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위를 걷는 말(馬), 마력선(馬力船)을 아십니까?

2010-04-23     박생규 기자

▲ 챔플레인 호수에 침몰된 마력선의 상상도. <사진=한국마사회 제공> 박생규기자 skpq@newsin.co.kr

1983년 미국의 챔플레인 호수(Lake Champlain)를 음파탐지기로 조사하던 해양고고학자들은 침몰된 난파선을 하나 발견했다.

고고학자들은 처음에 이 배가 증기선(steam boat)일 거라고 추정했다. 침몰선은 추진 작용을 하는 한 쌍의 외륜(paddle wheel)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배는 특이하게도 보일러나 증기엔진을 갖고 있지 않았다.

잠수부들은 배 근처에서 부러진 편자와 마구의 파편을 발견했다. 침몰선은 말의 힘으로 움직이는 마력선(馬力船, horse-powered boat)이었던 것이다.

침몰선 부근에서는 부러진 방향타가 발견되었고, 선체에서 구멍 난 판자를 찾았다. 이러한 발견으로 학자들은 마력선의 침몰원인을 밝혀낼 수 있었다.

방향타를 잃어버린 배가 항로에서 벗어나 이리저리 떠내려가다가 선체에 구멍이 나 가라앉은 것이다. 침몰선은 약 150년 동안 진흙 속에 묻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됐다.

마력선은 갑판 밑에 원반 모양의 쳇바퀴를 설치해 말이 이 쳇바퀴를 돌려 움직이도록 되어 있다. 개척시대 마력선의 발견은 미국 역사학자들을 흥분시켰다. 챔플레인 호수에서 마력선이 발견되기 전까지 마력선은 기록상으로만 전해져 내려오는 미지의 교통수단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마력선 특허가 난 것은 1819년이지만, 마력선의 기원은 로마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로마인들은 황소를 이용해 배를 추진하는 우력선(牛力船)을 사용했다. 18세기에 유럽인들은 강과 운하에서 소 대신 말을 이용해 배를 움직였고, 자연스럽게 미국 이민자들이 이 기술을 사용했다.

미국의 19세기는 처음으로 혈통서가 발간되고 패리뮤추얼 방식의 베팅이 도입되는 등 미국 경마가 활짝 꽃 피운 시기이자 마력선이 곳곳의 강과 운하에서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나른 마력선의 시대이기도 했다.

19세기 미국은 육지와 수상에서 말들이 맹활약하던 시기였던 것이다. 마력선은 새롭게 등장한 증기선과 경쟁관계였으나, 증기선의 등장으로 사라지지 않고 끈질기게 생존하며 번창했다.

당시 주정부들은 증기기관 기술의 발전을 장려하기 위해 증기선 운항업체나 기술자들에게 장기 독점권을 주었는데, 사업권을 갖지 못한 경쟁자들은 너도 나도 마력선에 매달렸다.

마력선은 증기선보다 훨씬 비용이 적게 들었기 때문에 아주 오래 동안 증기선과 경쟁했다. 정작 마력선을 퇴출시킨 것은 증기선이 아니라 내연기관의 발명이었다. 석유연료를 사용하는 내연기관은 증기선과 마력선을 동시에 사라지게 만들었다.

챔플레인 호수의 마력선은 파손되기 쉬운 상태라서 인양하지 않고 수중유물로 보존하고 있다. 이 희귀한 유물을 보기 위해 매년 수백 명의 스쿠버 다이버들이 잠수장비를 들고 찾아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