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지중해의 용광로, 시칠리아에서 만난 문명들의 향연

아랍·노르만·비잔틴이 공존한 팔레르모, 유럽사의 축소판을 걷다

2025-11-03     정영훈 여행전문 칼럼니스트
팔레르모의 포르타 누오바 문.

[뉴스인] 정영훈 여행전문 칼럼니스트 = 스페인령 팔마데마요르카를 떠나 지중해에서 가장 큰 섬인 시칠리아로 향했다. 시칠리아는 이탈리아 본토와는 메시나 해협을 통해 불과 16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큰 섬이다. 시칠리아는 고대시기부터 영욕의 땅이었다. 지중해의 패권을 노렸던 모든 강대국들의 피할 수 없는 각축장이었기 때문이다. 가장 멀리는 BC3세기경 로마제국과 카르타고 간의 포에니 전쟁을 들 수 있다. 

전쟁의 승자인 로마는 시칠리아라는 곡창지대를 얻어 이후 대제국으로 성장하는데 밑거름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시칠리아는 서로마제국의 쇠망과 더불어 반달족과 동고트족에게 유린되기도 하고 AD 831년부터는 이슬람 세력의 지배를 120여년가까이 받게 된다. 시칠리아 섬에서 이슬람세력을 몰아낸 것은 다름아닌 바이킹세력이었다. 8세기부터 유럽전역을 휩쓸었던 바이킹이 영국~프랑크왕국~이베리아반도를 거쳐 지중해까지 진출하였고, 1072년에는 노르만의 로제트1세가 이슬람세력을 물리치고 시칠리아를 점령한 것이다. 노르만족이 시칠리아 세운 시칠리아 왕국(1130~1816)은 중간 중간에 프랑스의 브루봉 왕조와 스페인 왕족출신이 왕권을 계승하기도 하였지만 1816년 가리발디의 이탈리아 통일전쟁까지 긴 세월 지배권을 유지하였다.

노르만 궁전 외관.
노르만 궁전 외관.

시칠리아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지정학인 위치로 인해 필연적으로 다양한 문화가 용광로처럼 융합되어 있는 곳이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시칠리아의  유적이 "노르만 궁전"이다. 이슬람 지배시절에 아랍 통치자가 머물렀던 곳에 노르만의 로제트 2세가 궁전으로 증개축한 곳이다. 좁은 입구를 지나면 곧 확트인 중전을  볼 수 있다. 중전 옆으로 아주 폭이 넓은 계단이 설치되어 있는데, 과거에 이 계단을 말을 타고 오르 내렸기 때문에  이례적으로 폭이 넓은 것이라고 한다.

노르만 궁전의 카펠라 팔렌티노.
노르만 궁전의 카펠라 팔렌티노.
노르만 궁전의 카펠라 팔렌티노.
노르만 궁전의 카펠라 팔렌티노.

노르만 궁전의 2층에 오르면 모든 관광객들이 찾는 아니 꼭 봐야하는 곳은 "케팔라 팔란티노(Cappella Palantino)"가 있다. 1132년 로제트 2세의 의해 노르만 궁전안의 왕실 전용 예배당으로 건설되었다. 

노르만 궁전의 다양한 장소.
노르만 궁전의 다양한 장소.
노르만 궁전의 다양한 장소.
노르만 궁전의 다양한 장소.

"아랍의 아치와 문양"과 "노르만의 건축양식" 그리고 "비잔틴의 돔과 모자이크"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대표적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중앙과 양쪽 벽면에는 예수 그리스도와  바오로와 베드로 사도를 주제로 한 성서의 내용이 화려한 비잔틴 모자이크로 표현되어 있고, 천장에는 아랍 전통 문양이 무카르나스라는 기법에 의해 기하학적으로 장식되어 있다. 

노르만 궁전의 중정.
노르만 궁전 내부(현재 시칠리아 팔레르모 시청사 모습).
노르만 궁전 내부(현재 시칠리아 팔레르모 시청사 모습).
노르만 궁전의 2층 계단(말을 타고 올라다녔던 계단).

현재의 노르만 궁전은 1946년 부터 시칠리아 지방의회 회의장소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팔레르모 대성당.

