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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 인생사, 헬보이짱 투어 장경수 대표를 만나다
김동석 기자 | 승인 2019.03.04 15:07

[뉴스인] 김동석 기자 = 연기자생활부터 경호원, 태국에서의 가이드 등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
다. 현재 태국에서 유튜버로 살아가고 있는 태국 현지여행사 헬보이짱 투어 장경수 대표를 만
났다.

다음은 장 대표와의 일문일답.

- 유년 생활의 기억은

"아버지, 4살 차이 큰누나, 1살 차이 작은누나, 막내 장경수, 어린 시절 이렇게 4명이 모여한 가족을 이루고 살았습니다. 유년 생활을 생각해 보면 부모 간의 이혼, 부모 간의 갈등, 어머니의 가출 등을 어린 나이에 경험하면서 아버지의 미움과 원망이 항상 마음속에 자리잡혀 있었던 거 같아요, 친구들과 싸우기도 하고 학교와 집에 가기 싫어서 가출도 하고 눈물도 많은 그런 소심한 아이였던거 같습니다."

- 아버지는 언제 스님이 되셨나요?

"제가 20살이 되던 해 큰누나에게서 전화 한 통화가 걸려옵니다. 아버지가 우리를 보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와 몇 년 동안 왕래가 없는 상태였고 아버지에 대한원망이 풀리지 않고 있었기에 냉담하게 “누나 나는 아버지 볼 필요 없어“라고 냉정하게 거절을 했습니다. 결국 누나가 ”대전으로 빨리 내려와 작은누나도 올 거야“ 하면서 말씀을 하시기에 엄마처럼 우리를 키워 줬던 큰누나 얘기이고 거절을 할 수가 없어서 서울에서 대전으로 내려가게 되는데 내려가는 버스 안에서 많은 생각에 잠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전에 도착해 보니 어느 외각에 위치한 허름한 식당이었습니다. 저는 두려움 반 걱정 반으로 아버지를 본다는 생각에 뭔가 보이지 않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고 식당 문을 여는 순간 아버지가 스님복을 입고 목에 염주를 걸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는 많이 놀라웠고 뭔가 모르는 감정에 아버지를 보면서 누나들과 저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아버지는 속세를 벗어나서 스님으로 출가를 하셨던 거였습니다. 아버지가 저희를 보며 하셨던 말씀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게 들리는 것 같습니다. 저희를 보며 눈물을 흘리시면서 ”이제 나는 부처님 제자가 되었으니 속세에 있었을 때 아버지로서 행했던 모든 잘못을 너희들에게 용서를 구한다며 무릎을 꿇으실 때의 모습“ 저는 아직도 이 모습을 절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의 지난 모습을 보면서 호랑이 같은 아버지를 원망하며 살아왔던 모든 감정이 다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서 지금은 해발 960m 서대산 산자락에 850m에 암자를 만들어 흥국사라는 절을 지어 속세를 뒤로하고 스님으로 외롭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마음이 아프고 그 힘든 스님 생활에 아무것도 없는 산에 혼자서 토굴에서 생활하시며 속세와 인연을 끊고 부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모습을 생각하면 태국 부처님 나라에서 제가 외롭게 살아가는 모습과 비슷한 느낌이 듭니다."

서대산 흥국사 도성스님.

-대학교 시절을 회상한다면.

"대학교에 들어가기 전 등록금을 모으기 위해 지하철에서 양말 판매, 가스통 배달, 식당에서 불판 닦기, 건설 현장에서 노동일, 가라오케에서 가드역할까지 정말 닥치는대로 일을 하였습니다. 그 이후 등록금을 모아서 1996년 경기대 경호 비서행정학과에 입학하여 경호원이 되기 위한 과정을 하나씩 하나씩 밟아가고 있었습니다. 대학교시절 조교 생활을 하면서 연예인 및 대기업 회장을 대상으로 수행경호원으로 활동을 하였고 정치권에서도 수행경호원으로 들어와 달라는 제의가 들어오기 시작하여 유명정치인들까지 수행 경호하는 자리까지 올라갔습니다. 경호원의 꿈이 현실로 이루어져 가는 시기였습니다. 그 이후 24시간 대기하고 긴장감 있는 생활을 이어온 경호원 업무에 지쳐갈 무렵 아는 지인에게서 액션 연기자를 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어떻게 연기자가 됐나.

