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헌의 스코틀랜드 이야기

— 전쟁을 뚫고 고향을 방문한 우크라이나 여성 마리아나의 3일간 귀향기

2025-05-20     김효헌

[뉴스인] 김효헌 ="집은 포화 속에 있어도, 결국 돌아가야 할 곳입니다”

포탄 소리, 공습 사이렌, 드론의 윙윙거림. 전쟁이 삶의 배경이 된 나라, 우크라이나. 그 한가운데로, 마리아나( 20대 여성)는 고향을 방문했다. 러시아의 침공을 피해 영국으로 피신한 그녀는 올해 4월 부활절, 부모님을 만나기 위해 고향 하르키우를 찾았다. 비행기 대신 국경을 넘는 자동차, 15시간짜리 기차, 세 번의 환승. 총 3일간의 여정. 그 길 위에서 그녀는 “그래도 나는 결국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비행기로는 갈 수 없어요. 전쟁 중이니까요.”

 

“에든버러에서 우크라이나까지 직항은 불가능해요. 지금 우크라이나 상공은 전쟁 중이니까요.”

마리아나는 부활절 직전인 4월 7일, 에든버러 공항에서 폴란드 크라쿠프행(Krakow) 비행기를 탔다. 이후 차량 공유 플랫폼인 ‘블라블라카(BlaBlaCar)’를 이용해 국경까지 이동했다. 국경에서는 3시간 이상 대기한 후 다시 리비우(Lviv)로 들어갔다. 우크라이나 서부 도시 리비우에서 동부 하르키우(Kharkiv)까지는 기차로 15시간. 운 좋게 구한 기차표 덕에 밤새 열차를 타고 이동한 끝에, 정오쯤 고향에 도착했다. 마지막으로 자동차를 타고 부모님이 거주하는 작은 마을로 향하는 데 또 한 시간이 걸렸다.

“여정 전체가 거의 이틀 걸렸어요. 돌아올 땐 더 오래 걸렸고요.”

돌아오는 길은 금요일 저녁 하르키우에서 시작됐다. 그녀는 다시 키이우로 이동한 뒤, 우연히 바르샤바로 운전해 가는 젊은 여성을 만나 동행했다. 하지만 국경에서만 무려 8시간을 대기해야 했고, 바르샤바에 도착한 것은 일요일 밤이었다. 그곳에서 하룻밤을 머무른 후, 월요일에야 다시 영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고향은 여전히 전쟁터였다

기나긴 여정을 견뎌 도착한 고향. 하지만 마리아나가 본 하르키우는 평화롭지 않았다. 매일같이 울리는 공습 사이렌, 언제 터질지 모를 미사일, 끊임없는 드론 소리. 그녀는 마치 “전쟁을 듣는 듯한 일상”이라고 표현했다.

“드론 소리는 마치 오래된 오토바이 소리 같아요. 한 번은 로켓이 하늘을 가로질러 오는 걸 봤어요. 붉은 불빛이 점점 가까워지는데 정말 무서웠어요. 다행히 우리에게 떨어지진 않았죠.”

하르키우와 그 인근은 러시아군의 집중 포격 대상이다. 마리아나는 “하루에 15~16발의 미사일이 쏟아진다”며, 민간 인프라와 주택가가 공격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부모님이 사는 마을도 예외는 아니다. 그는 “부모님은 건강이 좋지 않지만, 떠나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고향이니까요.”

친구의 무덤 앞에서 자전거를 포기하다

“정말 자전거를 타고 싶었어요. 고향에서 바람을 맞으며 달리고 싶었죠. 그런데… 제 친구들과 군인들이 묻힌 묘지를 지나가야 했어요.”

마리아나는 눈물을 삼켰다. 그녀의 친구들(남자들은 60세까지 우크라이나를 떠날 수 없다) 중 다수가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었다. 묘비 하나하나에는 웃고 있는 얼굴이 담겨 있었고, 그 얼굴들은 살아 있을 때 그녀와 함께 웃던 사람들이었다. 어느 이웃은 1년 넘게 실종 상태다. 군인 친구들은 “점령지에 있었으니 아마 죽었을 것”이라 말한다.

“이런 현실을 마주할 때마다 마음이 찢어져요. 그들은 모두 평범하고 따뜻한 사람들이었어요.”

“러시아는 우리를 파괴하려 합니다”

 

마리아나는 러시아군의 만행에 대해 참혹한 증언을 이어갔다. 그녀는 포로가 된 지인들의 이야기, 그리고 돌아온 이들이 겪는 트라우마를 언급했다.

“러시아는 포로를 고문하고, 불구로 만들어요. 성기를 절단당하고 돌아온 남자들도 있었어요. 민간인도 예외가 아니에요. 여성, 아이들, 노인까지 고문과 성폭력을 당했어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해요.”

그러나 그녀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깁니다. 저는 반드시 그렇게 믿어요. 선은 언제나 악을 이깁니다.”

"전쟁이 끝나면, 다시 고향으로"

마리아나는 영국에서 안정된 삶을 살고 있지만, 마음은 늘 고향에 있다. 그녀는 “선택권이 있다면 항상 고향을 택한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저는 절대 조국을 떠나지 않았을 거예요. 여행은 좋아하지만, 삶은 고향에서 살고 싶어요.”

그녀는 전쟁이 끝나면 자신을 도운 사람들, 그리고 전 세계 시민들을 우크라이나로 초대하고 싶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는 정말 아름다운 나라예요. 자연도, 음식도, 사람들의 따뜻함도 느껴 보셨으면 해요. 그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당신이라면, 고향을 빙문 할 수 있었을까요?”

마리아나의 귀향기는 단지 한 사람의 경험담이 아니다. 전쟁 속에서도 가족과 고향을 지키려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이자, 현재진행형인 우크라이나 전쟁의 민낯이다. 그녀의 용기 있는 귀향이, 전쟁의 실상을 마주하게 하고, 동시에 인간의 회복력과 희망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마리아나와 같은 사람들이 있는 한, 그 나라는 아직 지지 않았다.

우크라이나는 여전히 전쟁 중이다. 그리고 이들은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는 전쟁이 끝나기를, 그 다음에는 반격이 끝나기를, 그 다음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여전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긴 협상이 있을 것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우리는 희망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