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일본 오사카의 한 쇼핑센터에 있는 가부키 공연장에서 관객들이 막이 오르길 기다리고 있다. (사진=허영훈 기자)

[뉴스인] 허영훈 기자 = 일본 오사카에 가면 전용극장을 포함하는 ‘가부키’ 극장들을 시내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가부키는 음악과 무용, 기예가 어우러져 시대를 풍미한 일본의 전통연극으로 그 기원은 16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쪽으로 기운다는 의미의 ‘가부쿠’에서 유래된 가부키는 ‘관습에 얽매이지 않은 별난 모습’을 뜻한다. 젊은 남자배우들이 여장을 하고 무대에 오르는 ‘와카슈 가부키’가 단연 인기다. 분장의 힘이지만 여자보다 더 예쁜 남자배우들이 많은 팬들을 거느리게 된다.

특정일에는 마지막 공연이 끝나면 배우들이 팬서비스 차원에서 한 명씩 무대로 나와 관객들과 소통하는 커튼콜 시간이 무려 1시간 넘게 이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 때 아주 특이한 장면을 목격할 수 있다. 배우들이 무대에 등장할 때마다 팬들은 객석에서 일어나 자기가 좋아하는 배우를 향해 하나둘 무대 앞으로 모여들고 배우는 무대 앞쪽에서 이들을 맞이하기 위해 몸을 낮춘다.

팬들은 미리 준비한 부채모양으로 넓게 펼친 지폐다발을 배우의 가슴부분에 직접 클립으로 끼운다. 팬이 많은 주연급은 가슴뿐 아니라 상의 곳곳이 빈틈없이 지폐로 둘러싸인다. 로비에서 꽃다발이나 케이크 등 선물을 전하는 우리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관객 중에는 이렇게 커튼콜과 함께 장장 4시간이 넘는 가부키 공연을 감상하기 위해 매주 한 번씩 공연장을 찾는 이들도 있다. 만석을 이루는 관객의 대부분은 50~60대 이상의 지역주민이다. 전용공연장이 아닌 일반 공연장의 입장료는 우리와 비슷한 한화로 2만원에서 4만원 수준이다.

공연 직전까지 객석에서는 집에서 가져온 음식과 음료수를 먹는 모습, 큰 소리로 배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자유롭게 공연장 안팎을 제재 없이 들락날락하는 모습 등 다소 혼란스럽고 소란한 모습을 볼 수 있지만 객석이 암전되면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순식간에 조용하고 정돈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서울 서초동에는 우리나라 국악공연의 1번지라 부를 수 있는 국립국악원이 있다. 국악원에는 정악단, 민속악단, 창작악단이 상주하고 있고 일반인들은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실내외 공연장에서 1년 내내 국악과 무용 등 다양한 전통공연을 만날 수 있다. 상설공연과 할인공연 및 무료공연도 자주 열린다.

하지만 할인이나 초대와 상관없이 자기 주머니에서 2만~4만원을 흔쾌히 꺼내 국악원에서 국악공연을 보려는 사람들은 매년 몇 명이나 될까? 약 70분 동안 쉬지 않고 연주하는 가야금 산조 한바탕을 즐겨 관람하는 사람들은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공연장의 관객 수와 매출이 제대로 집계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은 이미 2014년에 심각하게 다뤄진 바 있지만, 국악공연장들은 여전히 관객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긍정적 자료만 내놓고 있다. 돈은 벌지 못하면서도 공연은 계속 무대에 올려야 하는 사정은 서울의 경우 국립국악원 외에도 서울남산국악당이나 작년 9월 문을 연 서울돈화문국악당도 마찬가지다.

왜 사람들은 전통공연장을 찾지 않는 것일까? 왜 공연장은 무료관람으로만 관객들을 유혹하려는 것일까? 국악공연은 여전히 지루하고 재미없어서? 일본의 가부키 공연보다 예술성이 부족해서? 예술감독이나 제작진의 수준이 떨어져서? 연주자들의 실력이 부족해서? 뮤지컬이나 클래식이 국악공연보다 훨씬 더 볼만해서?  

아니다. 우리나라 국악교육과 국악인들의 예술수준은 그 어떤 나라의 예술장르와 비교해도 절대 뒤지지 않는다. 문제는 겉으로는 반만년의 빛나는 역사만 자랑하고 안으로는 땀 없이 안주하려는 기득권자들이 제대로 된 위기의식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다’는 핑계는 그만 접어야 한다. 표를 팔 자신이 없으면 국악인이 아닌 경영인에게 운영을 맡겨야 하며, 상주단원들에게 주는 월급보다 그 단체가 만들어내는 매출이 적다면 단체를 없앨 각오를 해야 한다. 언제까지 정부지원금에 의지하고 대관료에 목을 맬 것인가?

공연장 시설을 보수하고 더 좋은 인프라 구축과 관객들의 안전을 위해 한 달 이상 공연장 문을 닫는 경우가 있다.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매년 부르짖어도 제자리인 ‘국악의 대중화’는 위기를 제대로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문을 닫아서라도 각계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솔직한 진단과 실현가능한 대책을 세워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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