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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이야기] 부르키나파소…민주화와 빈곤퇴치
고선윤 논설위원 | 승인 2017.01.06 10:55
부르키나파소 풍경 (사진=고선윤)

[뉴스인] 고선윤 논설위원 = 아프리카 서부내륙에 위치한 부르키나파소는 아프리카에서도 생활수준이 가장 낮은 나라다. 크기는 한반도보다 조금 더 크고, 인구 약 2000만 명의 결코 작은 나라가 아니지만 우리에게는 그 이름조차 생소한 나라다.

GDP(국내총생산)가 120억 달러로 세계 123위(2016년 IMF 기준)라는 숫자가 그들을 이해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여하튼 엄청난 수의 국민이 이웃나라 코트디부아르와 가나로 품을 팔러 나가고 있으며 절대빈곤층의 비율이 50%를 밑도는 나라다.

내륙국이라서 대외교역이 어려우며, 사막성 기후, 수자원 부족, 부존자원의 빈곤 등으로 경제개발이 상당히 어려운 실정이다. 우리나라 공관이 없어서 주 코트디부아르 대사가 업무를 겸임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도 부르키나파소의 상주공관이 없어서 주 일본 부르키나파소 대사가 겸무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공적원조를 집중하는 중점협력대상국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은 약소국이니, 우리는 검은 대륙 커다란 눈방울의 이국적 모습만 떠올릴 뿐 특별히 아는 바가 없다.

◇ 부르키나파소 정치민주화

그런데 최근 이 나라에서는 ‘민주화’, ‘시민봉기’, ‘쿠데타’ 등의 단어로 장식되는 정치적 큰 변화가 있었다. 2014년 봄의 일이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블레즈 콩파오레가 헌법에서 임기제한 조항을 삭제하고 정권연장을 꾀하자 시민들이 반기를 들었다. 이른바 민중봉기다.

27년간 장기 집권한 콩파오레는 하야 후 옆 나라로 숨어들었다. 이후 과도정부가 들어서서 대선과 총선을 준비했는데, 선거를 얼마 남기지 않은 2015년 9월 콩파오레 전 대통령의 최측근 지지 세력에 의한 쿠데타가 일어났다.

과도정부를 해산시키고 과도정부의 대통령과 총리를 억류했으며 이에 저항하는 시민을 향해서  총격을 가했다. 그러자 무기와 군기가 보잘것없는 이름뿐인 정부군이었지만 시골에 주둔하는 촌 부대까지 수도로 진격해 쿠데타 부대를 포위했다. 결국 서아프리카경제협력체(ECOWAS) 소속 정상들의 중재와 프랑스의 비판에 직면한 쿠데타 세력은 일주일 만에 투항했다.

그리고 11월 29일 역사상 가장 공개적인 선거로 평가받는 투표가 시작되었고, 로크 마크 크리스티앙 카보레가 54% 국민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과도정부는 양위를 훌륭하게 마친 셈이다.

19세기 이후 프랑스 식민지였던 부르키나파소는 1960년 독립하지만 경제적 낙후와 사회적 혼란으로 군부쿠데타가 속출했다. 민중봉기로 축출 당한 콩파오레 역시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정권이었다. 그러니 2014년 봄에 시작된 민중봉기에서 2015년 카보레 대통령 당선, 그리고 올해 취임까지의 과정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치민주화 성공’의 역사였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그리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니다. 군사독재정권에 분노한 시민들이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면서 거리로 나온 6월 항쟁이 1987년의 일이니, 불과 30년 전이다. 마침내 민주정의당 대표 노태우가 ‘개헌’을 약속하면서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는 요구를 헌법에 반영했다. 이후 지금의 박근혜 대통령까지 6명의 대통령을 우리는 우리 손으로 직접 뽑았다.

부르키나파소 풍경 (사진=고선윤)

◇ EWB의 기우

교육을 통한 빈곤퇴치를 외치는 ‘국경없는 교육가회(EWB, Educators Without Borders)’에서는 2007년부터 이 나라에 관심을 가지고 도움이 되고자 노력해왔다. EWB는 교육자들이 모여 개발도상국 교육발전을 위한 국제사회 노력에 적극 참여하기 위해 설립한 기관이다.

