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기록영화, 그 코드를 풀다’ 저자 김승 박사 “김정일 보고용 감시영상 제작됐다”

김승 박사 저서 '북한 기록영화, 그 코드를 풀다'(사진=한울아카데미)

[뉴스인] 박소혜 기자 = 지난여름 북한 평양 주민들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태양아래’가 상영됐다. 러시아 비탈리 만스키 감독의 북한판 ‘트루먼쇼’, 즉 몰래카메라였다. 조작되지 않은 북한의 민낯을 보겠다는 것이 의도다. 해외 언론인들의 이런 시도는 종종 세상에 공개되곤 했다.

하지만 북한 내부에서도 몰래카메라가 있을까? 실제로 있을 뿐 아니라, 이 ‘몰카’는 최고지도자인 김정일을 위한 용도였다. 간부들이 찍은 감시 영상, 북한말로는 ‘통보자료 기록영화’다.

최근 ‘북한 기록영화, 그 코드를 풀다’를 통해 북한판 다큐멘터리를 파헤친 김승 박사는 “김정일 시대에는 영화가 많이 만들어졌는데, 그 중에는 보고용도 있고 통보용도 있었다. 업무를 영상으로 만들어 김정일에게 보고하는 것이 ‘보고자료’ 기록영화고, 다른 사람의 잘못된 점을 몰래 찍어 상부에 보고하는 영상은 ‘통보자료’ 기록영화”라고 21일 설명했다.

즉 북한판 몰래카메라는 당원이나 간부들을 숙청하는 증거자료로 사용된 것이다.

영상을 보고 숙청도 시키지만, 숙청된 사람들은 기존 기록영화에서도 사라진다. 북한의 영상은 역사적 사료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장성택은 숙청 후 더 이상 기록영화에 모습을 보이지 않게 된다.

김 박사는 “왕이 출연하는 영상에 반역자가 같이 나올 수 없는 이치와 같다. 장성택 장면은 사후 일일이 삭제했다고 볼 수 있다. 다른 문헌에서도 모두 사라졌을 것이다. 기록영화는 이렇게 사라진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매체이기 때문에 눈에 띠는 것”이라고 밝혔다.

김승 박사

김승 박사는 ‘북한 기록영화의 영상재현 특성연구’로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북한 기록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연구 중이다. 그동안 일본과 중국 등을 다니며 자료를 수집했다. 우리가 이따금 뉴스에서 접하는 김정은이나 열병식 등 북한 자료화면은 기록영화에서 가져온 것이 많다. 최근 북한은 이러한 기록영화를 예술영화보다 더 많이 제작하고 있다.

“지난해 북한에서는 예술영화를 1~2편밖에 안 만들었는데, 다큐멘터리에 해당하는 기록영화는 20~30편 만들었다. 체제선전에 영화보다 기록영화가 가성비가 높다고 보는 것이다. 선전시스템이 작동된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이런 체제선전용 영상물이 주민들에게 효과는 있는 걸까?

김 박사는 “북한 조선중앙TV에서는 ‘기록영화’를 자주 틀어준다. 주민들이 대놓고 설득되는지는 몰라도 무의식 영역에서 작동할 수 있다. 수용자 효과는 연구가 불가능하지만, 효과적이지 않은 선전수단을 북한정권이 지속할 이유는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쉽게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근거로 엄청난 분량의 기록영상을 들었다. 지금껏 잠잠했던 김정은의 생모 고용희가 김정은 정권에서 되살아난 것도 바로 기록영화를 통해서다. 지난 2012년 공개된 북한 기록영화 ‘위대한 선군조선의 어머님’에서는 김정일과 고용희가 함께 현지지도를 다니는 장면이 나온다.

북한이 지난 2012년 공개한 기록영화 '위대한 선군조선의 어머님' 속에는 김정은 생모 고용희(왼쪽)와 김정일이 함께 현지지도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사진=화면 캡처)

김승 박사는 “지도자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찍어 놓았다가 체제선전에 필요할 때마다 꺼내서 선전한다. 그냥 선전하는 것이 아니라 기록영상을 골라 논리와 근거를 댄다. 김정은 체제에서 생모 고용희가 필요하니까 30년 전 영상을 가져다 쓰는 거다. 우리는 북한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것이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북한을 보는 매체로 기록영화라는 창을 선택한 김 박사는 현재 이 분야에서 국내에서 거의 유일한 전문가다. 남북관계와 통일에 대한 논의는 많지만 아직도 우리는 들여다 볼 창도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이에 대해 북한대학원대학교 이우영 교수(북한연구학회장)는 “북한을 이야기할 때 북한에 대한 정치적 입장부터 먼저 확인하려 하고 비판에만 집중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북한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도 없이 이런 논의들이 진행되고 있다”면서 “북한의 구체적인 현실을 하나씩이라도 알아가려는 노력이 진정한 통일 준비가 될 것이다. 북한 기록영화 연구는 그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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