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교, 우리의 백 년 이웃 ②

결혼식을 통해 본 화교 풍속

2015-03-13     민경찬 기자

요즘 화교들은 배우자가 한국인인 경우가 많아 서양식으로 결혼식을 올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전통 결혼식이 많이 사라지는 추세이다.

거기에 전통 결혼식은 서양식에 비해 절차도 비교적 복잡하고 시간도 오래 걸리기에 현대 화교들도 한국인과 마찬가지로 간편하게 서양식으로 결혼식을 하는 것이다.

물론 전통 결혼이라 하더라도 그 내용은 서양식(사실은 한국화된 서양식)과 혼합된  경우가 많아 일종의 퓨전이라고도 할 수 있다.

▲ <1974년 대만에서 결혼한 인천 화교 왕청덕(王淸德)의 결혼 사진.
신랑 신부가 모두 명찰을 달고 있다. 사진=왕청덕 제공>
 
▲ <2014년 12월 28일 왕청덕 부부가 자신들이 운영하는 만두카페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왕청덕은 인천 화교중산학교 체육교사로 근무하다 정년퇴임, 현재 화교협회에서 일하고 있으며 부인과 차이나타운 근방 동화마을 입구에서 만두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사진=민경찬 기자>
결혼식 당일 아침 신랑은 집안에 마련된 사당에 음식을 마련해 올리고, 다섯 가지 요리를 만들어 가족끼리 식사를 한 후 사당에 향과 담배를 붙여 제를 올리며 조상께 자신이 결혼함을 알린다. 담배를 올리는 이유는 화교 사이에 담배를 주고받는 것이 최고의 예의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결혼식장에는 분홍색 보자기가 테이블 위에 펼쳐져 있는데 이것은 일종의 방명록으로 하객들이 축하의 말을 적는다. 보자기에 자유로이 축하의 말을 적은 후 축의금을 내게 되는데 역시 붉은 봉투에 돈을 넣어서 낸다.

▲ <왕청덕(王淸德) 부부의 결혼 증서. 중화민국력으로 63년이니 우리나라는 거기에 1911을 더해 1974년이 된다. 신랑 신부 본인은 물론 주례와 소개인의 도장까지 찍혀 있다. 사진=왕청덕 제공>
신랑신부를 비롯해 혼주와 주례, 증명인 등은 명찰을 착용하는데 이는 오랜만에 만나는 하객들이 서로 알아보지 못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과거 넓디넓은 중국에 퍼져 살던 가족이나 친지가 한자리에 모이면 명찰을 보고 쉽게 알아보게 하기 위한 풍습이 현대 화교 사회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 <주례가 결혼증서에 날인하고 있다. 사진=왕청덕 제공>
주례가 신랑 신부의 결혼 서약서를 낭독하고 도장을 찍으면 배석한 증명인(소개인)이 확인 도장을 찍는다. 이후 신랑은 신부에게 반지를 끼워준다.

결혼식이 끝나면 신랑 신부는 사탕과 담배를 담은 바구니를 들고 예식장 입구에 서서 하객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요즘에는 흡연 인구가 줄었지만 예전에 일부 하객은 이 담배를 무더기로 가져가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특이한 것은 기념촬영을 할 때 신랑 신부 뒤에 양가 아버지(아버지가 없으면 집안의 남성)와 주례가 함께 사진을 찍는데 이 자리에 반드시 결혼 '소개인'이 증인으로 참석해 사진을 찍는다. 연애결혼을 한 경우라도 '소개인'의 자격으로 누군가 그 자리에 서서 소위 인증사진을 남기는 것이다.

결혼식의 최종 의식은 신부가 신랑의 집으로 들어가는 것인데 이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가 있다. 새로운 사람을 집으로 들이는 것이므로 정갈해야 하며 이를 위한 의례가 기왓장 깨기와 숯불 넘기 의식이다.

신랑의 집 입구에 기왓장을 한 장 엎어두고 신부가 먼저 이를 깬 후 신랑이 또 하나의 기왓장을 깬다. 이 기왓장이 제대로 깨져야 둘에게 좋은 일이 생긴다고 믿는다.

기왓장을 깬 후에는 숯불 뛰어넘기 의식을 하는데 밖에서 들어오는 모든 나쁜 것들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의식을 하는 것이다.

이 '통과의식'이 끝나면 신부는 집안에 대기 중인 신랑의 친척에게 인사를 드린다. 한국의 폐백과 비슷한 의식으로 인사를 받은 친척들은 답례로 축의금을 건넨다.

이후 신랑 신부는 집안의 사당으로 가서 아침에 신랑이 준비한 제단에 함께 절을 한다. 이 과정을 끝으로 신부는 신랑 집안의 '가족'으로 받아들여지게 되는 것이다.

<내용 중 실제와 다르거나 수정이 필요한 경우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