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서울특별시농아인협회 문병길 회장

서울특별시농아인협회 문병길 회장이 수화로 청각장애인들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 (사진=김지원 기자)

[뉴스인] 김지원 기자  = 소통의 기본은 '듣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남들보다 잘 듣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손짓과 표정이 주요 소통 수단이다. 

지난 14일 서울시 서대문구에 위치한 수화통역센터에서 서울특별시농아인협회 문병길 회장을 만나 손짓으로 의사를 표현하는 청각장애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날 인터뷰에는 문 회장의 수화를 말로 전달해주는 우지희 통역사와 문 회장에게 취재진의 질문을 수화로 전달해주는 문혜란 통역사 등 2명이 함께했다.      

문 회장은 9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3살 때 갑자기 열병을 앓고 청각장애를 가지게 됐다. 가족 내 농아인이 혼자여서 가족끼리도 소통이 어려워 외롭고 힘든 시기를 보냈다고 한다.

문 회장은 농아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평등한 교육'이라고 강조했다. (사진=김지원 기자)

◇ 농아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평등한 교육'

- 농아인으로 살면서 가장 어렵거나 힘들었던 점은 

"평등한 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한 게 가장 억울하다. 농아인은 지적장애가 아님에도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바꾸고자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각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가장 필요한 건 교육인데, 실제로 내가 다녔던 특수학교의 모든 선생님들이 수화를 하지는 못했고 음성언어를 주로 사용했다. 때문에 제대로 된 교육이 이루어질 수 없었다. 물론 훌륭한 선생님들이지만 그분들이 갖고 계시는 교수법은 대부분 잘 들을 수 있는 장애 아동들을 위한 것이다."

- 수화를 아예 못하는 선생님들에게 수업을 들었다는 것인가

"전국에 수화통역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 교사가 약 20명 수준이라고 알고 있다. 그 외에는 수화를 조금만 할 수 있거나 아예 못한다. 미술시간에 선생님이 '여기에 터치를 어떻게 하라'는 세심한 설명보다는 '그려라' 정도 수준의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 농아인들을 위한 특수학교가 따로 있지 않나

"창립된 지 100년 넘은 서울농학교 외에도 삼성, 애화, 서울구화학교 등 4개 농아학교가 있지만 교육의 커리큘럼이나 방침이 다르다. 4개의 학교가 각각의 특성을 가질 것이 아니라 아이들 특성에 맞춰 학교를 하나로 모아 청각장애 정도에 따라(경증·중증) 수학하는 범위를 정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이런 특수학교들은 고등학교까지만 해당된다. 실제로 고등교육을 실시할 수 있는 농아 대학교는 국내에 없다고 봐야 한다. 수화 전문학과도 대학 2곳에서만 개설돼 있다. 미국에 있는 농아인 특수 대학교를 방문해 보니 학생들이 수학하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도록 수화통역, 음성통역이 계속 있었다. 한국에는 그런게 실현되고 있지 않다."

- 한국수화언어법이 지난해 12월 31일 제정됐다. 이 법안이 갖는 의미는?

"한국수화언어법이 지난해 말 제정돼 오는 8월부터 한국어와 동등한 언어 지위를 갖게 됐다. 이 법에는 한국 수화 교원 양성, 농아인들에게 수화 통역 지원 등 수화 언어 환경에 대한 제도 개선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다. 하지만 아직 법령에 따른 시행령, 규칙 등 만들어가야 할 문제가 산재해있어 기쁨보다도 어깨가 더 무겁다.

서울시립대학교 내에 평생교육과 학점은행제 시행 및 정식교과목으로 수화관련학과를 신설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긴 하지만 제약이 많다. 꾸준히 도전하다보면 언젠가는 미국 갈로뎃대학처럼 국내 농아인들도 원하는 교육을 원없이 들을 수 있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 시각 발달한 농아인 '안전 운전'에 적합

- 농아인들의 취업 현황은 어떤가

"젊은 농아인들은 길가에서 풀빵 장사나 막노동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 제대로 된 직장을 갖고 있는 농아인은 전국에서 약 0.2%밖에 안 된다. 소통이 이뤄지기 힘들어 회사측에서 지체나 시각 등 다른 장애를 가진 이들에 비해 잘 채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농아인들은 눈으로 파악하는 것에 단련돼 있다. 실제로 농아인 운전자들은 일반인들보다 사고율이 훨씬 적다. '택시 운전'에 농아인의 특성을 잘 살릴 수 있다. 택시를 타려는 농아인이 카카오택시 앱으로 고객이 출발지와 도착지를 지정하면, 그 정보를 보고 농아인 택시기사가 운전을 해주면 된다.

이런 시스템을 도입해 농아인들이 택시기사를 할 수 있는 여건과 취업제도가 마련됐으면 좋겠다. 청각 장애인들을 태우는 장애인 콜택시에 농아인 운전자를 고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문 회장은 농아인 목소리를 '진심'으로 대변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사진=김지원 기자)

◇ 농아인 목소리 '진심'으로 대변할 사람 필요

- 서울농아인협회장을 맡고 있는데, 농아인들에게는 성공 사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일을 해왔나. 

"지난 2009년 3월부터 회장직을 맡았다. 7년 전보다는 많이 달라졌다. 수화통역센터가 서울 25개 자치구에 다 설치됐고 어르신을 위한 주간보호시설이 2개가 있고, 농아여성어울림센터가 설치됐다. 대략 우리가 꿈꿔왔던 것들이 75%정도 이뤄졌다."

- 앞으로 중점적으로 추진할 계획은.

"나이가 들면서 청력이 감퇴하는 '노인성 난청'이 생기는 분들이 있다. 이분들은 경로당을 가도 대화하기 힘들다. 서울시에서 일부 쉼터 지원을 해주고 있지만, 소규모가 아니라 복지관 등 대규모 시설을 운영했으면 한다.

복지관을 통해 청각장애를 갖고 계시는 노인분들이 여가선용 뿐만 아니라 노동에 참여할 수 있는 제반 사항들을 배울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기관이 필요하다."

- 20대 국회에는 장애인 국회의원이 없다.

"그렇다. 일반인들에게는 크게 와 닿지 않겠지만, 4년내내 우리 농아인을 대변할 국회의원이 없다는 것은 굉장히 큰 손실이다. 듣고 말하지 못하는 답답함도 있는데 국회에서도 소외되고 나니까 소통하기 정말 어렵다. 

물론 현직 의원들이 어려움을 공감해줄 수는 있겠지만 본인이 농아는 아니다. 농아인 본인이 목소리를 낼 때 가장 적합한 입법을 할 수 있다. 

또한 공무원들은 모든 장애를 하나로 통합해서 생각하길 원한다. 하지만 지체 장애인이 농아를 대변할 수 없고, 우리가 그들을 대변할 수 없다. 장애의 특수성을 고려해 세부화시켜 논의 해야 한다." 

문병길 회장은 젊은 농아인들에게 '세상에 직접 부딪혀라'는 말을 전했다.

문 회장은 "우리의 언어인 수화는 비장애인들과 소통하기 어렵다. 우리의 간절함과 바람을 전하기 위해서는 직접 부딪히지 않고는 전달되기 힘들다. 인터넷 세대라 하더라도 직접 찾아가 몸으로 부딪히며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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