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말의 꾀
누구나 아주 작은 버릇들이 있다. 그 중에도 나쁜 버릇들은, 학창시절에 배운 On umbrella morals(우산도덕 - A.G. Gardiner) 같은 것이다.
술주정이나, 차창으로 함부로 담배를 버리거나, 붐비는 식당에서 우산을 슬쩍 집어 가거나, 심지어는 더 나은 신발로 슬그머니 바꾸어 신고 달아나는 행위. 말에게도 나쁜 버릇을 가질 정도의 지능이 있다.
혹자들은 말의 아이큐가 50정도라고 하는데, 개보다는 우리가 판단하는 지능은 떨어진다. 만약 말이 개만큼 영리하다면 무게 500Kg짜리 맹수가 될 것이다.
다만 그 정도 지능이기 때문에 우리를 등에 태우고 다닐 것이고, 우리와 함께 이 행성을 평화롭게 여행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말은 일하기 싫을 때 일부러 절룩거리는 시늉을 한다. 그러면 주인은 내려서 말을 살펴보고 쉬게 한다. 이것을 깨닫고 절룩거리는 시늉을 하면, 일 안 하고 쉰다는 정도를 이해하는 영리한 말인 것이다.
다만, 불규칙적으로 절룩이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장소에서 같은 행동을 반복하기 때문에 곧 들킨다. (소금을 싣고 늘 개울에서 넘어지는 당나귀도 마찬가지) 혹시? 하고 교관이 타고 살필라치면, 혼 날 것을 미리 염려한 말은 아주 씩씩하게 잘 달린다. 그러나 모든 잔꾀에는 반드시 나쁜 결과가 따른다.
얼마 전 수강생이 구보(시속 36Km/h의 달리기)를 하던 중에 이 말은 꾀를 내었고, 말과 수강생이 함께 굴렀다. 미리 이 말의 버릇을 알고 있었던 수강생은 다행히 찰과상을 입었고 이 말은 콧등이 살짝 까졌다.
이 사고로 말 자신도 상당히 혼이 난 것인지, 이후로 구보 중에는 절대로 꾀를 부리지 않지만, 초보자가 타고 평보(시속 6Km/h의 걸음걸이)나 속보(시속 16Km/h의 걸음걸이) 때에는 여전히 가끔 꾀를 부린다.
다만 꾀를 부린 뒤에는 즉시 기승자와 교관의 눈치를 보고, 몇 번 반복하다가 반응이 없거나 가볍게 꾸중을 들으면 이내 꾀부리기를 멈춘다.
나는 계속해서 이 말을 살피고 꾀부리는 버릇을 고쳐준다. 만약 내가 방치한다면 이 말은 계속 그 꾀를 부리다가 코끝 벗겨지는 정도가 아니라, 뇌진탕으로 사망할 가능성이 높다(말들이 질주하다가 코가 땅에 박히면 반드시 뇌진탕으로 사망한다). 뿐만 아니라 기승자도 상당히 위험한 것이다.
함께 돌아보자, 지금까지는 용케 나쁜 버릇들을 큰 문제없이 지녀왔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차창 밖으로 담배꽁초를 버리는 버릇은 언젠가 그 꽁초가 뒷 차창으로 날아들어 차내 화재를 일으킬 것이고, 들녘 마른풀에 붙어 큰 화재를 일으킬 수 있다.
우산을 슬쩍하는 버릇이나 신발을 바꿔 신는 버릇은 절도범으로 체포되어 망신을 하거나 지독한 무좀에 전염될 수도 있다.
요즘 술을 끊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만취 상태에서 생각하기도 싫은 실수를 했거나, 건강에 적신호가 온 것 일테지. 그래도 그들은 현명하다. 어쨌든 멈춘 것이다.
어떤가? 작년 초에 결심했으나 버리지 못한 나쁜 습관이나 버릇이 있나? 2014년에 새로 결심한다면, 그 나쁜 습관의 결과를 예상하자.
예를 들어 흡연=폐암. 이런 식으로, 구체적인 결과를 예견하고 우리에게 불행을 초래할 버릇들을 버리자. 우리는 말보다는 제법 영리하지 않은가?
이번 겨울에는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린다. 눈 내리는 승마장, 방목장에서는 무심한 말들이 나를 바라보고, 나는 '말을 방목한 승마장'이라는 풍경화를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