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속의 노르망디, 화가들의 숨결을 따라 걷다

2025-04-19     정영훈 여행전문 칼럼니스트

[뉴스인] 정영훈 여행전문 칼럼니스트 = 프랑스 북서부, 제2차 세계대전의 역사적 상륙지로 잘 알려진 노르망디에 도착했다.

연중 맑은 날이 고작 60일뿐이라는 이곳은 거친 바람과 파도로 유명하지만, 오늘은 예외적인 날씨였다.

잔잔한 파도, 따사로운 햇살, 그리고 한 점 바람조차 없는 평화로운 풍경이 우리를 맞이했다. 현지 가이드조차 “이런 날씨는 처음”이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화가들이 사랑한 바다, 에트르타 해변

크루즈를 통해 도착한 르아브르항에서 첫 목적지인 에트르타 해변으로 향했다. 이곳은 19세기 사실주의와 초기 인상주의 화가들이 활동했던 무대이자,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와 함께 예술의 중심지로 손꼽히는 지역이다.

특히 에트르타는 구스타프 쿠르베, 외젠 부탱, 그리고 인상주의의 거장 클로드 모네가 사랑한 장소다. 해변 양쪽에는 높이 90m의 석회암 절벽이 자리하고 있는데, 왼쪽은 아발 절벽(엄마 코끼리 절벽), 오른쪽은 아몽 절벽(아기 코끼리 절벽)으로 불린다.

이는 모파상의 소설 속 표현에서 유래했으며, 바다를 향해 코를 뻗은 코끼리의 형상을 그대로 닮았다.

이 장엄한 풍경을 배경으로 탄생한 작품들이 바로 쿠르베의 '폭풍이 지나간 에트르타', 모네의 '에트르타의 석양' 등이다. 특히 모네는 이 해변의 사계절,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와 빛의 흐름을 50점이 넘는 연작으로 남겼으며, 이는 인상주의 회화의 정점을 보여주는 결과물로 평가된다.

아몽 절벽을 숨차게 오르니, 발 아래로 펼쳐진 영국해협과 에트르타 해변, 그리고 아발 절벽의 광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나는 잠시 잔디밭에 앉아, 클로드 모네가 되어 본다. 붓을 들어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을 그려보는 상상 속에 잠긴다.

◇예술혼이 숨 쉬는 마을, 옹플레르

오후엔 화가들의 또 다른 삶의 터전이었던 옹플레르(Honfleur)로 향했다. 마을 입구 벽에는 "이곳을 사랑했던 사람들"이라는 문구와 함께 시인 샤를 보들레르, 화가 외젠 부탱과 클로드 모네, 작곡가 에릭 사티, 소설가 프랑수아 사강 등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이 작은 마을이 어째서 이렇게 다양한 예술가들의 영감을 자극했을까. 항구 주변과 골목길을 걸으며 그 이유를 찾고 싶었다. 고풍스러운 목조 건물들, 북적이는 노천카페, 햇살을 즐기는 현지인들의 여유로운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눈에 띈 건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성당 ‘생 카트린 성당’이다. 뱃사람들이 건축을 맡아 성당 내부 천장이 배 바닥처럼 만들어져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이어 외젠 부탱 미술관을 찾아 들어갔고, 그의 삶과 작품 속에서 이 지역이 예술의 무대가 된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오늘, 에트르타는 나에게 ‘모네의 날씨’를 허락했다

여행의 마지막은 골목길 카페에서 현지인들의 일상을 바라보며 마신 커피 한 잔으로 마무리했다. 사람의 인생에 밝고 흐린 날이 오듯, 자연에도 맑은 날과 비 오는 날이 있다. 오늘은 운 좋게도 화창하고 기분 좋은 날의 에트르타와 옹플레르를 만났다.

언젠가 다시 이곳을 찾는다면, 거친 바람과 짙은 안개 속의 노르망디도 경험해보고 싶다. 그날엔 또 다른 작품이, 또 다른 감동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