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愛)쓰셨어요. 당신 덕에 여적지 우리 가족이 살았어요. 고맙습니다.”
극중 아내 역의 정이분(김계선 출연)이 끝내 임종을 눈앞에 두고도 남편 김만복(김진태/이기석 출연)에게 전하는 마지막 눈물의 고백이다.

#“먼저 가 있어! 곧 따라 갈게.” 
이는, 극중 내내 무뚝뚝하고 투박하기 그지없었던 남편 김만복이 병상의 고통에서 신음하던 아내의 짐을 덜어주고자 애끊는 결단을 토해내며 마지막으로 내뱉는 작별의 말이다.
“애(愛)썼어, 잘 가!”

이로써 젊은 시절 어느 날 운명적으로 만나 백년해로를 약속했던 50년 노부부의 연(緣)은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자식들의 오열 속에서, 저 먼 하늘나라에서의 또 다른 만남과 사랑을 기약하며….

이즈음, 무대와 객석은 이미 후끈 달아올라 눈물바다가 되고 만다. 더러는 체면불구 목 놓아 우는 사내도 있다.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 중 그 누군가가 연극 한 편을 보며 이토록 서럽게 통한의 눈물을 흘려본 적이 있었겠는가.

남녀노소 누구랄 것도 없다. 산전수전 다 겪어내신 할아버지 할머니도, 점잖게 차려입은 중년부부의 눈가에도, 그들의 아들딸이자 손주인 듯 보이는 청년들의 입가에도 깊은 탄식과 함께 어느새 뜨거운 눈물이 줄기 되어 볼을 타고 흐를 뿐이다.

연극 <동치미>. 따듯하고 훈훈한 우리네 아버지, 어머니의 자식사랑, 부부사랑 이야기로 이미 연극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소문이 자자하다. 더욱이 올해로 10년째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니 그 작품성은 굳이 의심치 않아도 될 듯.

곰삭은 부정(父情_아버지의 정)과 꾹꾹 눌러 담은 부정(夫情_지아비의 정). 그리고 그 옆에서 동행하며 묵묵히 여필종부(女必從夫)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 어느 한 여인의 기구한 일생. 참으로 진솔하고도 리얼하게 담아냄으로써 웰-메이드 명품연극으로서 손색이 없는 <동치미>의 생명력을 확인하게 된다. 

5월 가정의 달을 지나 6월 30일까지 서대문 <문화일보홀>에서 공연되는 <동치미>. 그 <동치미>의 속살을 들여다보고 10년의 여정을 돌아보자면 아래와 같다.

“내 가난해 혼수도 제대로 장만하지 못했구나. 시부모 잘 섬기고 아내의 도리 지켜 언행 조심하고 예의를 갖추어라. 오늘 아침 너와 이별하고 나면 언제 다시 볼 수야 있을까마는, 평소에는 혼자서 삭여왔다만, 오늘밤은 격한 마음 누르기가 어렵구나. 딸아, 잘 가거라. 못난 애비가.” 

큰딸의 시집살이를 걱정하며 안쓰러운 심사를 털어 놓았던 당나라 시인 위응물(韋應物)의 시(詩)-“송양씨녀(送楊氏女)”의 원문 읽기를 시작으로 공연되는 이번 연극은 ‘겉으로는 투박하고 무뚝뚝해 보여도 안으로는 곰삭은 우리네 아버지의 부정(父情)’을 절절히 담아낸 정통연극이다. 

<2013-2014 대한민국창조문화예술대상> 연극부문 대상 및 작품상 등 전(全) 부문의 수상 이력과 <2015 국회대상 ‘올해의 연극상’> 등을 수상한 경력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연극 <동치미>는 공연 내내 무대와 객석을 시종일관 웃음과 감동으로 가득 채운다. 이전의 9년여 동안 이미 전국의 60여개 도시를 순회하며 100만 관객의 심금을 울리고 말았다니, 말 그대로 스테디셀러 명품연극으로서 탄탄한 풍모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제작진은 귀띔을 한다. 관극 전에 반드시 손수건을 준비하라고. 

“공연이 끝나고 시계를 보니까 두어 시간이 훌쩍 지났더라고요. 공연 보는 내내 얼마나 웃고 울며 재미있게 봤는지. 우리 내외의 지금이나 우리네 부모님의 지난 삶들이 어찌도 이렇게 매 한가지 같은 것인지, 보는 내내 가슴이 먹먹해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난 시즌, 두 손을 꼭 잡고 극장 문을 나서던 어느 중년부부의 관극소감이다. 

