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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아프리카의 정주영', 나는 청년사업가"[인터뷰] 부르키나파소 지브릴 카나조에 대표
고선윤 논설위원 | 승인 2017.01.02 14:58

*아프리카 서부내륙에 위치한 부르키나파소에서 뉴스인 고선윤 논술위원이 부르키나파소 카나조에(Kanazoe) 그룹의 지브릴 카나조에(Djibril Kanazoe) 대표를 만났다. 카나조에 그룹은 자동차, 건설, 운송, 부동산, 광산업 등을 다루는 부르키나파소 최대 규모 기업이다. 지브릴 대표는 오는 9일 한국을 방문해 기아자동차, 현대중공업 다비육종농장 등을 찾아간다.

1983년생인 지브릴 대표는 지난 2002년 우마루 카나조에(Oumarou Kanazoe) 엔터프라이즈 구매부 담당으로 시작해 2005년부터 우마루 카나조에 엔터프라이즈 사장(General Manager)을 역임했다. 2011년부터 지브릴 카나조에 대표를 맡고 있다. 2006년에는 부르키나파소 기사 작위(Chevalier de l’Ordre National Burkinabé)를 받았다. -편집자주

지난해 7월 부르키나파소의 아프리카모터스 게스트하우스 앞에서 지브릴 카나조에 회장(가운데), 고선윤 뉴스인 논설위원(왼쪽), 김기석 부르키나파소 명예영사 겸 국경없는교육가회 대표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인] 고선윤 논설위원 = 지브릴 카나조에(Djibril Kanazoe)는 ‘아프리카의 정주영’이라 불리는 우마루 카나조에의 22번째 아들이다. 현재 카나조에 그룹의 CEO로 활동하고 있다. 중학교를 졸업한 16살 때부터 아버지를 도와 사업 경영에 뛰어들었다. 지금은 아버지가 일군 기업체보다 더 큰 규모의 7개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대한민국 역사와 개발 경험에 큰 관심을 가지고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크다. 우리의 교육에 대한 의지, 성실함과 근면함을 높이 평가한다. 한국 기업과의 협력 기회를 꾸준히 살펴오다 1년여 전부터는 기아자동차의 부르키나파소 내 판권을 따내는 성과도 이루었다.

부르키나파소의 발전을 위해 온갖 힘을 기울인 아버지의 가르침과 영향을 받아, 대를 이어서 부르키나파소 발전을 위해 학교와 모스크 등을 짓고, 도로 건설 및 다양한 인프라 구축에 힘쓰고 있다.

부르키나파소에서 유일하게 활동하고 있는 한국의 교육비영리단체인 (사)국경없는 교육가회
(EWB, Educators Without Borders)와 지난 2014년부터 인연을 맺어왔으며, 이 단체에 자체적으로 3만 달러의 지원금을 후원하기도 했다. 수원국의 기업이 공여국의 민간 비영리단체에 후원을 하는 것은 대한민국 국제개발협력 역사상 찾아보기 힘든 사례로 꼽힌다.

부르키나파소 기아자동차 매장에 진열된 자동차 앞에서 지브릴 회장(왼쪽에서 두 번째)과 국경없는 교육가회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지브릴 대표는 오는 9일 한국을 방문해 여러 기업체들과 만날 예정이다. 한국 방문을 앞둔 지브릴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1월 9일 방한을 앞두고 지블리 카나조에 대표를 대한민국에 소개하고 싶다. 일본에 있는 오비다 대사(우리나라에는 부르키나파소의 상주공관이 없어서 주 일본 부르키나파소 대사가 겸무)께 한국의 기아자동차를 소개받고자 요청했고, 김기석 주한 부르키나파소 명예영사가 주선해 현재 아프리카 내 판매권을 갖고 있다. 일본에도 도요타, 닛산 등 많은 브랜드가 있는데 굳이 기아자동차에 관심을 가진 이유가 있다면. 

"카나조에 그룹의 아프리카모터스사는 2008년부터 포드사의 자동차를 팔기 시작했다. 이후 중국 브랜드 자동차도 팔았는데 품질에 문제가 있어서 판매를 중단했다. 기아자동차의 우수한 품질은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으며, 기아자동차사의 넘치는 에너지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한국 브랜드 자동차에 큰 매력을 가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사실 15년 전 부르키나파소에 기아자동차 판매권을 가진 사업자가 있었으나 성적이 좋지 않았고, 결국 중단했다. 나는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찾아갔다." 

부르키나파소 기아자동차 쇼룸 내부

-기아자동차와 일해 보니 어떤가.

"자동차 판매를 위해 여러 업체와 일을 했는데, 대개 오늘 주문하면 4개월 뒤에야 자동차 판매가 가능하다. 그러나 기아는 주문하고 한달 뒤 바로 판매가 가능하다. 사업가에게 시간은 돈이다. 자동차 사업을 시작한 지 10년이 됐다. 기아랑 일하기 시작한지는 이제 막 1년이 지났다. 1년 동안 진행상황을 보면,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빠르고 효율적으로 일을 하는지 알 수 있다."

