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던 위스키, 왜 외면당하고 있나”
김효헌의 스코틀랜드이야기
[뉴스인] 김효헌 =전통이 흔들리고 있다 – 수출, 소비, 환경이 모두 위협이다
한때 세계 프리미엄 증류주의 대명사로 불리던 스코틀랜드산 스카치 위스키. 그러나 지금, 이 전통 산업이 조용히 무너지고 있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듯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모두의 책임이다. 국제 정세, 소비자 취향, 기후 변화까지—위스키 산업은 지금 총체적 위기 속에서 방향을 잃고 있다.
관세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2019년, 미국은 EU와의 항공기 보조금 분쟁을 이유로 스카치 위스키에 25%의 보복 관세를 부과했다. 이 ‘관세 폭탄’은 2021년 해제되었지만, 불안은 끝나지 않았다.
2025년, 트럼프 전 대통령은 다시 한번 위스키를 포함한 유럽산 주류에 최대 2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그 위협은 7월, 현실이 되었다. 스카치 위스키에 10%의 신규 관세가 부과된 것이다.
수십 년간 미국은 스코틀랜드 위스키의 최대 시장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불확실성과 추가 비용의 땅이다. 수출업자들은 “전통 시장을 잃는 것보다 더 나쁜 건, 예측 불가능성”이라고 말한다. 트럼프든 바이든이든, 이 정치적 위험은 계속될 것이다.
중국도, 한국도 등을 돌렸다
한편, 아시아 시장에서도 분위기는 좋지 않다. 한때 ‘부의 상징’으로 추앙받던 고급 위스키는 중국 내 경기 둔화와 소비 위축으로 인해 외면당하고 있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2025년 상반기, 한국의 위스키 수입량은 전년 대비 10% 가까이 감소했다. 고가 위스키의 물량은 그대로 남아 있고, 창고는 점점 차오른다.
이쯤 되면 단순한 소비 심리 문제가 아니다. 명품이 일상이 되어버린 시대에, 위스키의 “희소가치”는 사라졌고, 전통의 매력은 젊은 세대에겐 낡은 서사일 뿐이다.
소비자도 변했고, 기후도 변했다
스코틀랜드 내에서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음주 인구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 웰빙, 비건, 논알코올—이제 알코올은 자랑이 아닌, “조심해야 할 것”이 되었다.
기후 문제도 심각하다. 증류에 필요한 물과 보리는 날씨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이상 기후로 인한 원료 수급 불안정과 생산비 상승은 예외가 아닌 상수가 되었다. 환경 규제도 강화되면서, 수백 년 이어온 증류 방식마저 바꾸어야 할 지경이다.
위스키가 살아남기 위해선
우리는 단순히 “위스키 산업의 위기”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지역 경제, 문화, 기술, 그리고 수출 전략 전체의 문제다.
스코틀랜드 GDP에서 위스키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1.5%에 달한다. 그 어떤 전통산업보다 많은 일자리를 만들고, 세계 무대에서 “스코틀랜드”라는 이름을 각인시켜왔다.
이제는 정책적 대응이 필요하다. 관세 협상은 외교의 최전선에서 다루어야 하며, 국내 소비를 회복하기 위한 마케팅·세제 지원도 시급하다. 위스키 산업 자체도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더 가볍고, 더 다양한 소비 방식, 더 친환경적인 생산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세계가 사랑한 위스키는 여전히 훌륭하다. 그러나 사랑만으로는 지켜지지 않는다. 전통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살아남기 위해선 바뀌어야 한다.
지금 이 순간, 스카치 위스키는 변화할 것인가, 아니면 박물관 속 유산이 될 것인가—선택은 우리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