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유럽으로 돌아가는가?

- 김효헌의 스코틀랜드이야기

2025-06-09     김효헌

[뉴스인] 김효헌 ="브렉시트 ‘리셋’ 협정이 불러온 새로운 균열과 현실"

2025년 5월, 영국과 유럽연합(EU)은 다시 손을 맞잡았다. 키어 스타머 총리와 EU 집행위원장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이 서명한 ‘전략적 파트너십 협정’은 무역, 방위, 청년 이동성을 포함해 전방위적인 협력을 복원한다는 점에서 브렉시트 이후 가장 획기적인 진전이다. 영국 언론은 이를 ‘브렉시트 이후 시대의 재설계’라며 반기고 있다. 하지만 과연 이 협정은 국민 전체의 신뢰를 받고 있는가?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약 70%는 EU와의 이번 협정을 지지한다. 특히 청년층(18–34세)의 압도적 다수는 Erasmus+ 복귀, 청년 이동성 비자 확대, e‑Gate 사용 허용 등을 통해 유럽과의 연결이 복원되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이들은 브렉시트를 역사적 사건으로 받아들이되, 삶의 기회와 실리를 추구하는 현실주의 세대다. 중장년층에서도 50% 이상은 브렉시트의 정체성을 지키고 싶지만, 동시에 경제와 교류의 필요성은 인정하고 있다. 정치보다 밥상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일부 계층과 정치인들은 이 협정을 정면으로 비판한다. 특히 강력한 브렉시트 지지자였던 어업 공동체는 이번 합의에 대해 ‘우리를 또 희생시켰다’고 반발한다. 

 

 

어획권을 EU 선박에 2038년까지 허용한 결정은 브렉시트 약속의 파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스코틀랜드 어업연맹은 이 협정을 horror show(참사)라고 불렀다. 전 총리 보리스 존슨은 이번 협정은 완전하고 의도적인 브렉시트의 배신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는 EU가 만드는 규제를 다시 따르게 되는 것은 영국을 브뤼셀의 ‘속국(vassal state)’으로 만든다고 주장한다. 브렉시트 강경파인 Nigel Farage(Reform UK 대표) 역시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산업 협력을 위해 EU 규정을 수용하게 되면, 미국과의 무역 협상에서 영국의 독립성이 사라집니다. 우리는 다시 줄을 서는 나라가 됩니다.” 또한 Brexit 전 유럽의회 의원이자 어업인권 운동가인 June Mummery는 다음과 같이 분노했다: “해역 통제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우리 해안과 어업은 여전히 EU의 손아귀에 있습니다. 우리는 배신당했습니다.”

 

 

이번 협정은 정책적으로는 EU와의 관계 회복, 정서적으로는 브렉시트의 재해석을 요구한다. 정부는 실용을 택했지만, 브렉시트가 가져온 정체성과 지역경제의 상처는 여전히 남아 있다. 브렉시트를 둘러싼 경제적 실익 vs 국민 정체성이라는 고질적 대립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영국-EU 전략적 리셋 협정은 단순한 외교 문서가 아니다.
이것은 국민 개개인의 삶, 일터, 지역사회, 미래 계획과 맞닿아 있는 국가 정체성의 재설정 실험이다. 실용적 관점에서, 이 협정은 청년에게 기회를, 경제에 안정성을, 외교에 유연성을 제공한다. 그러나 정서적 관점에서, 일부 국민에게는 브렉시트를 통해 회복한 자주권이 다시 유럽에 흡수되는 듯한 모욕으로 다가온다. 정부의 과제는 하나다. 모든 계층에게 실익을 증명하고, 희생되는 공동체에 대한 실질적 보상과 배려를 동반할 때, 이 전략적 리셋은 국가적 합의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 협정을 정체성의 후퇴로만 볼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외교 패러다임의 모색으로 볼 것인가? 현실적으로, 글로벌 경제와 안보 환경에서 영국은 완전한 고립보다는 선택적 협력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어떤 정책이든 국민에게 그것이 어떤 의미인가를 설명할 수 없으면, 정치적 저항은 불가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