"어느 날 알고 지내던 지인한테 전화가 와서 용산경찰서로 빨리 오라고 하는 부탁 전화가 왔습니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니 지금 SBS 줄리엣의 남자를 촬영하고 있는데 액션 연기자가 오지 않아 촬영이 중단 되었다는 거였습니다. 지인의 부탁도 있고 해서 재미 삼아 가봐야겠다는 생각에 용산경찰서로 가게 되었고 주변에는 수많은 촬영 장비와 티브이에서만 봤던 차태현, 방송연기자들이 촬영 준비를 하고 있었고 옆에는 화려한 촬영 조명으로 주변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습니다.

SBS 올인 액션 연기자 시절.
신라의달밤 액션 연기자 시절.

얼떨결에 간 곳이 저의 첫 데뷔작이 됐고 그 후 김영규 무술 감독, 정두홍 무술 감독을 만나면서 액션 학교에 들어가 본격적인 액션 연기자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제2의 인생이 시작되는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토록 꿈에 그렸던 경호원을 뒤로하고 연기자의 매력에 푹 빠져 연기자의 꿈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겠다고 생각하면서 본격적으로 연기자 생활을 하게 된 겁니다.

누구나 그런 것처럼 연기자가 되기 위한 길은 너무나 혹독했습니다. 하루에 10시간씩 운동하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촬영에 몰두하게 되었고 액션 연기자로서 크고 작은 부상은 저를 항상 따라다녔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SBS에서 연기자등급을 공식적으로 받게 됩니다. 그때너무나 행복했고 주어진 무대 앞에서 촬영하고 스텝들과 어울리며 연기자들과 호흡하며 함께연기 생활을 하는 것이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세월이 흘러가고 있었고 저는액션 연기자 전문기획사에 들어가 연기자로서 계약하는 영광을 얻게 됐고 하루하루 열심히 연기를 배워가며 살아가곤 했습니다.

그때 마침 고비를 맞이하게 됩니다. 기획사가 자금 사정으로 인해 문을 닫게 됐고 받아야 할 출연료를 한 푼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겁니다. 연기자들은 봉급이 없는 터라 하루하루 촬영한 돈을 가지고 한 달이 되면 월급으로 받는 구조인데 결국은 3개월 치 방송출연료를 받지 못하고 기획사 부도로 인해 중간에 붕 뜨게 된 것입니다. 기획사 사장과 서로 형님, 동생 간으로 지내왔기 때문에 어떠한 것도 얘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한 식구였고 같은 동지였고 같은 형제였습니다. 그래도 마음은 편했습니다. 그렇게 배고픈 생활을 견디지 못해 SBS 올인 촬영을 마지막으로 연기자 생활을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정치권에서의 경호원 생활은 어땠나.

"2004년 아는 지인에게서 연락이 옵니다. 그때는 한참 18대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바쁜 시기였습니다. 유명정치인 수행경호원 제의가 들어 온 것입니다. 이를 계기로 유명정치인의 수행보좌 경호관 생활을 하면서 세상에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경험과 말로 설명할 수가 없는 수많은 일들을 하면서 저에겐 너무나 좋은 기회라고 생각을 하였고 24시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맡은 업무에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했던 것 같습니다. 그 이후 크고 작은 일들이 연속해서 발생이 되곤 했습니다. 2006년 5월20일 19:20분경 신촌 현대 백화점에서 한국을 뒤 흔드는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제가 경호하는 당 대표님께서 순식간에 테러를 당하시는 사건이 일어나게 된겁니다. 저는 그 이후로 경호실패에 대한 죄책감과 좌절감으로 더 이상 누군가를 경호 한다는 것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게 되어 그 이듬해 여름 경호관 직을 사직하게 됩니다.

-아버지 스님을 아직도 원망 하시나요.

