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명백설', 누가 어떻게 판단하나

김관영 의원

[뉴스인] 이대원 객원기자 = "이 탄핵소추로써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이 이 나라의 주인이며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국민의 의사와 신임을 배반하는 권한행사는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는 준엄한 헌법원칙을 재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지난 12월 8일, 국민의당 김관영 의원은 직무정지된 행정수반 박근혜(65)에 대한 탄핵소추안 제안설명을 이렇게 했다.

앞서 지난해 7월 말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선 EXO, 그리고 인접한 잠실 실내체육관에서는 세븐틴의 콘서트가 나란히 열렸다.

공연장을 찾은 팬들이 줄 지어 앉아 있다. (사진=이대원)

공연 며칠 전부터 노숙을 불사하며 각국에서 모인 팬들은 질서정연한 모습으로 콘서트를 관람하고, 기획사가 특별 제작해 판매한 물품, 일명 '굿즈'를 수십만원어치씩 사 든 후, 뒷정리까지 말끔하게 끝내고 '오빠들 욕 먹이지 않는 팬심'을 자신의 SNS 계정에 자랑스럽게 인증했다.

이렇게 인접한 공연장에서 두 아이돌이 맞붙는 경우, 환경미화원들이 굳이 필요하지 않다. 자발적 경쟁심에 의해 뒷정리가 더욱 깔끔하게 끝나곤 한다.

요즘 아이돌 공연장은 대개 지하철역 1~2개 정도 길이에 해당하는 줄만큼 인파가 몰리지만 예전처럼 오물이 넘쳐나거나 몸싸움이 벌어지는 일은 극히 드물다. 촛불집회나 월드컵 응원 때의 질서의식 연장선에서 ‘잘 배운 어린세대’의 공로가 크다.

이런 젊은세대의 문화를 그대로 본뜬 움직임이 기성세대에게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물론 ‘시민의식의 성장’보단 오빠들 욕먹는 게 싫은 ‘팬심’에 가까운 행태다.

‘수구꼴통’이라는 오명을 감내하며 그들 방식의 ‘애국애족’을 고수하던 대한민국 박사모도 어느덧 시대에 발맞춰 이런 ‘팬심’을 발현하기 시작했다. 

‘친박연대’라는 세계 정당사에 전무후무한 ‘팬심정당’을 만들어낸 입지전적인 인물이 박근혜대통령이었다. 그 신앙적 지지의 근원이 되는 ‘대한민국 박사모’는 여전히 탄핵반대집회를 주도하고 있다.

탄핵반대집회에 나온 박사모 회원들은 ‘크리스천의 입장’을 강변했다. ‘나라가 세운 정부에 순종하라’는 하나님 말씀을 어겼다는 논리다.

분명 로마서 13장 1절에는 ‘권세에 복종하라’는 문구가 있다. 그러나 이 구절은 독일 교회가 나치에 부역한 계기가 됐고, 전후 성찰하며 참회해야 했던 역사적 아픔을 겪은 문장이다. 그리고 “세상의 권세로 하나님의 권세를 참칭해선 안되는 것”이 현재 정설이다.

기독교인이라 반대해야 한다는 논리는 더욱 어불성설이다. 한국 개신교가 큰목사로 추앙하는 최태민은 원자경이라는 무명을 쓰던 무당이었고, 이후 퇴운이란 법명을 쓰던 승려였다.

또한 박정희 전 대통령부터 이어온 군사정권은 이사야 11장과 35장을 기반으로 만든 어린이찬송 '사막에 샘이 넘쳐 흐르리라'를 금지시켰는데, 그 이유는 ‘공산주의 찬양’이었다. 성경에 묘사되는 ‘사자와 어린양이 함께 뛰노는 이상향’을 군사정권은 ‘공산주의 찬양’으로 해석한 것이기에 기독교와 군사정권은 ‘함께해선 안되는’ 근본적인 철학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다.

박사모의 “하야가 타당하다면 법에 근거해 처벌하면 될 일인데, jtbc의 의혹 보도에 여론이 쏠려간 측면이 있다”는 비약에도 문제가 있다. 이미 박근혜 대통령은 형사피의자의 신분이다. 단 대통령이라 그 혐의를 입증하는데 조심스럽고, 소추되지 않을 특권을 누렸을 뿐이다.

박사모측은 ‘팩트에 근거해 처벌’하라는데 그 팩트를 가리고 은폐하고 있는 것은 청와대로,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국정농단 청문회에 증인 출석은커녕, 증거물 제출조차 하지 않았다. 정당한 법집행을 방해한 것은 명백한 현행법 위반이고, 헌법 가치의 훼손이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로 박근혜 대통령은 그것만으로도 탄핵되어야 할 이유가 충분한 것이다.

헌법재판소

하지만 중요한 논점은 그 이후에 등장한다. ‘국민이 선출한 권력’ 대통령을 ‘국민이 선출한 권력’ 국회가 탄핵했다. 대륙법을 채택한 우리나라의 법통은 거의 대부분 독일식을 따른다. 탄핵도 마찬가지, 독일의 '명백설'을 계승한다.

그런데 탄핵소추심판에 관한 한 대한민국에만 적용되는 매우 독특한 문구가 추가된다.

'중대명백설'

대통령은 국회 의결을 거친 경우라도 헌법재판소가 판단하기에 '중대'하고 '명백'한 탄핵 사유가 없다면, 탄핵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선출된 권력의 탄핵'을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가치판단'에 전권 위임한 꼴이다. 이들은 선출되지 않았으므로 '비선'이고, 실질적 권한을 가졌으므로 '실세'가 아닌가.

헌법재판관의 구성은 15년 이상 경력을 가진 법조인 9명이다. 그 중 3명은 대통령이, 3명은 대법원장이, 나머지 3명은 국회가 추천해 임명한다.

대법원장도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과반을 지배했던 새누리당 정권하에 구성된 헌법재판소는 여당 대 야당의 비율이 8 : 1이다.

물론 증거를 통해 법리적인 판단만을 하는 것이 헌재에 주어진 권한이지만, 그 권한의 근원은 우리 역사의 '음서', 영국이나 미국식으로 따지면 '상원', 고대 로마의 '원로원' 같은 개념으로 규정해 볼 수 있다.

중대하고 명백한 가치판단은 이제 국민이 할 때도 되지 않았을까. '전 국민에 의해 선출된 권력'을 탄핵하는 국가 중대사를 헌법재판관들에게 일임하는 것은 과연 온당한 것인가 생각해보게 된다.

*본 칼럼은 뉴스인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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