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과 분노사이, 우리의 판단 근육을 키우자
[뉴스인] 김명곤 논설위원 = 내년 지방선거 열기가 조금씩 전해져 온다. 관련자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빈번하게 들려온다. 반복되는 장면이다. 선거는 주권을 위임하는 절차다. 위임이 신뢰를 낳으려면, 시민의 판단이 ‘분노’가 아니라 ‘사실’ 위에 놓여야 한다. 지난 칼럼에서 사법의 정치화가 신뢰의 저울을 어떻게 흔드는지 살폈다. 이번에는 그 저울의 반대편, 즉 시민이 스스로의 판단을 단단히 만드는 방법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첫 번째 방법은 ‘시간’을 적용해 보는 것이다. 모든 이슈는 지난 맥락이 있기 마련이다. 어떤 발언이 논란이 될 때, 그 발언이 나오기까지의 타임라인을 따라가 보라. 한 문장만 떼어내면 경악스럽지만, 전후 맥락을 보면 전혀 다른 경우가 많다. 사법 판결 역시 수사와 공소, 변론과 증거, 선례와 쟁점이 겹겹이 쌓여 나온 것이다. 시간의 결을 복원하는 습관은 분노를 늦추고, 이해를 확장한다.
두 번째 방법은 ‘출처’를 묻는 것이다. 누가 말했는가, 어디서 나왔는가, 어떤 방식으로 검증되었는가. 정치적 주장에는 수치와 그래프가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데이터를 어떤 축으로 자르느냐에 따라 정반대의 결론이 나온다. 정치 콘텐츠는 대개 우리를 이용하려는 것들이다. 여론조사가 여론을 반영하는지, 여론을 만들고 싶은지 구별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세 번째 방법은 ‘숫자를 돈으로 환산’해 보는 일이다. 새로운 복지나 개발, 세제 변화가 발표되면 우리는 “좋다, 싫다” 혹은 “포퓰리즘이다”라고 단정한다. 그 사이에 빠진 질문이 있다. “얼마가 드는가? 어디서 가져오는가? 무엇을 줄이는가?” 공공정책은 무한대의 선의가 아니라 유한한 자원의 재배치다. 구체적인 숫자를 머릿속에서 그려보는 순간, 정치의 언어는 추상에서 현실로 내려온다.
네 번째 방법은 ‘비교의 렌즈’를 껴 보는 것이다. 정책의 성과는 다른 지역, 다른 나라, 과거의 유사 정책과 비교할 때 비로소 윤곽이 드러난다. 판결 또한 제도와 조직, 인사와 관행, 법률과 선례가 얽힌 결과다. 비교는 도망이 아니라 정밀함으로 가는 길이다.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은 ‘이해관계의 지도’를 그려 보는 것이다. 정치인의 말은 표를 얻기 위한 것이고, 관료의 말은 제도의 안정과 자기 조직의 신뢰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언론의 기사에는 클릭과 구독의 논리가, 기업의 보도자료에는 주가와 시장의 계산이 깔려 있다. 시민의 입장에서는 이 다양한 이해관계들이 충돌하는 지점을 찾아내는 일이 중요하다. 이해관계가 드러나는 순간, 말은 제자리를 찾고, 판단은 정확해진다.
스쳐가는 영상들 속에서 스크롤을 멈추고, 제목을 다시 읽고, 내용을 확인하고, 마음이 먼저 반응할 때 “왜?”라고 묻는 의식들이 쌓이면, 정치와 언론, 사법과 행정의 언어는 더 정교해질 수밖에 없다.
시민이 바뀌면, 메시지는 조정된다. 민주주의는 일상의 스크롤과 대화, 구독과 취소, 클릭과 무시 속에서, 조용히 방향을 튼다.
지난 몇 년 동안 우리 사회는 ‘정의의 최후 보루’라는 말의 무게를 시험받아 왔다. 사법부를 향한 불신은 진영과 무관하게 반복되었고, 판결은 누군가에게 불공정의 증거로 읽혔다. 그러나 제도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제도를 바꾸는 길은 비난이 아니라, 사실을 매개로 한 설득이다. 판결문을 읽고, 근거를 확인하고, 다른 사례와 비교하며, 필요한 개혁을 제시할 때 제도는 움직인다.
선거의 계절에 우리 자신에게 묻는다. 우리는 어떤 시민인가. 분노를 먼저 하고 사실을 찾아가는 시민인가, 아니면 사실로 마음의 온도를 조절하는 시민인가. ‘더 큰 목소리’가 아니라 ‘더 깊은 호흡’이 필요하다. 그것이 위임의 신뢰를 만드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