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주 끝낸 경주마 종착지 '말소각장'

2008-08-08     박생규
【서울=뉴시스헬스】박생규 기자 = 경주마로서 가장 행복한 운명은 화려한 성적을 거두고 은퇴 후 씨수말로 활동하며 수많은 자손들을 남기는 것이다.

아니면 퇴역 후에 승용마로 용도 전환 되어 조용히 살아가는 것도 괜찮은 삶이다.

하지만 모든 경주마들이 이렇게 평화로운 노후를 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은빛여왕', '포암산', '과천대로', '나주산성', '파워플러스', '캐슬록' 등 서울경마공원 주로를 누비던 경주마들의 이름이다.

태어난 곳도 데뷔날짜도 성적도 제각각이지만 이 말들은 공통점이 있다. 더 이상 달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살아있는 동안 질주의 본능을 발산하며 마음껏 내달렸을 이 말들은 어느 날 갑자기 급성 배앓이로, 폐출혈로, 척추골절로, 심장마비 등 다양한 원인으로 쓰러졌다.

질주를 끝낸 경주마가 마지막으로 가는 곳은 자신의 몸을 태워줄 말 소각장이다.

'은빛여왕', '포암산', '과천대로'도 치열한 경쟁과 관중의 함성을 뒤로 하고 소각장에서 한줌 재로 변했다.

말 소각장은 경마공원 북문 입구 근처에 자리 잡고 있다. 평소에는 무심한 철문이 굳게 닫혀 있지만 불운한 죽음을 맞이한 경주마가 찾아오면 엄숙하게 그 시신을 받아들인다.

30평 남짓한 콘크리트 건물 안에는 커다란 소각로가 자리 잡고 있다.

소각로 내부는 섭씨 천도가 넘는 열기를 견디는 내화벽돌이 발라져 있고 소각로 외벽에는 화룡(火龍)처럼 무시무시한 불꽃을 내뿜는 가스보일러가 박혀 있다.

경주마가 경마공원 안에서 죽게 되면 그 시신을 말 소각장 안으로 옮겨 그 자리에서 부검을 실시한다.

부검은 폐사원인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에 수의사가 실시하는데, 마필 관계자가 입회하기도 한다.

부검이 끝나면 호이스트(소형 기중기)로 무거운 말 시신을 들어올려 소각대 위에 올려놓는다.

소각로는 한 번에 한 마리밖에 처리할 수 없고 말 한 마리를 태우는데 4시간 정도가 걸린다.

한 번 태우고 난 소각로는 그 열기 때문에 바로 작업을 할 수 없다.

그래서 한꺼번에 2마리 이상의 말이 죽게 되면 나머지 말은 소각장 바닥에서 다음날까지 대기해야 한다.

이때 시신이 부패하지 않도록 냉각기로 찬 바람을 계속 공급해준다.

소각로는 소각 중에는 항시 섭씨 850도 이상을 유지하도록 환경법규에서 정하고 있다.

말 소각로는 최대 1200도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소각을 할 때 소각장 내부는 한겨울에도 섭씨 40도가 넘는다.

8년 동안 말 소각장에서 일 한 박광철(53 백상기업 환경관리업체) 과장은 "지난 한 해만 56마리의 말을 태웠다"며 "보통 20두에서 30두 정도가 경마장에서 죽는데 작년에는 유난히도 말들이 많이 죽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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