부르키나파소의 기아자동차 매장 (사진=고선윤)

-한국에 유독 관심이 많은 이유가 있다면.

"한국의 현대사에 관심이 많다. 눈부신 경제성장은 아프리카 경제발전의 좋은 본보기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현지 한인교민에게 '부르키나파소의 정주영'이라는 말을 들었다. 정주영은 무에서 유를 만든 한국의 기업가이다.

"그것은 내가 아니라 아버지를 지칭하는 말인 것 같다."

-아버지에 대해서 이야기해줄 수 있나.

"아버지에 대해서는 할 말이 아주 많다. 일을 열심히 했으며, 성실하고 마음이 열려 있는 겸손한 사람이었다. 그는 작은 마을에서 직조 일을 시작했다. 직접 천을 짜서 매번 1000km나 떨어져있는 가나까지 걸어서 물건을 팔러갔다. 돌아오는 길에는 콜라 열매를 사와서 팔았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오토바이를 샀고, 또 그렇게 모은 돈으로 트럭을 사서 더 많은 물건을 유통했다. 상점을 열어서 운전수까지 고용했다.

당시 부르키나파소의 많은 사람들이 코트디부아르에 가서 품을 팔았는데 그 중개업도 했다. 이후 사업을 확장해서 빌딩을 짓고, 도로를 건설하는 등 건설업까지 하게 됐다. 실제로 부르키나파소 도로의 60%는 아버지가 만든 것이다. 아버지는 이렇게 번 돈으로 불쌍한 사람들을 많이 도우셨다. 기독교 신자들을 위해서는 교회를, 무슬림을 위해서는 모스크를 지었으며, 10억 리터에 달하는 저수지도 설치했다."

지브릴의 아버지가 건설하기 시작한 모스크. 현재 부르키나파소에서 가장 큰 모스크이며,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지브릴이 이어 받아 건설하고 있다.

-무슬림으로 알고 있는데, 교회도 짓고 모스크도 지었다는 것인가.

"그렇다. 아버지는 무슬림이지만, 다른 종교도 존중했다. 교회가 필요한 자에겐 교회를 지어주었고, 모스크가 필요한 자에겐 모스크를 지어주었다. 부르키나파소에서 가장 큰 모스크도 아버지가 직접 지은 것이다. 이렇게 아버지는 열려있는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아들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아버지는 시간을 아끼고, 자식들을 직접 교육했다. 인생에서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쳤다. 부지런해야 하고, 올바른 삶을 영위해야 하며, 타인을 공경하고, 사람들과 친밀하게 서로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언제부터 아버지 사업을 돕기 시작했는가?

"중학교를 졸업한 16살 때부터 아버지 회사에서 일을 했다."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일한 것인가?

"아니다. 중학교 다니면서부터 아버지의 일을 돕기 시작했는데, 졸업 후에는 아버지께서 공부를 그만 두고 일을 하라고 하셨다. 그래서 고등학교 진학을 하지 않았다."

-어떤 일부터 시작했는가?

"당시 건설업 분야부터 시작했다. 회사에서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구매하기 위해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다. 중국에는 주로 트럭을 사러 다녔다. 일본에서는 건설기계를 파는 고마쓰 제작소와 거래를 했다. 두바이에서도 다양한 장비를 구매하기 위해 다녔다."

부르키나파소 기아자동차 매장에서 회의를 하고 있는 지브릴 회장(오른쪽)과 김기석 부르키나파소 명예영사(왼쪽에서 두 번째), 박수정 국경없는교육가회 사무국장(왼쪽). (사진=고선윤)

-영어를 잘하는데 독학인가?

"그렇다. 내 업무 중 하나가 영어를 주로 사용하는 외국인 파트너들을 상대하는 일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영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른 나이에 공부를 마쳤는데 거기에 대한 어떤 교육적 열망은 없나.

"사실 공부를 하러 미국유학을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러나 아버지 옆엔 누군가가 있어야 했다. 아버지께서는 공부보다는 자신의 일을 돕기 바랐다."

-다른 형제들도 아버지의 일을 도왔는가?

"아버지는 4명의 아내, 25명의 자녀를 두었다. 나는 22번째 아들이다. 모든 자식이 아버지의 일을 도왔다. 나는 결코 똑똑하지는 않았지만 적극적인 아이였다."

-아버지는 언제 돌아가셨는지?

"2011년에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당신이 아버지의 회사를 직접 운영하기 시작했는가?

