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점거” 논란…교보자산신탁 용역 투입 의혹, 무엇이 있었나
용인 ‘죽전테라스앤139’ 현장 파고들기…관리권 분쟁의 선을 넘었나, 법과 윤리는 어디에 서 있나
[뉴스인] 조진성 기자 = 지난 8월31일 새벽 6시20분경 용인시 ‘죽전테라스앤139’ 아파트 단지에서 교보생명 100% 자회사인 교보자산신탁이 대규모 용역 인력을 투입해 관리사무소와 단지 주요 공간을 점유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현장에는 경찰 기동대가 출동했고, 주민들은 엘리베이터 중단과 비상공간 점거 등으로 공포를 호소했다. 회사 측 임직원의 현장 동행 의혹, 위임장 제시 정황까지 맞물리며 법적·윤리적 쟁점이 한꺼번에 수면 위로 떠올랐다.
본지는 사건의 흐름과 쟁점을 종합해 정리했다. (모든 사실관계는 수사·사법 절차에서 최종 확정될 사안임)
◇그 새벽, 현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입주민들의 설명에 따르면, 새벽 시간대 단지에 40~50명 규모의 건장한 인력이 일제히 진입했다. 관리사무소 출입 잠금장치가 파손됐고, 관리사무소 점유와 엘리베이터 운행 중단, 상가·비상계단·화장실 등 공용공간에 인력이 배치되는 상황이 벌어졌다는 주장이다.
일부 주민은 “집에 있지만 감옥에 갇힌 기분”이라고 토로했다. 경찰 기동대 버스 2대와 다수의 경찰관이 출동해 현장 질서 유지를 시도했으나, 용역 인력은 일정 시간 단지 곳곳에 남아 있었다는 증언이 이어졌다.
현장에는 교보자산신탁 임직원이 동행해 용역을 인솔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들은 ‘D용역’에 관리업무를 위임했다는 서류를 제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위임장만으로 공용공간 점유, 출입 차단, 설비 중단 등의 물리력이 정당화되는지 여부는 별도의 법적 판단이 필요한 대목이다.
◇사건의 뿌리…책임준공 지연과 하자 보수 갈등
사건 배경에는 책임준공 지연과 하자 문제가 놓여 있다. 교보자산신탁이 맡은 사업의 준공이 약 9개월 지연됐고, 시공사 부도 이후 주요 하자 보수가 장기간 방치됐다는 것이 입주민 측 주장이다. 입주를 마친 약 70세대는 자비로 보수공사를 진행해야 했고, 그 사이 관리권한과 비용 부담을 둘러싼 갈등이 첨예화했다. 한편 교보자산신탁이 기분양대금에서 매월 수수료를 받아왔다는 문제 제기도 나오며, “합법적 소송·집행 대신 물리력에 기대 갈등을 덮으려 했다”는 비판이 증폭됐다.
◇법적 쟁점…관리권 분쟁 vs. 형사책임 가능성
이번 사안의 핵심 쟁점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관리권한이다. 신탁계약과 위임계약이 존재하더라도, 실제 현장에서 공용시설 점유·운영 중단·출입 제한을 동반한 물리력 행사가 허용되는 범위는 엄격하다. 법원의 판결문·집행문 등 집행권한이 없는 상태에서 강제력이 동반됐다면 주거침입·재물손괴·업무방해 등 형사책임 성립 여부가 문제가 될 수 있다.
둘째, 증거 보전과 절차다. CCTV, 출입·통신 기록, 설비 운행 로그 등 사실 확인에 필요한 자료의 보전 의무가 중요하다. 절차적 투명성은 이후 민·형사 책임 판단의 기초가 된다.
셋째, 주민의 안전과 생존권이다. 비상대피·승강 설비, 의료·돌봄 접근성 등 안전 설비의 정상 가동은 어떤 분쟁에서도 우선돼야 한다. 만약 엘리베이터가 고의로 중단됐다면 그 자체로 사회적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그룹 리스크…‘윤리경영’과 현장의 괴리
교보자산신탁은 교보생명의 100% 자회사다. 모회사인 교보생명은 보험업계에서 신뢰와 윤리를 강조해 왔다. 그러나 이번 논란은 브랜드와 ESG 평판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
윤리경영을 내세우는 대기업 자회사가 새벽 시간대 용역 투입이라는 강경한 방식으로 현장 분쟁에 개입했다는 문제 제기는, 단일 현장을 넘어 그룹 거버넌스와 현장 컴플라이언스 전반에 대한 의문으로 확장된다.
사건 처리 과정에서의 소통, 사실 공개의 투명성, 피해 회복 노력은 평판 복원의 최소 조건이다.
◇남은 질문들…사실관계 확인이 필요한 핵심
현재 시점에서 확인되어야 할 질문은 분명하다.
첫째, 법원의 집행문 등 강제집행 근거가 존재했는가. 존재했다면 범위와 대상은 무엇이었는가.
둘째, 위임장의 효력 범위는 어디까지이며, 용역 인력의 현장 행위는 그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는가.
셋째, 설비 중단 및 공간 점유가 주민의 안전을 실질적으로 위협했는가. 구체적 피해가 발생했다면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넷째, 임직원 동행·지휘 의혹의 사실 여부와, 그 결정 경로·승인 라인은 어떻게 구성돼 있었는가.
다섯째, 하자 보수 및 책임준공 지연에 대한 실체와 원인, 그리고 이후 대책은 무엇인가.
◇필요한 조치…갈등의 ‘절차’를 바로 세워라
첫째, 진상조사와 증거 보전이 선행돼야 한다. CCTV·출입기록·설비 로그를 원본 그대로 보전하고, 당사자·목격자 진술을 동시 확보해야 한다.
둘째, 비상 안전 조치를 즉시 복구해야 한다. 엘리베이터·비상계단·공용 화장실 등 필수 설비의 정상 가동과 주민 접근 보장을 최우선으로 한다.
셋째, 중립적 조정 테이블을 열어야 한다. 지자체·경찰·소방 등 공적 기관, 입주민 대표, 신탁사·관리 주체가 참여하는 절차를 구성하고, 사실관계가 정리될 때까지 일체의 물리력 행사 중단을 선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넷째, 재발 방지를 위한 그룹 차원의 현장 컴플라이언스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 용역 투입 기준, 임직원 현장 개입 요건, 비상 설비 중단 금지 원칙을 문서화·공개하고, 위반 시 책임소재를 명확히 해야 한다.
◇법과 윤리 위에 선 ‘현장’은 없다
이번 사안은 관리권 분쟁의 기술적 문제를 넘어, 대기업 자회사의 현장 개입 방식이 법과 윤리를 어떻게 대면해야 하는지 묻는다. 위임장이나 계약서가 있더라도, 법원의 집행 권한 없이 새벽 시간대 대규모 인력을 투입해 공용공간을 점유하고 설비를 중단했다는 주장은 결코 가볍지 않다.
법치주의 질서는 절차의 투명성과 인권의 존중에서 출발한다. 교보자산신탁과 관련 당사자들은 사실관계를 명확히 밝히고, 주민의 안전과 권리를 최우선으로 하는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이번 사건이 또 하나의 소모적 갈등으로 남을지, 현장의 법과 윤리를 재정립하는 전환점이 될지는 앞으로의 선택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