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파도 위를 달려 북극의 품으로"...인사이드 패시지 항해기
거친 태평양, 후퇴하는 빙하, 붉은 살롱까지… 알래스카의 심장 주노에서 만난 낭만과 아이러니
[뉴스인] 정영훈 여행전문 칼럼니스트 = 스타벅스의 거피향을 뒤로하고 청명한 날씨 속에 시애틀항을 떠났다. 첫번째 목적지는 알래스카의 주도인 주노(Juneau)이다. 시애틀에서 주노까지의 거리는 1,000km가 넘는 먼 거리로 꼬박 이틀간의 항해가 필요한 장 거리이다. 이 항로는 옛날 인디언들이 수렵활동에 이용하던 항로로 태평양의 거친 파도를 피해 연안의 섬과 섬사이를 연결하여 통과하는 항로로 인사이드 패시지(Inside Passage)라고 불리운다. 일종의 해상 고속도로(Marin Highway)라고 할 수 있다.
평소에는 잔잔하던 인사이드 패시지의 파도가 이번에는 달랐다. 캐나다 빅토리아 섬을 통과하는 시점부터 배가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크루즈 선박은 다른 선박과 달리 파도로 부터 배의 균형을 잡아주기 위한 스태빌라이저(stabilizer)라고 하는 별도의 장치가 있어 웬만한 파도에도 안정감있는 항해가 가능하도록 되어있다. 그런데 흔들렸다. 그것도 오랜시간 동안 흔들려 크루즈 여행이 처음인 고객들이 고생하였다. 그래도 주노항 도착때까지 별일없이 무사히 도착하였다. 태평양이라는 거대한 바다의 파도가 지중해 등의 내해성 바다의 파도와 성격이 많이 다르다고 느낀 항해였다.
이틀간의 항해를 거쳐 도착한 첫번째 기항지인 주노는 현재 미국 알래스카 주의 주도이다. 우리에게 알래스카 하면 떠오르는 앵커리지는 알래스카에서 가장 큰 도시이지 수도는 아니다. 그런데 주노는 주도임에도 불구하고 인구가 3만명에 불과하다. 시내 역시 우리나라 지방의 소도시 수준보다 작다. 그런데 여기에 재미있는 반전이 있다. 시골 마을 수준의 주노의 행정구역상의 면적으로는 미국 최대의 도시라고 한다. 뉴욕, LA 보다 크다는 것이다. 이유는 주노 바로 앞에 있는 더글라스 섬을 1970년대에 통째로 행정구역에 편입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가 도착한 주노항에는 이미 두척의 대형 크루즈 선박(Holland America Koningsdam, Holland America Eurodam)입항해 있었다. 우리가 탄 배(Princess Cruise Royal)세번째로 들어왔고, 곧이어 네번째 초대형 크루즈 배(NCL Bliss)가 바로 뒤따라 들어왔다. 모두 10만톤에서 18만톤까지 초대형 크루즈 선박이다. 거의 주노 전체인구에 근접하는 규모의 크루즈 승객들로 인해 작은 소도시 주노가 순식간에 인산인해를 이루는 아이러니한 모습이 연출되었다.
혼잡한 주노항구를 떠나 우리 일행이 향한 곳은 멘덴홀 빙하(Mendenhall Glacier)이다. 폭 2.3km, 길이 19km, 두께 93m의 알래스카의 대표적 빙하 중의 하나이다. 가장 접근성이 좋은 빙하이기에 대부분의 크루즈 승객들이 찾는 곳이다. 요즘 우리가 말하는 지구 온난화의 영향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멘덴홀 빙하가 가장 컸었던 1767년 대비 현재의 빙하는 4km 정도가 뒤로 후퇴하였다고 한다. 이 속도로 녹는다면 다음 세기에는 소멸할 수도 있다고 한다.
멘덴홀 빙하를 조금더 가까이 잘 보기 위해서는 너겟폭포(Nugget Falls)까지 트레킹을 하여야 한다. 비가 오는 궂은 날씨이지만 모두 알래스카의 때묻지 않은 청정 무공해 숲속길을 경쾌한 발걸음으로 움직였다.
곧 이어 웅장한 너겟폭포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높이 115m의 너겟폭포는 빙하가 녹은 물로 만들어진 폭포라고 하는데, 최근 이 지역의 계속되는 비로 말미암아 수량이 어마어마하게 늘어난 모습이다. 폭포 바로 앞 멘덴홀 호수도 물이 넘쳐나고 있었다. 푸른 빛의 빙하 옆에 하얀 포말을 쏟아내는 폭포 그리고 잿빛 하늘, 자연이 연출해 낸 또 하나의 작품이다.
멘덴홀 빙하 투어를 마치고 다시 주노 시내로 돌아왔다. 여전히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가장 먼저 주노의 명소 중의 하나인 레드 독 살롱(Red Dog Saloon)을 찾았다. 1880년대 골드러쉬 시절에 만들어진 선술집 모습을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술집이다. 2021년 트립 어드바이저 기준 알래스카 전체 음식점 중에서 랭킹7위 안에 들어가는 집이라고 한다. 그렇다보니 이곳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이미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살롱 밖으로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이 곳에서는 알래스카의 전통술인 덕 파츠(Duck Fart) 한잔을 해야 제격이다. 비 오는 날 서부시대 선술집에서 알래스카 위스키를 폼잡고 마셔본다. 분위기 최고다 !
간단하게 술 한잔을 한 이후 또 하나의 명소인 트레이시 킹 크랩 샥(Tracy King Crab Shack)을 찾았다. 알래스카 최고의 대게 맛집으로 소문난 곳이다. 이 곳 역시 만만치 않은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대기 줄이다. 레드 킹 크랩(Red King Crab), 스노우 크랩(Snow Crab), 던전리스 크랩(Dungeness Crab) 3가지 메뉴가 있다. 여기에 알래스카 로컬 맥주를 곁들이면 더 이상 바랄께 없다. 여기서는 주문을 받을때 출신지역명과 이름을 기록해야 한다. 그런 다음 대게가 준비되면 "New york, Smith", "England London, James", "South Korea, Mr. Jung" 등등 이름을 크게 호명한다. 먹는 재미 이외에 또 하나의 볼거리다. 크루즈로 여행온 전세계인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벌써 어둠이 내려 앉았다. 이제 배로 돌아갈 시간이다. 하루종일 내리는 비를 맞으며 선창가 길을 재촉하니 정박해 있는 크루즈 선박의 화려한 불빛이 눈에 들어온다. 비오는 주노의 밤을 더없이 운치있게 만들어주고 있다.
낭만적인 하루였다 !
로맨틱 주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