부르키나파소는 문맹률이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높은 나라다. 아프리카 현지 전문가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현지빈민들이 실제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가면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그들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단계별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 사업은 2014년 유네스코 문해상을 수상할 만큼 주목을 받았다.

몇 년 전 이 나라의 한 부족으로부터 200에이커 규모의 땅을 기증받았다. 이 땅에 부르키나파소 교육부와 협력해 ‘교원양성센터’ 건설을 준비하고 있다. 여기서 농업기술, 축산, 특용작물 관련 교육자들을 양성할 예정이다. 그런데 2014년의 민중봉기의 시작으로 이 사업은 더 이상 불가능한 일이 되는 것 같았다.

눈과 귀를 열고 이 나라가 하루빨리 안정되는 날을 기다린 EWB는 지난해 7월 정치민주화에 성공한 부르키나파소를 다시 찾았다. 많이 염려되었다. 말 그대로 세상이 바뀌었으니 관공서를 비롯한 그들의 시스템이 EWB가 오랫동안 준비한 건설 사업을 어디까지 이해하고 있을 것인가. 어디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이 가슴을 무겁게 했다.

빈곤퇴치사업은 외부로부터의 물자 투입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내부 시스템이 이것을 받쳐주어야 한다. 가난하다고 해도 그들의 시스템을 무시할 수는 없다. 아무리 좋은 뜻을 담아 물자를 퍼붓는다고 해도 자국의 동의와 지원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EWB 멤버들은 관공서가 즐비한 수도 와가두구의 중심가를 걸었다. 이전과 크게 달라진 건 없었지만, 현관의 깨진 유리창을 보니 지난 2년 동안 소용돌이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총알이 지나간 흔적도 보인다.

민선 대통령이 집권하고 반년이 더 지났건만 아직 유리창을 갈아 끼울 여력도 없는 것 같았다. 하기야 더운 나라라 유리창 한두 장 깨어졌다고 견디기 어려운 계절도 없으니 그것이 뭐 그리 중요한 일이겠는가.

우리는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이미 제시했던 서류들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챙기고 조심스럽게 관공서 문을 두드렸다. 그런데…. 그리고 호탕한 웃음으로 문을 닫고 나왔다. 문교부도 건설부도 외교부도 장관만 바뀌었지 차관 이하 누구 하나 바뀐 이가 없으니, 게다가 우리 사업 담당자 역시 그대로 그 자리에 있으니 우리의 건설 사업은 잠시 멈추었을 뿐 행정상 문제가 될 일은 없는 것으로 보였다. 반갑다면서 양쪽 볼에 얼굴을 대고 쪽쪽 소리를 내면서 뽀뽀를 하는 그들의 인사를 받으면서 우리의 생각이 기우였음을 확인했다.

부르키나파소 풍경 (사진=고선윤)

부르키나파소는 가난한 나라다. 붉은 땅에는 풀들도 잘 자라지 않는다. 건기에는 땅이 메말라 곡괭이조차 쓸 수 없으니 농사를 짓지 못한다. 삐쩍 마른 소 떼, 매일매일 몇 번이고 경험해야 하는 정전…. 그래도 오토바이를 타고 씩씩하게 시내를 누비는 사람들, 유난히 반짝이는 눈을 가지고 미래의 꿈을 말하는 아이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안정된 국가 행정 시스템은 값진 내일을 약속한다. 무능한 정치 지도자를 넘어서는 백성이 있는 나라 부르키나파소의 민주운동은 분명 교육발전과 경제성장으로 진보할 것이다.

마치 ‘민주화 역사 교과서’ 요약본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이제부터 그들의 손으로 그들의 대통령을 뽑고 30년 후, 부르키나파소의 모습이 궁금해지는 것은 2017년을 시작하는 이 시간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한 사람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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