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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산골 소년, 고유의 전통문화 맥을 이어가는 '소리꾼 최인주'
정경호 기자 | 승인 2019.01.04 11:48
서울특별시 중요무형문화재 제41호 송서(誦書)율창(律唱) 이수자 (사진=최인주)

[뉴스인] 정경호 기자  = 소리가 좋아서 시작한 길, 다니던 직장이 경영 악화로 문을 닫자 최인주씨는 모델과 연기 활동을 하면서 더 많은 시간을 소리에 바쳤다. TV CF를 찍기도 하고 작은 역이지만 드라마에도 출연했다.

점점 소리 무대에 오르는 일도 많아지고 직접 무대 연출을 하면서 이제는 국악인의 역할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진주 산골 소년은 고깔모에 소고를 치며 자랐다. 구슬픈 상엿소리를 따라 산길을 헤메기도 했다. 도시에서 교사 생활을 하는 부모와 떨어져 조부모님과 함께 달골마을에서 살던 유년기, 삶의 기쁨과 슬픔을 풀어내던 소리가 어린 마음에도 좋았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방학이면 외갓댁으로 달려갔다. 외조부(故 이전덕 / 경상남도 진주시 "남사당패 상쇠" )가 진주 남사당패 상쇠였다. 꽹과리 다루는 솜씨가 좋았던 외조부는 민요 부르는 소리도 구성졌다.

"자연스럽게 민요를 접했어요. 소풍을 가면 매화타령, 새타령을 불러서 애늙은이라고 놀림도 받았죠. 장날에는 혼자 창극단 구경을 갔어요. 심청전이나, 춘향전 같은 것을 했는데, 눈물 훌쩍이면서 끝까지 보다가 밤늦게 혼자 산을 몇 개나 넘어서 귀가하고는 했습니다. 그때 심금을 울렸던 악기 소리가 청년이 되어서야 아쟁인 것을 알았어요."

그 시절 마음을 쥐어짜는 아쟁에 매료되어 지금도 즐겨 듣는다는 소리꾼 최인주씨. 우리의 소리 속에 성장하면서 일찌감치 귀명창이 된 그는 지금 송서(誦書)율창(律唱) 이수자이자 경기민요 전수자로 국악인의 길을 걷고 있다.

송서율창은 민요나 판소리, 시조창보다도 아는 사람이 적다.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겪으며 거의 사라질 뻔했다. 송서율창은 글 읽는 소리다. 산문으로 된 글을 낭송조로 부르는 것을 송서, 5언이나 7언으로 된 한문시를 낭송조로 부르는 것을 율창이라 하는데, 우리 전통 성악의 한 부문이다.

조선시대 과거장에는 배강이라고, 책을 등지고 앉아 문장을 줄줄 외는 과목이 있었다. 조선의 선비들은 사서오경 등 그 많은 책과 또 그 많은 시조 가사를 어떻게 외웠을까? 문장과 시에 가락을 넣어 불렀다. 노래로 만들어 부르면 쉽게 외워지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송서와 율창은 여기에서 나왔다. 요즘 말로 글 읽는 선비들의 고품격 문화가 바로 송서율창이다. 서울을 중심으로 불리던 송서율창은 현재 서울특별시무형문화제 제41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러한 600년 선비의 문화는 송서의 정통계보인 이문원-묵계월 선생의 대를 이어 경기민요 명창으로 잘 알려진 유창 명창으로 이어졌다. 최인주씨는 유창 예능보유자로부터 직접 송서율창과 경기민요를 사사받고있다.

송서 율창과 바른 인성을 가쳐 주신 현재의 스승 유창 명창 선생 (KBS 국악한마당 출연)

최인주씨가 소리 공부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것은 1994년 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에 편입, 동아리인 설화민요연구회에 가입하면서부터다. 이후 이서정 선생(故 김소희 명창의 제자), 조상현 선생(한국판소리보존연구회 이사장), 고주랑 명창(故 묵계월 명창의 제1호 이수자) 등 소리 스승을 찾아 판소리와 남도 민요, 경기민요를 익혔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소리 공부를 했습니다. 온몸으로 질러대며 해야 하는 소리 공부는 자신과 처절히 싸워가는 과정입니다. 많은 가사를 외워야만 하는데 정말 자신이 소리가 좋아서 하지 않으면 중도 포기하기 쉬워요. 저에게는 직장생활 외에 소리 공부가 전부였어요”

"어느 날 유창 명창이 송서율창을 하시는 모습을 방송을 통해서 보게 됐어요. 유창 명창은 평소에도 존경하던 분이었습니다. 그 분이 갓 쓰고 도포에 쾌자를 입고, 조선시대 선비를 보는 듯 했어요. 고전을 읽고 한시를 읊는 소리인 송서율창에 아닌 말로 홀딱 반해버렸습니다,"

이때부터 송서율창의 매력에 빠져서 소리를 배우고 알리는 데 쏟았다.

송서율창만이 아니다. 경기민요의 소리 또한 깊어졌다. 판소리고법 보유자 일통(一通)김청만 예능 보유자를 찾아 장단 공부도하고 다인전통국악예술단 단장 겸 민요교실 강사로 활동 중이기도 하다. 6살 어린 소년이 보고 들었던 소리는 환갑을 바라보는 지금도 여전히 꿈이다. 생활 주변 곳곳에 있었던 우리의 소리가 다시 우리 생활 속으로 들어오기를 바란다.

"이제야 조금 소리 맛을 느낍니다. 소리는 타고난 끼와 청이 따라야 한다지만 저는 온몸으로 소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리에 대한 꿈도 많았어요. 나이가 드니까 알겠습니다. 그것도 욕심이죠. 최고 명창 스승들 밑에서 배우고 익힌 소리들을 바르게, 배운 대로. 아는 만큼 전하는 것이 제 일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진정한 소리꾼 최인주씨의 소리에는 평생을 좋아하는 국악과 함께 살고 싶은, 또 그렇게 살고 있는 바람과 즐거움이 녹아있다,

유창하게, 격조있게 또는 신명나게, 그렇게 우리의 소리가 그의 목을 타고 이어진다.

 

국악인 최인주

국악인 최인주(1961)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41호 송서(誦書) 율창(律唱) 이수자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전수자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7호 장안편사놀이보존회 창악총연출·예술단장 △다인전통국악연구소 민요강사 △구리 전국경서도민요경창대회 대상(2012) △글 읽는 나라 문화제전 명창부 차하(2018) △경기12잡가 전국국악경연대회 종합대상(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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