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보건전문가들, "에이즈 막느라 다른 질병 통제 희생" 불만 고조

2008-12-01     유세진
【런던=AP/뉴시스】유세진 기자 = 1일 '세계 에이즈의 날'을 맞았지만 에이즈 예방에만 지나치게 많은 재원이 투입돼 다른 치명적인 질병들을 예방·통제하기 위한 노력들이 희생되고 있다는 불만이 세계 보건 전문가들 사이에서 점점 팽배해지고 있다.

이들은 아프리카를 제외한 다른 지역들에서는 에이즈 확산이 진정 추세에 접어들었으며 세계는 '포스트 에이즈' 시대를 맞고 있다고 말했다.

시라큐즈 대학에서 세계의 보건 관련 예산 지출을 연구하고 있는 제레미 시프먼은 "에이즈는 물론 무서운 질병임에 틀림없지만 인류가 직면한 많은 무서운 질병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레나다에 위치한 보건체제 연구 싱크탱크인 '헬스 시스템즈 워크숍'의 로저 잉글랜드 연구원은 한술 더 떠 "유엔에서 에이즈 연구를 담당하고 있는 UNAIDS는 이미 그 목적을 다 이루었으며 이제 해체돼야 한다"고까지 말한다. 그는 지난 5월 영국 메디컬 저널지에 에이즈에 지나치게 많은 자금이 집중됨에 따른 폐해를 지적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UNAIDS의 폴 드 레이 사무총장은 에이즈가 통제 상태로 접어들었다는 주장은 잘못 된 것이라며 5500만∼6000만 명이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돼 있으며 에이즈 관련 지출을 삭감하는 것은 큰 재앙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엔 관리들은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자 수가 지난 1990년대 말 이미 최고점을 지났으며 아프리카 이외의 지역에서는 더이상 에이즈 확산 사태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잉글랜드는 UNAIDS만 해체하더라도 연간 2억 달러의 자금을 폐렴 등 다른 치명적인 질병 통제를 위해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폐렴 때문에 사망하는 어린이 수는 에이즈와 말라리아, 홍역으로 사망하는 어린이들을 모두 합한 것보다 더 많다.

잉글랜드는 이런 현실을 외면한 채 에이즈 예방에만 부족한 돈을 집중 투입하는 것은 다른 질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외면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세계보건위원회(Global Heatth Council)에 따르면 지난 2006년 미국의 보건 관련 기부액의 80% 이상이 에이즈 예방을 위해 사용됐다. 에티오피아와 우간다, 르완다 등지에서는 에이즈 예방을 위한 기부액이 국가 전체의 보건 관련 예산보다 더 많은 실정이다.

르완다 보건관리들은 "재원 분배가 잘못되고 있다. 합리적으로 재원이 분배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유니세프의 에이즈 전문가 헬렌 엡스타인 역시 똑같은 목적을 가진 에이즈 연구기관들이 너무 많이 중첩돼 있다고 인정했다. 아프리카에서는 많은 고급 인력이 높은 보수를 받으면서 에이즈 관련 업무를 보고 있지만 일반 병원에는 150만 명에 달하는 의사와 간호사 부족으로 허덕이고 있으며 병원들의 시설도 매우 낙후돼 있다.

워싱턴에서 안전한 식수 보급을 위해 활동하는 '워터 어드보케이츠'의 존 올드필드 부회장은 "더러운 물을 먹고 발병하는 설사로 매년 에이즈 사망자 수의 5배에 달하는 사람들이 죽고 있다. 그러나 누구나 에이즈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뿐 설사 문제 해결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세계 금융 위기로 보건 관련 기부 액수가 줄어들면서 이 같은 에이즈 관련 과다 지출에 대한 논란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