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틀담의 꼽추 '콰지모도의 고백'

[뉴스인] 김영일 기자  =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에 사는 '꼽추' 이야기는 우리에게 익숙하다. 월트 디즈니에서 '노틀담의 꼽추'라는 제목으로 내놓은 애니메이션으로 더 유명하지만, 원작은 프랑스 낭만주의 작가 빅토르 위고(1802~1885)의 소설 '노트르담 드 파리(Notre Dame de Paris)'다.

디즈니의 다른 만화가 그렇듯 '노틀담의 꼽추'는 행복한 결말로 끝나지만, 사실 원작의 주인공들은 비극적 최후를 맞는다.

빅토르 위고는 소설 '노트르담 드 파리' 서문에 "몇 해 전 노트르담 성당을 구경했을 때 한쪽 탑 캄캄한 구석 벽에 손으로 새긴 낱말, 'ANANKE(아낭케)'를 발견했다"고 적었다.

그리스어로 '숙명'이라는 뜻의 이 글자는 돌에 깊이 새겨진 채 오랜 세월의 더께로 시커멓게 돼 있었다. 위고는 "이 단어에 입각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원작은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지만, 결국 자신의 숙명을 넘지 못하는 인물들의 비극적 서사다.

더욱이 '노틀담의 꼽추'라는 제목에서 보듯 애니메이션은 '꼽추', 즉 콰지모도를 서사의 중심에 두고 있다. 그렇지만 원작 '노트르담 드 파리'는 콰지모도뿐만 아니라 집시 에스메랄다, 주교 프롤로, 근위대장 페뷔스, 시인 그랭구와르 등 노트르담 성당을 무대로 살아가는 프랑스의 인간 군상을 다각도로 비춘다.

모든 관심이 에스메랄다에게 쏠리면서 종교적 신념까지 무너지자 프롤로의 감정은 '욕망'에서 점차 '충동'으로 옮겨간다. 충동이란 내면의 알 수 없는 힘이 인간 주체를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상태로 몰고 가는 것을 말한다.

충동은 종종 극단적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 억눌린 욕망은 프롤로를 급기야 충동 상태로 이끌어 한밤 중 에스메랄다를 미행하게 하고 그녀와 사랑을 나누려던 페뷔스를 칼로 찌르게 한다.

살인을 시도하는 프롤로는 주교로서 신의 메시지를 전하는 '천사'의 이미지가 아니라 소름끼치는 '악마'처럼 묘사된다. 마지막에는 "너를 사로잡고 있는 악마가 신을 향한 내 눈을 가리는가"라고 윽박지르며 에스메랄다를 '마녀'로 지목하고, 그녀를 교수대에 올려 죽음으로 내몰기까지 한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충직한 종지기 콰지모도는 에스메랄다를 향한 순수한 '사랑'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겉으로는 굽은 등에 애꾸눈, 귀머거리, 절름발이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콰지모도는 에스메랄다를 납치해오라는 프롤로의 명령을 따르다가 페뷔스에게 체포되고 이내 형틀에 묶이는 신세가 된다. 손발이 묶인 채 "물 한 모금만 달라"고 울부짖는 콰지모도를 모두 무시하지만, 에스메랄다만이 그에게 물을 건네준다. 그녀의 배려에 감동한 콰지모도는 에스메랄다를 위해 자기 인생 전부를 바치겠다고 다짐한다.

외모 때문에 에스메랄다의 사랑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안 콰지모도는 그저 뒤에서 그녀를 지켜보고 보호해준다. 그것만이 콰지모도가 할 수 있는 사랑의 방식인 것이다.

하지만 프롤로의 삐뚤어진 욕망 때문에 에스메랄다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자, 충직한 종지기 콰지모도는 주인처럼 모시던 프롤로를 계단에서 밀쳐 죽이는 충동적 모습도 보인다. 극의 마지막에 콰지모도가 죽은 여인을 안고 절규하며 부르는 '춤을 춰요 에스메랄다'는 절절한 사랑의 고백이다.

아무리 외모를 따지고 능력을 재는 세상이 됐지만, 콰지모도는 '사랑의 가치'가 여전히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연극 '노틀담의 꼽추'는 창덕궁에 위치한 소극장 칸 공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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