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서울=뉴시스헬스】임설화 기자 = 우리나라는 모든 국민이 법적으로 국민건강보험에 가입되어 있고, 전국 어디에서나 건강보험 진료를 받을 수 있다.

또 우리나라의 모든 의료기관은 국민건강보험과 당연지정 관계를 맺고 있으므로 환자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한 후에는 진료비 청구를 위해서 모든 진료내역을 건강보험당국에 제출하게 된다.

그래서 국민건강보험에는 온 국민의 건강과 질병, 의료이용 내역뿐만 아니라 직업과 재산내역 등 소상한 개인정보가 모두 축적되어 있다. 그런데 최근 금융위원회가 보험업법 개정을 통해서 국민건강보험이 보유하고 있는 국민의 건강과 질병에 대한 개인별 자료의 열람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보험사기를 조사하기 위해서 국민건강보험의 개인별 질병정보가 필요하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그런데 이 논리는 대단히 취약하다. 현재도 경찰이나 검찰 등 사법기관은 보험사기의 수사를 위해서 형사소송법과 ‘공공기관 정보 공개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해당 사건의 개인별 질병정보를 제출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유사시에 사법기관에서 건강보험 가입자의 개인별 질병정보를 활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금융위원회가 보험업법을 개정하면서까지 무리수를 두려는 진짜 이유가 무엇이냐는 시민사회의 항변에 대한 금융위원회의 답변도 시원찮기는 마찬가지다. 금융위원회가 일차적으로 보험사기를 걸러낸 뒤 검찰에 넘기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금융위원회가 검찰의 부속기관인가? 보험사기는 지금까지처럼 사법기관에 맡겨두면 될 일이다.

금융위원회는 민간보험회사들을 관리 감독하는 기관이고, 민간보험회사들은 감독과 규제를 당하는 입장에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금융위원회와 민간보험회사들은 한 편이 아니다.

그러나 민간보험 산업 전체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양자는 내용적으로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한 식구라고 볼 수도 있겠다. 이런 위치에 있는 금융위원회가 보험업법의 개정이라는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국민건강보험이 보유하고 있는 개인별 질병정보를 열람하겠다는 것은 민간보험회사들의 이익 추구, 특히 민간보험회사들이 그토록 원해왔던 민간의료보험의 활성화 조치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세간의 의심을 사기에 충분한 것이다.

만약, 실제로 보험업법이 개정되어 금융위원회가 개인의 질병정보를 열람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개인의 질병정보는 대단히 예민한 사항이어서 주변의 절친한 지인이나 심지어는 가족에게도 숨기고 싶은 부분도 있는 법이다.

우선, 프라이버시 침해의 우려가 그만큼 커지게 된다. 개인정보가 유출되어 악용될 소지도 없지 않을 것인데, 세상에 이것보다 더 두려운 일도 별로 없을 것이다. 이와 함께 시민사회가 심각하게 문제로 삼는 것은 개인별 질병정보가 민간보험회사로 넘어가는 것이다.

이것은 충분히 개연성이 큰 이야기다. 금융위원회가 보험사기를 조사하기 위해서는, 보험사기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조사하는 과정에 민간보험회사들이 관여하게 될 것인데, 이 과정에서 해당 질병정보가 민간보험회사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민사회의 우려에 대해 금융위원회는 유사시 금융위원회에만 개인 질병정보가 제공될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국민건강보험이 보유하고 있는 국민의 개인별 질병정보는 사법기관의 요청이 있었던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떤 경우에도 외부기관으로 나간 적이 없었다.

만약에 이번에 보험업법의 개정이 현실화되어 금융위원회로 이들 개인별 질병정보자료가 나가게 되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사법기관이 아닌 곳으로 국민건강보험의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관행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저수지 둑에 처음에는 작은 구멍이 뚫렸지만, 이것이 금방 커져서 둑이 완전히 무너지는 것과 같은 이치가 여기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공공 의료보장제도의 개인별 질병정보를 민간의료보험과 공유하는 사례는 아직까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는 민간의료보험이 국가의료제도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에서조차 개인질병정보의 공유를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민간보험회사들이 국민건강보험이 보유하고 있는 개인별 질병정보의 공유를 끈질기게 요구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부분이 이번 논쟁의 본체다. 민간보험회사들은 우리나라 의료재정체계를 미국에서 보는 것과 같은 ‘민간의료보험이 주도하는 시장주의 의료체계’로 바꾸고 싶어 한다. 지금의 국민건강보험을 최소화시키고, 그래서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이 줄어들어 생긴 시장영역과 급속한 의료비 증가로 장차 더 거대해질 추가적 시장영역을 민간보험회사들의 돈 벌이 공간으로 삼고 싶은 것이다.

민간보험회사들의 이러한 욕망은 2005년 8월의 보험업법 개정으로 생명보험회사들도 실손형 의료보험 상품을 판매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더 노골화된다.

그 후부터 지속적으로 국민건강보험의 개인질병자료를 민간보험과 공유하도록 요구해왔으나 시민사회의 강력한 반대와 국민정서의 거부감으로 지금까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질병정보를 공유하지 못해 지난 3년 동안 ‘실손형 의료보험’ 상품을 출시하지 못하던 생명보험회사들이 최근에 ‘실손형 의료보험’ 상품을 시중에 내놓았다. 생명보험회사들은 이제 이들 상품을 국민 개개인에게, 가급적 건강한 사람에게 많이 팔아야 한다.

어떤 사람이 질병에 걸릴 확률이 더 높은지, 소위 위험률을 알아야 할 필요성이 더 커졌다. 보험가입 허용 여부와 위험률에 따른 보험료 차등 책정 등을 위해서는 개인질병정보가 절실해졌다.

최근 우리사회에 ‘의료민영화’ 논쟁이 일고 있다. 영리법인 병원의 허용과 민간의료보험의 활성화, 이에 다른 국민건강보험의 축소를 의료민영화로 정의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이번 금융위원회의 개인질병정보 열람 추진은 의료민영화 추진 의혹의 여지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대형 생명보험회사들이 ‘실손형 의료보험’ 상품을 출시한 시기에 흘러나온 금융위원회의 보험업법 개정 추진은 실손형 의료보험을 중심으로 한 ‘민간의료보험의 활성화’ 조치의 시발로 볼 수 있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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