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정수기 필터 값 '수천억원' 부당이득?…성능 '조작'까지

"필터 교체 주기는 성능 검사와 무관하다"…환경부는 기업 편?

2016-06-20     마소연 기자
(그림= pixabay.com)

[뉴스인] 마소연 기자  = 유명 정수기 업체가 일부 정수기의 필터 교환 주기를 길게 늘여 수천억원대의 부당이득을 취하고 환경부는 이 사실을 알면서도 묵인해줬다는 주장이 20일 제기됐다.

정수기 업계에 종사했던 A씨는 국내 유명 정수기 업체가 교체 주기 10개월의 필터를 18개월 주기로 교체해 8개월 분량의 차익을 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A씨는 “이 사실을 알고 환경부에 지속적으로 의견을 제기했지만 환경부는 오히려 그 업체를 대변하거나 비호해줬다”며 “국민의 건강권을 위해 일해야 할 환경부 공무원들이 오히려 불법행위를 덮어주면서 기업을 위한 행정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환경부 출신의 인사가 해당 업체의 지주사의 임원으로 있던 때부터, 즉 ‘환피아(환경부+마피아)’ 때문에 이러한 관행이 지속됐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정수기의 성능을 시험하는 기관인 한국환경수도연구원은 홈페이지에 유효정수량 시험은 필터의 수명을 검사해 교체 주기를 산정하는 기준으로 쓰인다고 밝히고 있다. (사진= 한국환경수도연구원 홈페이지)

환경부의 위임을 받아 정수기 성능검사를 시행하고 있는 한국환경수도연구원은 “유효정수량은 필터수명시험으로서, 필터의 교체주기를 산정하는 기준이 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해당 업체 역시 지난 2013년 “4인 가정의 1일 최대 사용량(10L)을 30일로 곱한 300L를 한 달 기준으로 해 유효정수량에 따라 활성탄 필터 교체 주기를 결정한다”는 내용을 법원에 제출한 바 있다.

그러나 환경부는 A씨가 제기한 민원의 회신에서 “유효정수량 검사는 필터의 성능 저하 없이 오염물질을 제거할 수 있는 최소한의 처리용량으로, 필터 교환 주기 산정을 위한 것이 아니며 개별 필터 교환주기와 무관하다”고 답변했다.

이는 환경부가 지난해 8월 배포한 보도자료와도 상반되는 답변. 환경부에 따르면 ‘유효정수량’이란 필터 교체, 청소 없이 정수기가 정수할 수 있는 최소한의 처리용량을 말하는 것으로, 클로로폼 제거율 80% 미만까지의 정수량을 측정한다.

유효정수량 측정 기준은 클로로폼 제거율, 즉 클로로폼을 제거하는 '활성탄 필터'의 성능과 수명이라는 것이다.

(사진= pixabay.com)

◇필터 교체 주기 10개월→18개월, 2배 가량 늘려 '부당이득'

이러한 필터 교체 주기는 유효정수량을 가정용 정수기의 일 최대 사용량인 10L(4인 기준)로 나눠 산출한다는 것이 A씨의 설명이다. 유효정수량이 3000L라면 필터 교체 주기는 300일, 약 10개월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유명 정수기 업체는 일부 모델의 활성탄 필터 교체 주기를 18개월로 설정하고 있다. 문제는 이처럼 필터 교체 주기를 길게 설정했을 때 필터의 성능을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다.

활성탄 필터로 제거하는 ‘클로로폼’은 심장·신장·간에 장애를 주는 것으로 알려진 2급 발암물질이다.

클로로폼 제거율이 80% 미만으로 떨어지면 식수로 부적합하며 따라서 유효정수량을 넘기면 필터가 제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 A씨의 설명이다.

정수기 렌탈 서비스의 일반적인 약정기간 5년(60개월)을 기준으로 했을 때 18개월 주기로 교체 시 교체 횟수(3회)는 10개월 주기 시 교체 횟수(6회)의 절반에 불과하다.

금액으로 따지면 렌탈 정수기 1대 당 10만원 가량(필터 교체 비용X3회)의 차익을 얻게 된다. A씨의 주장에 따르면 이 업체가 취한 부당이득은 15년간 수천억원대.

(사진= 환경부)

그러나 환경부는 유효정수량에 따른 필터 교체 주기가 이러한 단순계산으로 측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환경부 관계자는 "유효정수량은 필터 성능 저하 없이 마실 수 있는 물의 최소량을 말하는 것"이라며 "필터는 유효정수량 이상의 성능을 가진 제품으로, 개별 측정 시 최대정수량은 훨씬 높다"고 전했다.

이어 "교체 주기가 짧으면 좋지만 관리비 등 비용이 커지면 판매량도 떨어질 것"이라며 "유효정수량과 안전율을 고려해 업체가 필터 교체 주기를 산정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A씨는 “소비자들은 깨끗한 물을 마시기 위해 렌탈 비용을 이미 지불하고 있으므로 유효정수량 이내의 안전한 물을 마실 권리가 있다”며 “환경부가 왜 기업의 입장에서 비용 증가와 판매 감소를 걱정하냐”고 반박했다.

(사진= pixabay.com)

◇'클로로폼' 기준농도 1/5로 측정…수돗물 수질기준보다도 낮아

또한 이 업체는 유효정수량을 시험할 때 유입수를 법적 기준보다 훨씬 낮춰 필터의 성능을 부풀린 것으로 드러났다.

업체가 지난 2013년 법원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이 업체는 클로로폼 농도 0.05ppm의 물로 유효정수량을 측정했다. 이는 '정수기의 기준·규격 및 검사기관 지정 고시'에서 규정하고 있는 클로로폼 농도 0.25ppm의 1/5에 불과한 수치다.

당시 업체 측은 "유효정수량 측정 기준은 일반 수돗물의 클로로폼 농도보다 높기 때문에 소비자에게 과도한 비용 부담을 줄 수 있어 합리적 판단에 따라 0.05ppm의 조제수를 사용했다"고 밝혔다.

(표= 유효정수량 시험 중 클로로폼 농도에 관한 관련 고시 기준, 수돗물 수질기준, 업체 유입수 기준)

그러나 환경부에 따르면 일반 수돗물의 클로로폼 수질기준은 0.08pm다. 일반 수돗물의 클로로폼 농도보다 낮은 유입수로 유효측정량을 측정했다는 것. 이와 관련 업체 측의 입장을 듣고자 수차례 연결을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환경부 관계자는 “그런 사실(유입수 기준을 고시 기준보다 낮춰 측정한 사실)이 있다면 업체 행정처분과 수질검사기관 폐업까지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A씨는 “의도적으로 필터 교체 기간을 길게 하기 위한 꼼수에 소비자들이 속고 있다”며 “해당 업체의 연구소가 수질검사기관으로 스스로 수질검사를 하는 비상식적 구조가 이러한 꼼수를 낳은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