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 이겨낸 천창기 기수 조교사로 화려한 '컴백'

2009-02-19     박생규
【서울=뉴시스헬스】박생규 기자 = 경기 과천 한국마사회는 천창기 기수가 조교사로 데뷔한다고 19일 밝혔다.

천 기수는 37조 마방을 신규로 대부받아 조교사로 화려하게 컴백한다.

천 조교사의 현역 기수시절 대상경주 기록을 살펴보면 통산 117회 출전해 22회 우승(승률 18.8%)으로 승률이 무려 20%에 육박한다.

이 같은 이유로 "경마를 좀 한다"는 팬들은 모두 그를 '대상경주의 사나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제 한 가지 별명이 더 생겨야 할 것 같다. 바로 '경마장의 암스트롱'이다.

세계적인 사이클 선수인 암스트롱과 경마기수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천 조교사는 여러모로 닮은 꼴이있다.

우선 '암을 극복해낸 사나이'라는 부분이 그렇다.

고환암을 이겨내고 세계 최고의 사이클 레이스인 '투르 드 프랑스'를 7연패한 '사이클 황제' 랜스 암스트롱처럼 천 조교사도 폐암을 극복하고 다시 경주로에 복귀하게 되니(현역 기수로 복귀는 아니지만) 병마(病魔)의 짙은 그늘에서 벗어난 두사람의 인생은 어쩔 수 없는 닮은 꼴이다.

이 두 사람은 불굴의 의지로 무언가에 끊임없이 도전한다는 점에서도 닮았다.

암스트롱은 지난 2005년 은퇴했다가 지난해 "암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현역으로 복귀한다"고 선언한 뒤 지난 1월25일 호주에서 열린 '투어다운언더' 사이클 대회에 참가하며 복귀했다.

경기결과는 기대에 못 미치는 29위였지만 그 도전정신에 세계인들이 크게 감동했다.

천 조교사도 암스트롱과 마찬가지의 도전정신을 발휘했다. 폐암 3기 진단을 받은 지난해 4월 주위에선 "이제 기수로 복귀할 생각일랑 접고 건강만 생각하라"며 걱정했지만 1년도 안되는 기간동안 폐암을 극복해 주위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보기 좋게 경마장으로 복귀했다.

폐암판정 당시 천 조교사에게는 "경주로를 떠나야 한다"는 말이 폐암판정 보다도 무서운 이야기였다.

아직 그의 이름을 연호하며 응원하던 경마팬들을 잊을 수 없었던 그였기에 경주로를 떠난다는 생각은 천 조교사에게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생각과는 달리 천 조교사가 직면한 현실은 암담했다. 의학기술의 발달로 3기 암정도면 치료될 확률이 높다지만 일반인이 아닌 운동선수에게는 치명적인 질병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단 한번도 경주로를 떠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천 조교사는 힘든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 중에도 항상 머릿속으로 말 등에 올라 결승선을 통과하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 왔다.

극심한 고통이 따르는 항암치료를 6개월간 견뎌낸 그는 차츰 기력을 회복했다.

지난해 연말부터 가벼운 걷기운동으로 체력관리를 시작해 최근에는 예전의 몸 상태를 되찾았다.

입원 기간 그를 잊지 않고 편지와 선물을 보내오고 직접 병문안까지 왔던 열성 팬들의 응원 덕분일까? 병원에서도 "예후(豫後)가 좋다. 상태가 많이 좋아졌으니 앞으로 관리를 잘해 재발방지에만 힘쓰면 문제없을 것"이라고 말해 폐암과의 한판 승부에서 판정승을 알렸다.

천 조교사의 바람은 말 등에 올라 결승선을 통과하는 기수로 복귀하는 것이었지만 이는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난해 4월13일 뚝섬배(GIII) 대상경주가 기수로서 치른 마지막 경주였다.

하지만 "운명은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삶의 신조를 갖고 있는 천 조교사는 "경주로에 남을 수 있다는 건 나에게 너무나도 큰 행운"이라며 조교사로의 전업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솔직히 한 3년 정도는 더 뛰고 싶은데 아쉬움이 많다"며 "하지만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진정한 프로의 자세"라며 조교사로서 또 다른 치열한 삶을 다짐했다.

평생을 기수로 살아온 그에게 조교사라는 새로운 길은 적잖은 부담이다.

그는 또 "20년 넘게 경마장 밥을 먹었지만 아직 부족하다"며 "몇 년은 고생하겠지만 언젠가는 조교사로 대상경주 시상대에 올라 '대상경주의 사나이'다운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밝혔다.

경주마 위에서 언제나 당당했던 기수 천창기는 조교사 천창기로 새로운 인생의 출발선에 서있다.

머지않아 경마팬들은 그가 조교한 말들이 대상경주를 휩쓰는 광경을 목도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