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여행기] "천재의 고통, 천국의 햇살 속에 피어나다"
5월, 팔마 데 마요르카에서 쇼팽과 안익태를 만나다
[뉴스인] 정영훈 여행전문 칼럼니스트 = 초록이 짙어가는 5월, ‘지중해의 하와이’로 불리는 팔마 데 마요르카에 도착했다. 한국인에게는 아직 조금 낯설 수 있지만, 유럽 내에서는 손꼽히는 명품 휴양지다. 연중 300일 이상 맑고 온화한 날씨, 깨끗한 공기, 그림 같은 해안선을 자랑하며, 스페인 왕실은 물론 세계적인 셀럽들의 여름 별장이 즐비한 곳. 은퇴한 북유럽 사람들의 ‘제2의 인생’을 위한 낙원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이곳은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한국과도 깊은 인연을 지닌 특별한 장소다. 축구선수 이강인이 파리 생제르맹으로 이적하기 전 활약했던 마요르카 FC가 이 섬에 자리하고 있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애국가의 작곡가 안익태 선생이 생의 마지막 18년을 머문 곳이기도 하다. 그는 이곳에서 마요르카 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로 활동하며 음악 인생의 황혼을 아름답게 장식했다.
팔마 중심가에는 안익태 선생을 기리는 기념 조형물과 애국가 악보 동판이 세워져 있다. 그 앞에 서면, 어느새 한국 관광객들은 자발적으로 애국가를 부르게 된다. 이국의 땅 한복판에서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뜨거움이 울컥, 눈시울을 적신다. 이곳에서 그는 단지 외국인 음악인이 아니라, 한 시대를 연 예술가로 기억되고 있다.
마요르카는 또한 쇼팽과 조르주 상드의 드라마틱한 러브스토리로도 유명하다. 1838년 겨울, 폐결핵 치료를 위해 이 섬에 머물렀던 쇼팽은 당시 유부녀였던 상드와 함께 있었던 사실 때문에 지역 사회로부터 차가운 시선을 받았다. 결국 두 사람은 외딴 발데모사 수도원의 버려진 헛간 같은 공간을 숙소로 삼게 된다.
그곳에서 쇼팽은 빗물이 스며드는 지붕 아래에서 악상을 떠올렸다. 그렇게 탄생한 곡이 바로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빗방울 전주곡(Prelude in D-flat Major)’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폐결핵이라는 고통 속에서 태어난 이 곡은 지금까지도 전 세계인의 감성을 울리는 음악으로 남아 있다.
현재 발데모사 수도원에서는 매년 2월 11일, 쇼팽을 기리는 음악제가 열린다. 정명훈을 비롯한 수많은 세계적 피아니스트가 무대를 빛냈으며, 수도원 내부에는 그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전시관도 마련돼 있다.
187년 전, 쇼팽이 이곳에 도착한 날은 비가 내렸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쇼팽이 꿈꿨을 법한 햇살 가득한 마요르카의 5월을 만끽하고 있다. 신은 그에게 사랑도 건강도 허락하지 않았지만, 대신 영원히 기억될 예술적 영감을 내려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천국 같은 햇살 속에서, 그의 음악과 삶을 다시 느끼게 된다.
쇼팽이 간절히 기다렸을 따뜻한 오월의 햇살,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대신 만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