“정말 너무 많은 걸 깨닫게 된 연극이었습니다. 엄마랑 단둘이서 연극을 보러 갔는데요, 연극을 보면서 이렇게 펑펑 운적은 처음이에요. 부모님들의 그 마음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싶었어요. 정말 자식들은 꼭 봐야 할 연극인 것 같아요. 보면서 부모님께 잘 해야겠다, 후회하지 않도록 잘 해야겠다, 계속 이 생각만 한 것 같아요.” 이번 시즌, 모녀티켓으로 관람을 한 어느 평범한 딸의 소회이다.  

연극 <동치미>의 줄거리는 대강 이렇다. 

칠순이 갓 넘은 퇴직공무원 김만복은 그의 부인 정이분을 의지하며 10여 년째 병치레를 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김만복을 부축하며 병원으로 가던 정이분이 갑작스레 심장의 통증을 느껴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만다. 이후, 병원으로 옮겨진 정이분. 그곳에서 남편 김만복은 아내 정이분에 대한 예상치 못한 진단결과를 받게 된다. ‘환자는 이번에 넘어져서 다친 것이 아니라 이미 다른 곳의 뼈들이 여러 곳 부러져 있는 상태’라는 담당의사의 말을 전해 듣게 된 것이다. 남편 병수발에 자식들 뒷바라지로 온전히 뼈를 깎고 살을 태워 일생을 살아 낸 정이분. 한 사내의 아내이자 자식들의 어머니였던 그이는 채 손을 쓸 겨를도 없이 남편과 자식들의 간절한 기도를 뒤로하며 영영 돌아오지 못할 하늘나라로 가고 만다. 오호 통재라! (중략) 하지만 그렇게 끝나는가 싶었던 연극 <동치미>의 반전은 이후에도 숨조차 쉴 수 없을 정도로 계속 이어진다. 아내 정이분의 죽음을 지켜보았던 남편 김만복은 곡기(穀氣)마저 끊고 자책하며 아내가 이미 가버린 그 곳으로의 여행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이윽고 정이분의 삼우재가 있던 날. 김만복은 당신의 아내이자 1남 2녀의 어머니였던 정이분의 영정 앞으로 자식들을 불러 앉혀놓고 노래를 부르게 한다. 생전에 정이분이 애창하던 바로 그 노래 <기러기>이다. “울밑에 귀뚜라미 우는 달밤에 기럭기럭 기러기 날아갑니다. 가도 가도 끝없는 넓은 하늘을 엄마 엄마 부르며 날아갑니다. ….” 그리고는 자식들의 때늦은 회한과 후회의 노래 속에서 김만복은 서서히 눈을 감는다. 꼭 6일 만이다. 이승에서 단 한 시도 떨어져 본 적이 없었던 사랑하는 아내, 자식들의 어미 정이분. 그이가 떠난 지 꼭 6일 만에 남편이자 아버지였던 김만복은 굵은 주름 속에 소년의 미소를 담아내며 정이분의 곁을 향한다. 

“그 어느 때 보다도 경제적으로 어려워 모두가 힘든 시기입니다. 농익은 부부애(夫婦愛)와 한결같은 자식사랑, 그리고 부정(父情_아버지)과 부정(夫情_지아비), 부정(婦情_지어미)과 모정(母情_어머니) 등을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힘들고 고단한 현대인들에게 가족과 가족애, 효(孝)와 동기(同氣)간의 우애(友愛) 등으로 위안과 치유의 시간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연극 <동치미>를 쓰고 연출한 김용을 대표(극단 글로브극장)의 변(辯)이다.

무대 인생 47년의 탄탄한 연기파 배우 김진태(69)와 연극계에서 소문난 중견배우 이기석(57)이 아버지 김만복 역으로 교체 출연하며 각기 다른 질감의 아버지를 그려낸다.

그리고 2009년 초연부터 어머니 정이분 역을 맡아 호연을 펼쳐내고 있는 김계선(53)이 우리네 보편적 어머니의 모습을 리얼하고도 가감 없이 담아내며 객석을 눈물바다로 만든다.

그 밖에도 중견배우 지미리(53) 권영민(50)과 탄탄한 연기력의 은윤지 안수현 안재완 이효윤 등이 아들 딸 등 자식으로 교체출연하며 최고이자 최상의 앙상블을 빚어낸다. 

2018년 5월 가정의 달. 속이 뻥 뚫리는 곰삭은 맛, 시원 ‧ 상큼한 <동치미>의 감칠맛으로 가정의 사랑과 화목을 더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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