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자업자득의 승마보험

2015-01-12     김명기 힐링승마사업단장

▲ 생애 첫 승마를 체험하는 5살 어린이
창밖이 어둡다. 겨울 새벽 6시, 평소 같으면 창밖에 동이 터올 텐데,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만 허공에 떠있다. 잔뜩 흐린 모양이다. 나는 오늘도 아침부터 6두의 마필을 준비해 가까운 도시로 떠날 것이다. 아이들은 말을 반길 것이고, 혹한기 운동장은 말과 아이들의 미소로 가득할 것이다. 승마 교사로 무척이나 뿌듯하다. 내 나이 만 52세. 금전적인 야망만 버리면 괜찮은 직업이다.

하지만 신경 쓸 일이 많다. 나이 탓인지, 수업 전날이면 늘 마음이 무겁고 여러 가지 걱정이 생긴다. 예전에는 과연 이런 일 어떻게 했을까? 스스로 의아할 정도다. 날씨는 어떨까? 눈이 와도 너무 많이 쌓이면 안 되는데, 눈 녹은 뒤에 살짝 얼면 그야말로 위험천만. 말 운반 트럭은 이상이 없을까? 밤새 방전되거나 고장이 난 것은 아닐까? 말들은 어떨까? 그동안 여러 승마장에서 하루밤새 산통으로 죽는 말들도 여러 번 보아 왔으니, 말들이 건강하게 푸르륵! 거리는 모습도 어쩐지 아슬아슬하다.

사소한 부주의로 사고가 발생할 수 있지만 어린이들은 잘 모른다. 열심히 안전 교육하고 말 뒤로 가지 못하게 주의를 기울여도 마루에 쏟아진 콩처럼 마구 뛰어다닌다. 하루 4시간 안전하게 승마교육을 하기 위해 나는 12시간 이상 근무한다. 오전 6시부터 수업준비를 한다. 이론 교육 자료를 출력하고, 기상상태를 점검하고, 출석부를 점검하고, 말을 점검하고, 도로와 운동장을 점검한다. 물론 운동장 도착 후 말의 상태를 점검하고, 보조 승마교사들의 출석과 상태를 점검한다. 젊은 분들이니 전날 무리한 음주가무를 즐겼다면 그것 역시 하나의 위험요소가 되는 것이다. 내키지 않지만 유심히 살펴보고 지적해야 한다.

▲ 1대 1 승마교육으로 안전을 확보한 ‘찾아가는 승마교실’.
이렇게 걱정하고 염려하기를 15년. 다행히 큰 사고는 없었다. ‘찾아가는 승마교실’에 대한 보험은 모 보험사에서 내부적으로 보험 설계를 한 후, 일반 승마장보다 1/10 가격의 견적을 받았었다. 보험업계의 점검 시스템으로 ‘찾아가는 승마교실’이 10배 더 안전하다고 결정이 난 것이다. 교육 시스템을 잘 정비하면 그만큼 안전이 보장된다. 그러나 승마관련 보험 조건은 매년 더 가혹해진다. 외부적인 요인이란다. 며칠 전 보험사의 전화 연락을 받았다.

“내부(內部)자료라 열람만 하고 왔는데요. 그동안 말 관련업계에서는 지난번 제주도 말 사기 보험(경주마로서 가치가 떨어진 말들을 보험금을 타기 위한 목적으로 일부러 골절시키거나 심지어 교살하는 등 잔인한 범행을 저지른 사건)같은 일이 너무 많았어요. 승마장 주인과 고객이 짜고 별로 다치지 않은 것도 심각하게 만들어 보험금을 타낸 사례라든가, 승마장 교관이 다친 것도 고객이 다친 것으로 해서 엉터리 보험 지급이 이루어진 것이라든가, 회사의 손해율이 지나치게 높았지요. 그래서 전체 보험사가 승마장 재보험에 신중한 것입니다.”

그랬구나. 그저 ‘안전 의식이 낮아서 그런가?’ 했더니 이런저런 사건이 많았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부끄러운 내부 상황 때문에 승마장 보험 가입은 점점 어려워진다. 보험사에서는 좀처럼 승마관련 보험을 받아들여 주지 않고, 나라에서는 보험 가입 안하는 승마장에 벌금을 매긴다. 진퇴양난이다.

“그러나 각 승마장들이 요즘엔 안전에 더욱 유의하고, 보험사에서도 열심히 설계하고 홍보하니까 2017년쯤엔 승마장 보험 가입도 정상화 될 겁니다.”

2017년? 그럼 2015년과 2016년은 어쩌고? 승마 일을 알면 알수록 걱정은 점점 더 커진다. 이윽고 창밖의 어둠은 실내로 스며들어와 내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지금까지 앞만 보고 열심히 말달렸다. 그러나 말과 승마 세계의 어둠은 끈질기게 여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