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집단지성의 배신

2025-10-13     김명곤 논설위원
김명곤 논설위원. ((사)바른선거시민모임 중앙회장).

[뉴스인] 김명곤 논설위원 = 아리스토텔레스는 일찍이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고 했다. 제임스 서로위키는 《집단지성》에서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소수의 전문가보다 더 현명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오늘날 정치와 선거의 장에서 목격하는 것은 집단지성의 발현이 아닌, ‘집단의 어리석음(Collective Folly)’이다. 지성은 사라지고 확증 편향에 기댄 맹목적 믿음만 남는다.

정보의 홍수와 필터 버블

과거에는 정보의 부족이 문제였으나 지금은 정보의 과잉이 문제다. 소셜 미디어와 알고리즘은 정보의 확산을 가속함과 동시에 이용자를 ‘필터 버블’ 안에 가둔다.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결과적으로 자신의 신념을 강화하는 정보만 소비하게 만든다.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페이스북과 같은 플랫폼에서는 가짜뉴스가 진짜보다 더 높은 참여도를 보였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허위 정보가 사실검증의 과정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이는 유권자의 합리적 판단을 마비시키고, 집단 전체를 잘못된 길로 이끌었다. 정보의 양이 지성의 질을 담보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진영 논리의 함정

정치 영역에서 집단은 ‘우리’와 ‘그들’로 나뉜다. 일단 집단에 소속되면 개인의 비판적 사고는 약화되고, 소속 집단의 논리에 동조하려는 압력이 강해진다. 이를 ‘그룹싱크(Groupthink)’ 또는 집단사고라 부른다. 집단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개인은 배신자로 낙인찍힌다.

우리의 정치 현실이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정당이나 정치인에 대한 지지는 정책이나 능력 너머에 있다. 우리 인물이 비판받으면, 내용의 사실 여부를 따지기보다 ‘우리 편’을 공격하는 것으로 반응한다. 반대로 상대의 주장은 내용과 관계없이 배척한다. 이러한 진영 논리는 토론의 공간을 없애고, 대립으로 몰고 간다. 결국 집단은 더 나은 대안을 찾는 대신, 상대 집단을 이기는 것만이 목표가 된다.

감성의 지배와 구호의 정치

복잡한 사회 문제를 이해하려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대인에게 그럴 여유는 없다. 정치인들은 이를 간파했다. '경제 살리기', '적폐 청산', '개혁 완성' 같은 단순하고 강렬한 슬로건이 치밀한 정책 분석보다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을.

2020년 총선에서 벌어진 위성정당 논란이 대표적 사례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복잡한 제도의 본질을 설명하는 대신, '꼼수 대 꼼수'라는 프레임 전쟁이 벌어졌다. 유권자들 역시 제도 개선의 본질보다는 '우리 편의 승리'에만 관심을 보였다. 숙의민주주의는 실종되고, 반사적 정치만 남았다.

제임스 서로위키가 제시한 집단지성의 네 가지 조건을 되새겨보자. 다양성(Diversity), 독립성(Independence), 분산성(Decentralization), 그리고 종합(Aggregation). 오늘날 우리 정치 환경은 이 조건들을 얼마나 충족하고 있는가?

어리석음에서 지혜로: 되찾아야 할 것들

집단지성의 복원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전제조건들을 되살려야 한다.

첫째, 정보 생태계의 건강성을 회복해야 한다. 알고리즘의 투명성을 높이고, 다양한 관점에 노출될 기회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둘째, 시민의 비판적 사고력을 기르는 교육이 필요하다. 미디어 리터러시와 팩트체킹 능력을 갖춘 시민만이 가짜뉴스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다.

셋째, 정치 문화의 근본적 변화가 요구된다. 상대방을 적으로 보는 문화에서 동반자로 인식하는 문화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민주주의의 미래는 우리가 집단지성을 회복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그 선택권은 바로 우리 손에 있다. 지금이야말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