"아니다. 아버지가 이룬 기업의 이름은 '우마루 카나조에 그룹(Oumarou Kanazoe Group)'인데 이 그룹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25명의 자식이 지분을 나누어가졌다. 이 중 몇몇은 실제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이것과 별개로 나는 내 사업을 시작했고, 현재 7개의 회사를 가지고 있다. 이것이 카나조에 그룹(Kanazoe Group)이다. 지금 내가 경영하고 있는 카나조에 그룹은 아버지가 소유한 우마루 카나조에 그룹보다 더 큰 규모로 성장했다. 자동차, 건설, 운송, 도로포장, 부동산, 콘크리트와 관련자재 생산, 비행기 렌트 사업, 화이버옵틱 테크놀로지 등의 사업으로 다양화했다. 이 중 건설이 절반 규모를 차지한다."

-훌륭하다. 앞으로 한국과 특별히 사업을 같이 하고 싶은 분야는 무엇인가?

"많지만 먼저 건설 분야다."

-방한 시 가장 기대하는 것이 있다면?

"기아 공장과 현대중공업을 방문하고 싶다, 농업과 관계가 있는 회사에도 가보고 싶다. 화이버옵틱 관련기관도 만나서 함께 일할 수 있는 파트너를 찾으면 좋겠다. 한국은 우수한 기술을 가지고 있는 나라인데, 현재 부르키나파소에는 한국기업을 찾아볼 수 없다. 프랑스, 중국 등 많은 나라들이 일하고 있는데 왜 한국이 들어오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다."

지브릴 회장(오른쪽)과 딸들.

-자녀가 4명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키우고 싶은가.

"내가 아버지로부터 받은 교육을 그대로 교육시키고 싶다. 성실해야 하고, 타인을 존중해야 하며 항상 '긍정적인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싶다. 타인과 다투어서는 안 된다. 이런 것들이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본적 요소라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사업으로 성공한 분지만 인격적으로도 성공한 분이다. 주변에서 크고 작은 분쟁이 생기면 누구나 아버지를 찾았고, 아버지는 현명하게 중재하고 해결했다. 나는 아버지를 닮고 싶다."

-이번 방한이 당신의 사업에 있어서, 삶에 있어서 좋은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한국을 방문하고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경험하고 싶다. 기아와 일을 시작한지는 1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교육비영리단체인 (사)국경없는 교육가회(EWB)를 비롯한 한국 파트너와 교류하면서 한국인들의 특별한 에너지를 느끼고 있다." 

-한국도 아프리카대륙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당신의 방한을 통해서 부르키나파소를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지난 5월 하와이에서 '기아 글로벌 콘퍼런스'가 열렸다. 기아 회장은 이 자리에서 5명의 사람이 타고 있는 돛단배 그림을 보여주었다. 회장은 '파도가 심하게 쳐서 배에 문제가 생기면 배위에 타고 있는 5명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논의하고 함께 일해야 한다. 이것이 파트너십이고 협력'이라고 했다. 이것이 바로 가족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으며, 기아자동차는 세계 각국 모든 지사를 가족처럼 여긴다고 했다. 공감했고 옳은 말이라고 생각했다. 가족이라는 유대로 함께 묶일 수 있고 함께 일할 때 많은 일들을 이루어낼 수 있다. 한국과의 인연을 소중히 하고 싶다."

부르키나 파소 수도인 와가두구(Ouagadougou)에 있는 기아자동차 사무실 쇼룸(Show room)에서 지브릴 대표가 직원에게 업무 지시를 하고 있다.

*다음은 인터뷰 일부의 영문 번역본.

A young entrepreneur(CEO) from Burkina Faso: An Interview with Djibril Kanazoe

Djibril Kanazoe is the 22nd son of the greatest businessman, Oumarou Kanazoe, as known as “Jung Jooyoung(Founder of Hyundai Group) in Africa”. Djibril is a chief executive officer of Kanazoe Group. He started working with his father since his graduation of middle school, when he was just a sixteen-year-old boy. Now he is managing seven companies on his own which are even bigger than what his father had established.

He has a strong interest in history and development experiences of Korea. He highly appreciates the passion in education, a hard-working spirit and diligence among Koreans. He’s been knocking doors to initiate the cooperation (partnership) with Korean enterprises, and about a year ago he acquired the dealership of KIA in Burkina Faso.

Having influenced by his father who had dedicated his life to the development of Burkina Faso, he is also putting a lot of effort in building infrastructures such as schools, mosques and roads.

Djibril got to learn about Educators Without Borders (EWB), a Korean non-profit education organization, which is actively working in Burkina Faso for the educational development and poverty reduction, and established a great relationship since 2014.

He has donated 30,000 USD to EWB wishing this to be used for helping people in need. It is an unusual case that a private business from a recipient country sponsors a NPO from a donor country. Djibril plans to visit Korea and have meetings with various private companies in this coming January, 2017.

Sunyun Ko, editor from Newsin had an interview with Djibril Kanaz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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