"경호관 직에서 물러나고 나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든 과정이 있었습니다. 모든 걸 내려놓고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로 아버지 스님 절을 찾아가게 됩니다. 아버지는 저를 보고 아무런 말씀 없이 법당에 가셔서 ” 부처님 전에 절을 올리고 있었고 저는 반 정신이 나간 상태로 물끄러미 부처님 전에 절을 올리시는 아버지 뒷모습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머릿속에서 유년시절때부터 지금까지 겪어왔던 저의 인생과 아버지가 스님으로 살아가야만 했던 그 힘든 과정들이 순식간에 파노라마처럼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절을 올리고 있는 아버지를 쳐다봤습니다. 아버지는 부처님 전에 절을 올리며 힘없이 소리 죽인 채 우시고 있었고 당신이 업보를 지워서 아들이 이렇게 힘든 거에 대한 죄를 부처님 전에 회개하는 모습인 듯 보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저도 하염없이 울기만 하였습니다. 그렇게 서로에 대해 말 없는 침묵의 시간이 흐르고 저는 아버지에게 "앞으로 스님으로 모시겠습니다"라고 하며 큰절을 올리고 지금까지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혀 있었던 아버지의 원망이 눈녹듯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니 너무 마음이 아프네요.

절에서 마지막으로 헤어질 때 아버지로서 마지막으로 하셨던 말씀이 기억이 나네요 “모든 건 너의 마음에 달려있고 네가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현실이 되니 아무리 외롭고 힘들고 괴로워도 너의 자신과 싸움에서 절대 지지 말거라"라고 하셨던 말씀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게 들립니다.

-태국 생활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2009년 6월 정도입니다. 지친 한국생활에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생각에 태국 푸켓에 있는 고향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서 태국 푸켓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도피하는 마음으로 저를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 다른 나라에 가서 그냥 아무 생각없이 있고 싶었던거 같습니다. ) 태국 푸켓에 도착후 여기저기 여행지를 돌아다니고 정신이 나간 것처럼 술을 먹고 다니며 혼자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행을 하다보니 가난하지만 태국 사람들의 여유로운 미소와 평화로운 모습에 뭔가 모르게 동질감을 느끼면서 말도 안되는 언어로 그들과 대화하고 소통하며 어느세 그들과 함께 마음의 여행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렇게 태국 생활이 시작 되었습니다."

- 가이드는 어떻게 하게 되었나요?

"태국에서 살려면 일단 언어가 가장 중요했습니다. 언어를 배우기 위해선 한국 사람을 상대로 하는 가이드 일이 최고였습니다. 그렇게 친구를 통해 들어가게 된 곳이 푸켓 하나투어였고 본격적으로 가이드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가이드 생활은 군대보다 더 거센 군기가 있었고 저보다 10살 이상 차이나는 어린 친구들에게 존댓말을 해가며 90도로 인사를 하면서 가이드 일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한때 한국에서 경호원들을 훈련 시켰던 저의 이력으로 봤을 때 너무나 혹독한 생활이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저로선 더 이상 물러 설 곳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가이드가 되기 위한 과정을 밟아가며 태국의 역사, 태국의 언어, 가이드 업무지침, 행사방법 등을 공부해 가며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열심히 공부하고 배워가면서 점차 태국 생활에 적응을 하게 되었습니다.

끄라비 부부동반여행 가이드시절.

-닉네임 '헬보이짱' 유튜버가 된 과정을 소개한다면.

"태국에서 10여년 동안 살면서 가이드일을 7년 동안 했습니다. 가이드 생활을 하면서 항상 생각했던건 여행자들이 여행을 오면 여행의 행복과 즐거움으로 가득 차야될 여행이 잘못된 여행문화 구조로 인해 정해진 일정과 원치않는 옵션을 하며 강제로 쇼핑샾을 들어가야 하고 가이드는 여행자의 비유를 맞춰가며 하루에 12시간이 넘는 시간을 반복적으로 일을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현실이 너무나 싫었습니다. 저는 이런 잘못된 여행문화 구조를 깨기 위해서 과감하게 가이드일을 그만두고 여행자가 여행을 마음 편하게 여행할 수 있고 반복적으로 가는 여행지 보다는 새로운 여행지를 개척하여 여행의 선택권을 넓히고 자유여행페키지를 만들어 여행을 설계하면서 다니는 프리자유 여행을 만들어보자 하는 마음에 헬보이짱이라는 닉네임으로 새로운 여행지를 소개 하고자 유튜버가 된 것입니다.

