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가우디의 시간 속으로, 바르셀로나를 걷다”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빚어낸 신의 도시에서
[뉴스인] 정영훈 여행전문 칼럼니스트 = 바르셀로나에 다시 발을 디뎠다. 봄의 기운이 물씬 배인 람블라스 거리는 초록으로 물들었고, 거리엔 여전히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 길을 따라 한때 피카소, 후안 미로, 살바도르 달리와 같은 거장들이 걷고, 스페인 현대미술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바르셀로나는 예술과 스포츠, 그리고 한국인에게는 1992년 올림픽의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로도 기억되는 도시다.
그러나 이 모든 수식어를 압도하는 하나의 이름이 있다.
‘안토니오 가우디’, 그리고 그의 불멸의 역작 사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ília).
가우디라는 천재 한 사람으로 인해 바르셀로나는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전 세계 여행자들이 꿈꾸는 성지가 되었다. 그의 건축은 단순한 공간이 아닌, 신과 인간, 자연과 영혼이 공명하는 ‘기도하는 조형물’이라 불러도 과하지 않다.
‘신이 머물 수 있는 지상의 유일한 공간’이라는 찬사를 받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1883년 가우디가 참여한 이래 지금도 건설 중이다. 당초 가우디 서거 100주년인 2026년 완공을 목표로 했으나,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일정이 연기되어 최근 발표된 최종 완공 목표는 2033년으로 조정되었다. 비록 전체 일정은 미뤄졌지만, 가장 높은 예수와 성모 마리아 탑은 2026년을 기점으로 마무리될 예정이다.
가우디는 생전에 “직선은 인간의 선, 곡선은 신의 선”이라 했다. 그는 건축에서 자연을 신의 작품으로 바라보았고, 이를 그대로 반영해 성당 곳곳에 곡선, 자연광, 유기적 형상을 적극 도입했다. 그 결과,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유럽 전통 성당과는 전혀 다른, 햇빛과 그림자가 매 순간 변주를 이루는 경이로운 공간으로 완성되고 있다.
성당 내부의 기둥은 마치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는 나무처럼 생명을 품고 있으며, 천장에서 쏟아지는 채광은 신성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어느 각도에서 보든, 이는 예배당이자 예술의 정점이다.
성당은 그리스도의 생애를 중심으로 ‘탄생의 파사드’, ‘수난의 파사드’, ‘영광의 파사드’라는 세 가지 테마를 중심으로 조형되고 있다. 이 중 가우디가 직접 설계하고 조각까지 참여한 부분은 ‘탄생의 파사드’와 지하 경당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신과 인간의 관계를 자연이라는 매개를 통해 형상화함으로써, 자신의 철학을 건축 그 자체로 구현해냈다.
그 뒤를 이은 예술가들 중 특히 주목할 인물은, 1990년 ‘수난의 파사드’를 완성한 조셉 마리아 수비락스다. 가우디라는 거대한 유산 앞에서도 그는 위축되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조형 언어로 작품을 완성했다. 마치 한 시대를 대표하는 다른 별이 새로 뜬 듯한 감동이다.
이제 남은 퍼즐은 마지막, ‘영광의 파사드’다. 성당의 정문에 해당하는 이 부분이야말로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마지막 화룡점정이다. 과연 어떤 천재가 이 대미를 장식하게 될까.
신의 손길이 깃들기를, 다시 한 번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