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인

UPDATED 2017.2.24 금 14:25
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칼럼] 인종주의가 헌법에 명시된 나라가 있다?아프리카 라이베리아, 흑인만 국적 취득할 수 있어
이휘성 객원기자 | 승인 2017.01.09 15:57

[뉴스인] 이휘성 객원기자 = 아프리카에는 라이베리아(Liberia)라는 나라가 있다. 국명을 직영하면 ‘자유국’이다. 해방된 미국 노예들이 건국한 나라로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식민지 경험이 없다. 대한민국과는 상호 무비자 협정을 맺은 나라이기도 하다.

이러한 소개를 들으면 라이베리아가 참으로 문명화된 나라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라이베리아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공식적으로 인종주의를 내세우고 있는 나라다.

라이베리아의 헌법(제27조 b항)을 보면, 이 나라 국적은 흑인만이 가질 수 있다. 라이베리아의 긍정적인 문화, 가치와 본질을 보호하고 발전시키고 이어가도록 니그로(Negro, 흑인) 혹은 니그로 출신만이 출생이나 귀화에 따라 라이베리아 국민이 될 수 있다.

즉 만일 당신이 흑인이 아닌데 라이베리아 소수민족 가정에서 태어났다면 라이베리아 국적으로 출생신고를 할 수도 없고 이후에도 자신의 나라 국민이 될 수 없다. 이러한 제도의 기원을 이해하려면 라이베리아의 건국사를 살펴봐야 한다.

1840년 라이베리아 건국 당시 미국 국기(왼쪽)과 라이베리아 국기(오른쪽). 국기 구성이 상당히 닮아 있다.

◇ 라이베리아 역사…"흑인들이 자유로운 나라"

라이베리아를 건국한 사람들은 19세기 초 미국에서 이민해 온 자유로운 흑인이었다. 당시 미합중국 남반부에는 노예 제도가 존재했고, 인종주의는 일반적이었다. 라이베리아의 건국 아버지들은 흑인이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라이베리아가 그런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으로 희망했다. 라이베리아의 국기를 보면 ‘아프리카의 미합중국’을 만들려고 했던 의지를 느낄 수 있다.

건국 때 채택된 라이베리아 헌법에는 국적을 인종에 따라 정의하는 조건이 있다. 라이베리아 건국 아버지들은 이런 조건이 없다면 백인 이민자들이 권력을 잡고 흑인들을 또 다시 탄압할 지 모른다고 두려워했다. 당시 미국에서는 절반에 이르는 주에서 흑인 대부분이 노예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들의 두려움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미국은 달라졌지만 라이베리아는 그렇지 않았다. 미국은 1865년 노예 제도를 폐지했고 1868년 노예 출신 흑인들이 국적을 취득했으며, 1960년대 중반 인종에 따른 법률 차별은 완전히 폐지됐다. 그런데 라이베리아는 2017년 현재 흑인이 아닌 자에게는 국적 취득을 아예 허용하지 않는다.

◇ 피해자의 목소리

그렇다면 라이베리아 국적이 필요한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라이베리아의 1인당 GDP(PPP 구매력평가 기준)는 881달러에 불과하다. 북한보다도 2배 정도 낮다. 교육, 의료시설, 복지 수준도 낮다. 대한민국에서 무비자로 입국할 권리 이외에 라이베리아 국적을 보유할 장점을 찾기는 어렵다.

하지만 라이베리아에는 흑인이 아닌 사람들도 있다. 가장 많은 소수민족은 레바논 출신 아랍족이다. 1960년대 레바논에서 라이베리아로 온 사람들과 그 아이들은 라이베리아 국적을 아예 받을 수가 없다. 이 사람들에게 라이베리아는 조국이다. 그 조국이 "당신은 외국인이었고, 외국인이며, 외국인으로 죽을 것이다"라고 한다면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난 2012년 이 라이베리아 비(非)시민 중 한 명인 리마 멜희(Rima Merhi)는 허핑턴포스트를 통해 라이베이라의 국가 인종주의를 전 세계에 알린 바 있다.

"저는 라이베리아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아프리카가 아닌 지역에서 온 부모에서 태어난 백인 아이로서 제 피부 색깔과 출신 때문에 국적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리마 멜희는 하버드대학교를 졸업한 라이베리아 대통령 엘렌 존슨 설리프(Ellen Johnson Sirleaf)에게 인종주의 폐지를 포함한 내용의 개헌을 요청했다. 이 기사는 라이베리아 사회에서 국적법 문제에 관한 토론을 일으켰다. 개헌하자는 라이베리아 흑인 사업가 해리 그립스(Harry Greaves)는 이렇게 주장했다.

"몽골에서 태어나 성장한 한족 청년은 영어 한 마디 못하고 지도에서 라이베리아가 어딘지도 못 찾지만, 할머니가 콩고민주공화국 출신이라면 비행기를 타고 라이베리아에 와서 '흑인 조건'에 합격해 나중에 라이베리아에 귀화할 수 있죠. 반대로 레바논 출신자 가족으로 라이베리아의 볼라훈(Bolahun)과 같은 소도시에 태어나 성장한 소년은 영어보다 그반디어(Gbandi, 라이베리아 민족어 중 하나)를 잘하고, 레바논의 베이루트에 가본 적이 없어도 오직 인종 때문에 라이베리아의 국적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도덕적으로도 잘못됐죠. 이런 규칙은 문명국의 헌법에 있을 수 없습니다. 이런 병폐를 없애는 개헌이 바로 지금 필요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라이베리아 국민들은 이런 주장을 지지하지 않았다. 런던의 아시아아프리카연구소 연구원인 로브텔 페일리(Robtel Pailey) 역시 '흑인 조건'을 지지한다는 내용의 칼럼을 쓴 바 있다.

"레바논 출신자들은 라이베리아 국민이 될 자격이 없다. 그것이 올바르다. 라이베리아의 '흑인 조건'은 인종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보호조치다. 현재 헌법의 '흑인 조건'은 라이베리아인의 대다수를 망각에서 보호하는 유일한 조건이다. 특히 내전이 종결되면서 국적 조건 외에는 아무 것도 갖고 있지 않은 이러한 시대에 말이다."

인종주의자들은 인종주의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페일리의 주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법률로 인종주의를 규정하고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라이베이라만 남았다. 유대인을 국적에서 박탈했던 나치 독일의 뉘른베르크 법, 본토 출신이 아닌 사람을 국민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식민지 제국들의 국적법처럼 '흑인 조건'을 달고 있는 라이베리아의 악법은 이제 무효화돼야 한다.

▶기사제보 newsin@newsin.co.kr

<저작권자 © 뉴스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휘성 객원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