유튜버로 활동하고 있는 헬보이짱.

-태국 전역을 다니며 방송하시는데 어려운 일은 없었나요?

"너무나 많았죠. 유튜버 방송을 하기위해선 섬, 바다, 정글 등을 돌아다니며 개발이 되지 않은 여행지만을 찾아 다니면서 촬영을하는데 실감나는 영상을 올리기위해 제가 직접 모든 체험을 해야합니다. 바다에서는 파도나 조류에 휩쓸려 떠내려 간적도 있었고 정글지역을 촬영하다가 코브라 같은 뱀을 만나는 것은 무지기 수에다가 이름도 모르는 곤충한데 쏘여 병원에 입원한적도 있고 한적한도로를 달리다 타이어가 펑크가 나서 차에서 잔적도 있고 다양한 일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제는 면역이 돼서 준비를 철저히해서 필요한 장비들을 가지고 다닙니다. 제가 이렇게 위험을 감수하면서 새로운 여행지를 다니며 유튜버 방송을 하는 이유는 그 여행지만의 아름다움에 빠지면 벗어날수가 없어서입니다. 정말 한국 사람들이 모르는 너무나 아름다운 여행지가 많아요.

태국 코따오 싸이댕리조트에서.
태국 꼬리뻬 낚시투어.

-태국 여행지 중 최고의 여행지를 뽑는다면 어디인가요?

"정말 아름다운 태국의 유럽!! 코팡안섬, 코따오섬, 낭유안섬, 꼬리뻬섬을 추천드립니다. 코팡안섬은 매달 30만 명의 전 세계 유럽인들이 한 달에 한 번 보름달이 뜰 때마다 동양의 이비자라 불리는 풀문파티를 체험하기 위해 찾아주는 섬이고 코 따오는 세계 10대 아름다운 섬으로 지정돼 있으며 세계 10대 스쿠버다이빙의 성지로 유명한 지역입니다. 또한 코따오 옆에 있는 낭유안섬은 태국 왕족이 소유하고 있는 섬으로 연간 관광객만 1000만 명이 찾아주는 한국 사람들이 잘 모르는 아주 아름다운 섬입니다.

낭유안섬 뷰포인트 정상에서.
꼬리뻬 선셋 비치에서.

꼬리뻬섬은 태국 남부 말레이시아 랑카위를 국경으로 접해있으며 태국의 몰디브라고 불려지고 있으며 바다와 풍경만 봐도 정말 마음이 힐링되는 태국에서 보석같은 섬입니다."

-마지막으로 유튜버 헬보이짱의 포부는 뭔가요.

"한 해 해외로 여행을 떠나시는 여행자만 해도 벌써 3000만 명이 넘어섰다고 합니다. 해외여행을 하기에 앞서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정말 즐거운 여행이 되기를 모든 분은 바라실 겁니다. 하지만 여행시스템의 잘못된 구조로 인해 원치 않는 쇼핑과 원치 않는 옵션을 하면서 행복해야 할 해외여행이 실망만 안고 돌아오는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 했을 거라 생각이 듭니다. 제가 생각하는 여행은 여행자만의 여행스토리 있는 여행, 새로운 여행지에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우리만의 여행입니다. 이런 여행을 만들어가는게 저 헬보이짱이 해야 할 업무라고 생각하고 헬보이짱의 마지막 포 부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 스님의 말씀이 기억이 납니다. "너의 말이, 너의 생각이, 너의 행동이, 바로 현실이 된다는 것을 잊지말거라." 저는 헬보이짱투어의 대표가 아닌 여행자에게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줄 수 있는 '유튜버 헬보이짱'으로 살아가는 게 태국에서의 제 인생의 전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과거는 돌아보지 않겠습니다. 현재와 미래만 생각하고 앞만보고 달려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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