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화폐로 보는 세계사 속 숨은 이야기

알파고 시나씨 기자

*알파고 시나씨(Alpago Şinasi) 하베르코레(Haber Kore) 편집장이 세계 각국 화폐 속에 담긴 그림과 그 속에 숨은 이야기를 뉴스인(NEWSIN)에 연재한다. 터키에서 태어난 알파고 기자는 지난 2004년 한국으로 유학 와 충남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터키 지한(Cihan)통신사 한국특파원으로 활동했으며, 저서로 '누구를 기억할 것인가'(2016)가 있다. 지난 9월에는 대학로에서 '한국생활백서'로 스탠딩코메디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편집자주

[뉴스인] 알파고 시나씨 기자 = 아프리카라는 용어는 피부 색깔 때문에 그런지는 몰라도 아프리카 사람이 아닌 누구에게나 대륙 보다는 나라 이름으로 들린다. 아시아, 북아메리카 다음으로 가장 큰 세 번째 대륙인 아프리카는 54개국으로 이뤄져 있다. 유엔에 가입된 회원국의 거의 4분 1이 위치한 곳이다.

우리 눈에는 그 50개 넘는 나라가 담긴 대륙이라는 이미지보다는 왠지 하나의 통일된 역사와 문화를 가진 국가로 보인다. 그렇지만 막상 아프리카 공부를 하다 보면, 너무나 복잡해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될지 잘 모른다.

필자는 아프리카를 역사적 흐름에 따라 분류하고 난 뒤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일단 이집트나 모로코 같은 북아프리카 나라들은 아프리카보다는 중동으로 분류된다. 식민지 기억이 그렇게 강하지 않은 에티오피아나 모리타니 같은 중동과 같은 아프리카 국가들도 제외한다면 나머지 국가들을 뿌리 깊이 식민지 통치를 받았던 나라들이다.

바로 이 시점에서 유엔 가입년도를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국가는 라이베리아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이다. 라이베리아와 남아공은 유엔의 창립 회원국이다. 시작점을 라이베리아로 선정한 것은 이 나라가 훨씬 먼저 건국됐기 때문이다.

‘자유의 땅’이라는 의미의 이름으로 1847년 건국된 라이베리아(Liberia)는 독립된 것이 아니다. 국명과 다르게도 자유의 역전이 되었던 라이베리아의 슬픈 역사를 요약해 보기 위해 라이베리아의 화폐 속 초상화로 남은 인물들의 사연이 좋은 로드맵이 될 수 있다.

파란색의 10달러를 보면 앞면에 라이베리아의 초대 대통령 조지프 젱킨스 로버츠의 초상화가 있다. 로버츠는 1809년 미국에서 노예가 아닌 흑인과 백인의 혼혈로 태어났다. 그 당시에는 미국에서 해방된 흑인들의 숫자가 증가했는데, 자유를 얻은 흑인들을 다시 아프리카에 보내서, 그들을 위한 나라를 세우자는 목적으로 미국식민협회가 창립됐다.

미국식민협회 덕분에 1840년부터 라이베리아에 온 로버츠를 비롯한 많은 흑인들이 여기서 미국과 비슷한 개념으로 나라를 만들었다. 마치 몇 백 년 전 원주민들이 무시당하고, 유럽에서 온 이민자들을 중심으로 미국이 탄생했듯이 라이베리아도 라이베리아 원주민보다 미국에서 이민 온 흑인 중심으로 태어났다. 미국에서 무소속으로 초대 대통령이 된 조지 워싱턴이 국부가 된 것처럼, 조지프 젱킨스 로버츠도 역시 무소속으로 초대 대통령이 되며 역사에 국부로 기록되었다.

‘자유의 땅’은 미국과 비슷하게 시작했지만, 흐름은 미국과 달랐다. 보라색 5달러 앞면 사진에 나와 있는 5대 대통령 에드워드 제임스 로예가 1869년 창당한 진실 휘그당은 1883년부터 거의 단일정당제로 정권을 잡았다.

