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남편 둘과 함께 사는 여자 – 비정상이 만든 정상의 삶
김효헌의 스코틀랜드이야기
[뉴스인] 김효헌 =전 남편 두 명과 함께 삽니다.”
처음 이 문장을 마주했을 때, 나는 멈칫했다. 익숙한 상식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도대체 왜? 어떻게? 그럴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크리스티 드 가리스라는 여성의 이야기를 읽고 난 뒤, 나는 오히려 이렇게 되묻고 있었다. 이렇게 살 수도 있겠다.
다음은 크리스티 드 가리스 (Kristie De Garis) 의 이야기다.
많은 이들이 헤어진 연인과 다시 한집에 사는 상상을 한다면 몸서리칠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상상을 실현했다. 그것도 두 번. 현재 나는 전 남편 두 명과 두 딸과 함께 스코틀랜드 시골의 한 집에서 살고 있다. 주변 사람들은 우리를 ‘쓰루플(throuple)’이라 오해한다. 즉, 세 명이 연애 관계를 맺고 사는 관계. 하지만 사실은 훨씬 더 실용적인 이유다. 이건 사랑이 아니라 생존의 방식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다시 살게 한 선택이었다.
어릴 적 내가 꿈꾸던 인생은 꽤 근사한 삶이었다. 멋진 남편, 아이들, 성공적인 커리어, 다정한 가정. 그러나 현실은 예상 밖이었다. 스물 한 살에 첫 결혼, 몇 년 후 이혼. 두 번째 남편과의 관계도 10년 만에 마무리됐다. 그렇게 나는 두 명의 전 남편, 두 명의 아이, 하나의 집을 두고 고민하게 됐다. 팬데믹 시기, 집값은 오르고 이사비용은 부담스러웠다. 결국 선택은 하나뿐이었다. 같이 살기. 물론 이상적이진 않았다. 청소 스타일 충돌, 육아 방식 충돌, 감정의 불협화음. 하지만 동시에, 이건 아주 현실적인 문제를 아주 현실적인 방식으로 풀어낸 결과였다.
이 동거가 가능했던 이유는 단순했다. 나 혼자 더는 다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간 나의 삶은 모든 것을 혼자 감당 해야 하는 엄마였다. 아픈 아이 돌보기, 학교 서류 챙기기, 급식 신청, 병원 예약 등. 모든 게 내 머릿속에서만 굴러갔다. 전 남편들이 아이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들은 단지 나처럼 '시스템을 돌릴 준비'가 안 되어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다시 집으로 들였고, 가사와 육아의 기술을 강제로 나누게 했다. 물론 갈등도 있었다. "너무 이기적이다", "왜 이렇게 예민하냐"는 반응도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점차 작은 변화들이 일어났다.
한 전 남편은 일요일마다 로스트 치킨을 만든다.
다른 한 전 남편은 욕실 청소와 요일별 저녁 식사를 맡는다.
나는 종종 빨래를 잊고 그냥 두지만, 어느샌가 개어져 있다.
이런 일상은 거창하지 않지만, 바로 이런 작고 반복적인 협력들이 우리 가족을 지탱한다.
가장 큰 변화는 나 자신이다. 과거에는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안 돌아갔다. 이제는 다르다. 내가 아파 누워 있어도, 누군가가 밥을 차리고, 아이 숙제를 봐주고, 쓰레기를 버린다. 집이 망가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사실은 내게 해방감을 준다.
아이들도 이런 환경 속에서 자란다. 두 딸은 가사와 육아를 성별에 따라 나누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임을 자연스럽게 체득하고 있다. 이게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실질적인 페미니즘 교육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TV 드라마도 아니고, 혁명가도 아니다. 그저 같은 아이들을 사랑하는 세 명의 어른일 뿐이다. 따로 자고, 각자 일정대로 움직이며, 공동의 생활을 유지한다. 특별할 것 없는 집안일, 마트 장보기, 구글 캘린더 공유. 이 모든 것들이 우리가 만들어 낸 새로운 가족의 방식이다. 우린 정말 섹스를 하지 않고, 커플도 아니고, 부부도 아니다.
물론 불안정한 요소도 있다. 언젠가 누군가 사랑에 빠져 나갈 수도 있다. 아니면 나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우리가 만든 이 비정상적인 삶이 내겐 가장 정상적이고 소중하다.
혹자는 전통적인 가족 형태에서 벗어난 이 구조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핵심은 비혼이나 다혼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에게 맞는 삶의 방식을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용기에 대한 이야기다. 정해진 틀 속에서 무너지는 대신, 판을 다시 짜고 있는 여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다. 어쩌면 이 가족 형태가 미래의 가족 형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