노르만 궁전의 화려함을 뒤로하고 두번째로 찾은 곳은 또 하나의 시칠리아 팔레르모의 랜드마크인 "팔레르모 대성당"이다. 1185년 팔레르모 대주교에 의해 건설이 시작되어 거의 600여년에 걸쳐 건설된 성당인 관계로 모든 건축양식이 총 망라되어 있다.

팔레르모 성당 제대.
팔레르모 성당 제대.

비잔틴 양식으로 시작되어 바로크, 고딕, 로마네스크, 노르만 양식 등이 대표적이다. 성당의 입구의 아치가 유명하며 양 옆으로는 이곳 팔레르모 대성당에서 즉위식을 거행한 두명의 왕의 부조(부르봉 왕가의 샤를3세, 사르데냐의 빅토르 아마데우스 2세)가 새겨져 있다.

하인리히 6세와 프리드리히 2세의 석관.
하인리히 6세와 프리드리히 2세의 석관.

성당 안에는 황제 하인리히6세와 그의 아들 프레드리히 2세의 석관이 있다. 더불어 시칠리아의 초대왕인  로제트2세와 그의 딸 콘스탄스의 무덤도 있다.

왼쪽 통로 끝쪽에는 예배실에는 아프카니스탄산 청금석과 칠레산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는 화려한 성찬 예배실이 있다.  반대쪽 경당에는 비교적 최근인 1993년 반 마피아 운동을 하다, 마피아에게 살해당한 신부님의 무덤도 있다. 밖으로 나와 아름다운 팔레르모 성당의 전체 전경을 눈에 담고 다음 장소로 이동한다.

시칠리아 골목길.
시칠리아 골목길.
시칠리아 전통 간식 아란치니.

전형적인 시칠리아 골목길 풍경이 자못  흥미롭다. 현지인과 관광객들이 골목길을 가득 채우고 길을 가면서 서로의 모습과 행동을 관찰하는 것 같다. 우리 일행 역시 골목길에서 잠시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시칠리아의 대표적 간식인 "아란치니(일종의 주먹밥)"를 먹으며 오가는 사람 구경을 해 본다.

콰트로 칸티.
콰트로 칸티.
콰트로 칸티.
콰트로 칸티.

조금 더 걸어가니 골목길 교차로가  나왔다. "콰트로 칸티"에 엉겹결에 도착한 것이다. 콰트로 칸티는 말 그대로 사거리라는 뜻이다. 동서남북 모든 방향에 3층 건물이 있는데, 1층에는 사계절의 여신이, 2층에는 시칠리아를 통치했던 스페인 계통의 왕들이, 3층에는 시칠리아 성녀들의 조각상이 새겨져 있다.

프레토리아 분수.

콰트로 칸티 바로 옆에는 16세기에 만들어진 프레토리아 광장과 분수가 있다. 특히 프레토리아 분수에는 나체 모습의 조각상이 둘러쌓여 있는데, 인근 도미니코 수도원  소속 수녀님들이 망측스럽다고 훼손시키는 일을 자주하여 일명 "수치의 분수"라고도 불리운다.

마시모 대극장.
마시모 대극장.
마시모 대극장.
마시모 대극장.

팔레르모 일정의 마지막 피날레는 유럽 3대 대극장이며 영화 "대부 3"의 마지막 장면이 촬영된 "마시모 대극장"이다. 주인공인 알 파치노가 자신의 젊은 시절처럼 아버지로부터 마피아 조직의 두목자리 승계를 거부하고 오페라 가수의 꿈을 키운 아들의 첫 공연을 가족 모두와 함께 관람하고 마시모 대극장을 나온다. 계단을 내려오는 순간 라이벌 조직의 암살자가 알 파치노에게 총을 난사하였으나, 바로 옆에 있던 딸이 가슴에 총을 맞고 말았다. 죽어가는 딸을 바라보며 절규하는 알 파치노의 마지막 장면이 눈에 선하다.

시칠리아의 와인.

다양한 볼거리와 매력을 지닌 시칠리아의 극히 일부만을 둘러본 하루였지만 나름 알찬 하루였다. 한번에 아랍 ~ 노르만 ~ 비잔틴 문화의 정수를 섭렵하는 흔치않은 기회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현지 가이드의 도움으로 시칠리아의 와인을 득템하였기 때문이다. 시칠리아의 화산 토양에서 재배되고 수확하여 만든 와인이라고 한다. 어떤 맛일지 자못 기대된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팔레르모 항에 도착하니 빗방울이 떨어진다. 

운이 좋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