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없는 교육가회가 바라본 아프리카

*아프리카 하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굶주림과 질병, 자연재해로 고통받는 검은 대륙, 혹은 해외여행기를 담은 TV 프로그램 속 이국적 모습일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교육개발협력사업을 수행해온 국경없는 교육가회(EWB, Educators Without Borders) 구성원들이 몸소 겪고 느낀 다채로운 아프리카 이야기를 뉴스인에서 연재합니다. EWB는 지난 2007년 개발도상국 교육권 확대를 위해 설립된 비정부단체입니다. -편집자주

통제된 테러 장소를 구경하는 부르키나파소 수도 와가두구 시민들 (사진=신주용)

[뉴스인] 신주용 = 서아프리카로 떠나면서 한 번쯤은 위험한 순간을 맞이할 것 같았다. 더군다나 내가 파견되기 1년 전인 2014년 10월에는 혁명으로 오랜 독재정권이 막을 내렸었다. 임시정부 상황은 어떻게 전개될지 누구도 예상할 수 없다.

떠나기 전 여러 선교사에게 조언을 구했을 때, 임시정부는 정권을 차지하기 위해 또는 강대국들이 이익다툼을 위해 내전 가능성이 크다고 걱정이 많았다. 그래서였는지 내가 파견됐던  2015년 9월 17일 일어난 쿠데타는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어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던 일은 지난 1월 15일 금요일 낮잠에서 막 깨어 보았던 와가두구 시내 테러 소식이었다.

누구든지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군에 입대한 적은 없지만, 제대를 앞두고 날짜를 세는 마음이 이러할까? 귀국일이 100일 남았을 때는 거의 다 왔다며 좋아했는데, 87일, 77일 등 남은 일수를 보았을 때는 아직 이 정도나 남았다니 하며 의욕이 사라질 때가 있다. 출국이 39일 남았던 1월 15일이 내게는 그런 날이었다.

친구가 보낸 D-39라는 메시지를 보고 아침부터 출근할 맛이 안 났다. 이곳에서 지낸 시간보다 출국 전까지의 시간이 더 길게 느껴졌다. 겨우 문 밖으로 나가니, 여전히 난 와가두구였고 이 생각이 내 마음을 어둡게 만들었다. 늘 들리는 시끄러운 오토바이 소리, 시내를 향해 가는 수많은 차들, 핸드폰 선불충전 카드를 열심히 흔드는 호객 행위 등 같은 일상이 지겨워졌다.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현지인 직원들에게 전달사항을 말하고 상의할 일들을 처리했다. 바쁘게 일들을 해결하고 나니 점심시간이 지나 있었다. 더디게 흘러가는 시간. 내일이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가두구에서는 보통 금요일에 점심시간을 짧게 하거나 거르고 오후 2시에 퇴근하는데, 한국 사람이라 그런지 이를 지켜서 퇴근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때면 ‘칼퇴’하고 시내에 있는 ‘카푸치노’에서 한주간의 일을 정리하는 주간 보고서를 쓰거나 개인 일기, 급하지 않은 업무들을 처리하곤 했다.

‘카푸치노’는 부르키나파소에서 유일하게 스탠드바 의자와 바 테이블이 있는 서양식 카페였다. 공항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스플랜디드 호텔 건너편에 있어서, 아침, 점심, 저녁 늘 출장 온 외국인들이 있었다. 그래서 잠깐이나마 부르키나파소에 있다는 것을 잊을 수 있었다.

오늘은 딱 힐링이 필요한 날이라 ‘카푸치노’에 가기로 맘먹고 사무실을 나왔다. 원래도 다음날 한인 꼬마의 생일 파티가 있었기 때문에 시내로 생일 선물을 사러 갈 생각이었다.

바로 카푸치노로 갈까 고민하다가 핸드폰 충전기도 챙겨야 하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일단 집으로 돌아 왔다. 들어오자마자 후다닥 준비하고 바로 나가야지 했는데, 방으로 들어오니 빨래 바구니에 쌓여 있는 옷들이 보였다. 빨래를 하고 시내로 가야 할지, 갔다 와서 하는 게 좋을지 고민이 되었다. 다운된 기분에서 빨래를 하고 싶지는 않은데, 막상 시내에서 기분 전환하고 돌아왔을 때 쌓여 있는 빨래를 보면 다시 기분이 다운될 것 같았다. 고민 끝에 한 선택은 빨래를 먼저 하고 나가는 것이었다.

신나는 음악을 틀어 놓고 빨래를 시작했다. 붉은 흙먼지가 배어 있던 옷들이 깨끗해진 것을 보며, 이미 기분은 반쯤 풀려있었다. 빨래를 널고 나니 2시간이 지나 있었다. 기분은 많이 풀어졌지만, 생일 선물을 사기 위해 시내에 꼭 나가야 했다. 일단 조금만 쉬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잠이 들어버렸다. 눈을 떠보니 밖은 이미 깜깜해졌다.

한인꼬마가 핸드폰으로 보내준 테러 알림 사진 (사진=신주용)

생일 선물을 사러 가야 해서 시간을 보려고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한인 카톡방에 카푸치노와 스플랜디드 호텔 테러 소식이 올라와 있었다. 뒤통수가 차가워지면서 목부터 손끝까지 힘이 쫙 빠졌다. 출국일이 길게 남은 것 같아 우울했던 그날. 그 기분을 풀기 위해 그곳에 갔다면, 아마 난 이 글을 쓰지 못했을 수도 있다.

내 주위 여러 사람들이 그날 그곳을 가려다가 출장, 미팅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가지 못했다. 테러 사건 이후 이런 얘기들을 나누며 누구도 테러를 예측할 수 없고, 누구도 테러에서 안전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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