 태리 옆에는 닉이 보이지 않고 다른 여자분이 양옆에 앉아 계셨다. 예배가 끝나고 궁금해서 태리 할머니 옆에 앉은 분에게 가다 가서 인사를 하며 왜 닉은 보이지 않는지 물어봤다. 속으로는 이제 한계가 왔나 하는 마음도 들었다. 옆에 앉은 분은 태리 할머니의 여동생들이고 닉은 지금 닉의 부모님, 형제 자매들과 함께 여행을 가서 태리 할머니를 동생분이 2주간 돌봐 주기로 해서 와 계신다고 했다. 참 역할 분담이 확실한 사람들이다. 잠시나마 닉을 부정적으로 생각한 나자신이 부끄러워졌다. 하루는 ‘로래인’이 스페인으로 여행을 간다고 했다. 어디로 가느냐고 하니까 태리 엄마가 가지고 있는 집이 휴양지에 있는데 그동안 코비드로 관리를 못 해서 청소도 할 겸 2주간 간다고 했다. 필자도 가고 싶다고 하니까 7-8월은 성수기여서 비행기 삯이 비싸니까 9월에 같이 가지고 했다. 스페인에 집도 가지고 계시고, 20년이나 젊은 남편도 있고 이제 그 남편이 ‘태리’ 할머니를 보살펴 주시니 할머니 멋지시다.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영 케어러(young carer)라는 단어를 들었다. 영 케어러는 부모님의 사정으로 인해 조부모님 손에서 자란 손자 손녀들이 20년이 지난 후에 어른이 되었을 때 자신을 돌봐 주신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이제는 거동이 불편하여 손주들의 도움이 필요한 상태가 되어 이들이 조부모님을 돌보는 젊은 요양보호사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젊은 요양보호사 역할을 하는 손주들은 이제 성인이 되어 직장도 다녀야 하고 공부도 해야 하지만 그동안 자신을 키워 주신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른 체할 수 없어 직장도, 학업도 포기하고 요양보호사 역할을 하는 것을 보고 국가가 이들을 위해 사회적 보장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태리 할머니와 닉의 관계를 영케어러와 연관 지을 수는 없지만 용어로는 연관이 가능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왜냐하면 태리 할머니에게는 닉이 남편이면서 ‘영케어러’다. 거동이 불편한 부인을 둘보며 ,자신을 희생하고, 부인을 위해 시간을 보내고, 기독교인이 아니지만 아픈 부인을 위해 같이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닉이 영케어러 라고 생각한다. 할머니 닉과 함께 오래오래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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