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의 연극 <공포>

[뉴스인] 김영일 기자 = 연극 공포'는 러시아의 작가 안톤 체홉이 사할린 섬을 여행하고 돌아와 발표한 동명의 단편소설과 체홉의 사할린 경험을 합쳐 새롭게 창작한 “한국산 체홉극”이다.

체홉은 작품을 통해 늘 ‘인간의 삶과 행동의 문제’를 지적해왔다. 체홉의 발자취를 살펴보는 게 이 시대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이유는, 그의 작품에서 드러난 ‘인간의 삶’의 문제들이 여전히 우리에게 새로운 시험의 순간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드러내는 시험 앞에서 얼마나 무력해지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인간이고 싶어하는지.. '공포'는 이를 차분하게 그려낸다.

시험의 연극 <공포>

19세기말 20세기 초 러시아의 지식인이 보여주는 솔직한 인간성은 삭막하게 개체화된 21세기 대한민국의 우리에게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하나의 지향점을 보여준다.

가난하고 낮은 자들에게 보여주는 깊은 동정과, 욕망을 바라보는 차디찬 이성, 그 욕망을 어찌하지 못하고 고통 받는 연약함... 이들이야말로 진실치 못한 인간은 가질 수 없는 근대적 인간의 모습이며, 19세기말 러시아와 21세기 초 우리 사이의 간극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가져야 할 인간성에 대한 진솔한 물음과 대답이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누구나 일상에서 만나는 불안과 공포를 그린 작품! '공포'에는 삶의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검고 깊은 구멍이 보인다. 매일의 일상에서 문득 문득 존재를 드러내는 심연, 침묵, 그리고 공포... 세상은 빠르게 바뀌고, 다가올 세상은 어떤 모습일지 알 수가 없다.

시험의 연극 <공포>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이 극에서 실린이 느끼는, 아니 사실은 체홉이 느꼈을 공포는 19세기 말 근대라는 문명의 전환기가 깨어 나오는 고통일 것이다. 그 알을 깨는 아픔과 고통은 21세기초, 지금 우리에게도 계속되고 있다.

삶의 불가해함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산다는 것 자체에 공포를 느끼는 농장주 실린과 거친 삶이지만 사는 거 자체가 “인간의 의지”임을 알고 있는 하인 가브릴라. 신의 작은 말씀에도 귀 기울이는 조시마 신부와 “신은 자신을 만끽하고 있을 뿐”이라는 요제프 신부. 이들의 대비와 각각의 캐릭터들이 삶을 대하는 방식을 지켜보며 관객은 자기 삶을 반추하게 된다.

체홉이 등장하는 체홉극! 1890년 4월, 자신의 문학적 이름이 막 세상에 알려지기 시점에 안톤 체홉은 모든 문학 활동을 접어둔 채 유형지인 사할린 섬으로 여행을 떠난다.

3개월에 걸친 여행 끝에 사할린 섬에 도착한 체홉은 유형지의 실태를 상세하게 시찰한 후 8개월 뒤 모스크바로 돌아온다. 그리고 다음 해 사할린에서의 조사 활동에 대한 보고서인 '사할린 섬'을 집필한다.

이 여행 이후 체홉의 작품들은 이전과 다른 양상을 보이기 시작한다. 인간적인 연민과 우수를 놓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초기작들과 다르지 않으나, 희극적인 요소들은 점점 줄어들고, 주인공들의 대화 속에서 사회적인 문제나 실존적인 문제들에 대한 진지한 모습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극은 안톤 체홉이 사할린 섬을 여행하고 돌아온 이후 발표한 단편소설 '공포'를 바탕으로 소설 속 화자인 ‘나’를 ‘안톤 체홉’이라 설정하여 새롭게 구성한 작품이다. '공포'의 등장인물 모두는 삶이란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두렵고 진부하다고 말한다.

태어나는 게 죄라면, 과연 인간은 어디서 구원을 받아야 하고 그 죄로부터 어떻게 도망쳐야 할까? 체홉이 고민했던 삶의 문제를 체홉 희곡에 버금가는 긴밀한 구성과 대사로 풀어낸 고재귀 작가의 탁월한 극작술. 이것이 진정한 체홉극이다.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속성과 삶의 본질에 대한 연극적 탐구가 다양한 인간군상의 모습으로 무대 위에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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