여기서 큰 문제는 라이베리아가 정당을 중심으로 해서 집단독재 정권이 들어선 게 아니라, 미국 문화를 받아들인 미국 출신 흑인과 원주민들이 그 사이 사회통합을 하지 못하면서 5%도 안 되는 한 공동체가 전체 나라를 다스리게 되었다는 점이다. 진실 휘그당 정권으로부터 원주민 흑인들은 이민자 흑인들에 대한 분노를 쌓아가기 시작했다.

적갈색의 20달러에 사진이 실린 윌리엄 터브먼은 39대 대선부터 43대 대선까지 거의 단일후보로 재당선된 19대 대통령이다. 역시 미국 출신 이민자 가족에서 태어난 터브먼 대통령은 라이베리아 원주민들의 분노를 눈치 채고, 국가 발전과 사회 통합을 제1 과제로 삼았다.

1971년까지 27년 동안 대통령으로 역임했던 터브먼 대통령은 자신을 진정한 국부로 만들기 위해 라이베리아를 원주민 부족들의 연합체보다는 하나의 현대 민족 국가로 재구성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런 목적으로 실시했던 사회통합 정책은 잘못된 길로 기울어졌다.

터브먼 대통령의 현명한 생각으로 시작된 사회통합 정책은 라이베리아 원주민들의 분노를 더 크게 만들었다. 이미 자기네 땅을 이유 없이 미국에서 건너 왔던 이민자들에게 빼앗긴 라이베리아 원주민들이 이제는 자기네 전통 풍습까지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초록색 100달러 앞면에 보이는 윌리엄 톨버트 대통령은 라이베리아의 새로운 지도자가 되면서 원주민들을 향한 많은 정책을 내세웠다. 야당 창당을 허용한 그는 독립적인 외교 노선을 통해 친미 나라든, 공산권 나라든 많은 국가에서 경제적인 지원을 받아 경제 발전에 집중했다.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많은 개선을 이룬 그는 원주민들의 쌓여진 불만을 극복하려고 했다. 다만, 톨버트 대통령의 이러한 극복 속도는 느려서 그런지 100년 동안 뿌리 깊던 원주민의 분노는 참지 못하고 1980년에 폭발했다.

분홍색 50달러 앞면에 초상화가 있는 사무엘 도가 이끈, 30대도 안 되는 원주민 출신 젊은 군인들로 구성된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1985년 실시된 대선까지 군부 지도자로, 대선 이후 대통령으로 라이베리아의 지도자가 된 도의 4·12 쿠데타로 라이베리아에서 미국 출신 이민자, 소위 말하자면 아메리코-라이베리아인의 정치적 지배는 133년 만에 끝나게 되었다. 이렇게 마무리를 했으면 4·12 쿠데타를 ‘행복한 끝’으로 착각할 수도 있다. 사실 4·12 쿠데타는 종말의 시작이었다.

도 정권이 들어서면서 아메리코-라이베리아인과 그들에게 협력했던 소수 부족들에게 억압이 시작됐고, 많은 아메리코-라이베리아인과 소수 부족 원주민이 라이베리아를 떠나게 되었다. 여기서 또 다른 문제는 군부 세력 내부에서 갈등이 생기면서 군부는 부족끼리 분단하게 됐다는 것이었다.

군부의 분단은 1989년 발생한 1차 라이베리아 내전으로 이어졌다. 도 대통령은 1990년에 내전을 마무리하려고 종전협정을 맺으려고 했지만, 그러한 외교적인 움직임을 알아챈 무장 세력에게 잡혀서 고문을 받으며 사망했다.

도 대통령은 예전 톨버트 대통령에게 하던 것을 되돌려 받게 됐다. 쿠데타 당시 대통령궁을 공격한 도 대통령은 톨버트와 그의 지지자 26명과 함께 살해되어 무덤에 묻혔고, 톨버트 내각원 13명은 수도 몬로비아의 바클리 트레이닝 센터 근처의 해변에서 공개적으로 총살당했다.

이 총살에서 4명만이 살아남았고 그중 재무부 장관 엘렌 존슨 설리프가 2005년 대선에서 이겨 아프리카에서 선출된 첫 여성 대통령이 됐다. 노벨평화상도 수상한 설리프 대통령이 라이베리아의 좋은 시작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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