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한글 그림책을 출판한 일본인 야마기와 타카코(山極尊子) 작가가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의 눈으로 본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이야기를 뉴스인(NEWSIN)에서 칼럼으로 연재합니다. 야마기와 타카코는 2008년 한국으로 유학 와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 석사학위와 북한대학원대학교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교육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지한파 동화작가입니다. -편집자주

북한이탈주민 자녀들은 부모와 갈등을 겪으며 한국 사회의 편견이라는 테두리 속에서 성장해 나가고 있다. 사진은 ‘달에 사는 나무’(Tree on the Moon). (사진=방창순 사진작가)

[뉴스인] 야마기와 타카코 = “우리와 만난다는 것부터 자기가 북한출신이란 것을 다른 아이들한테 밝히는 것이기 때문에 아이들을 만나기도 조심스러워요. 대부분 비밀로 하지만 어떤 아이들은 우리와 만남도 하지 않으려고 해요. 우리도 모른 척 하고 있지요.”

내가 아는 몇몇 북한이탈주민은 초등학교에서 북한이탈가정 자녀의 학교적응을 돕는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다. 이들은 북한이탈가정 아이 중 학교적응이 어려운 경우 불가피하게 대안학교로 가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대부분 북한이탈가정 출신임을 밝히기 꺼려한다고 말한다.

자녀들이 북한 출신임을 밝히기 어려운 환경은 부모들도 느끼고 있었다. 북한이탈여성들이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는 피하려 하지 않고 감당하는 모습을 보이는 반면 자녀에 대해서는 북한 출신임을 숨기는 것이 좋다고 느끼고 있는 것이다.

한 북한이탈주민은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지 않고 당당하게 밝히면서 사회적 모순을 이야기 하지만 동시에 자녀문제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면서 자신의 존재가 부정되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경상도 사투리는 인정해주면서 왜 북한 사투리는 인정해 주지 않죠? 자연스럽게 서울말을 배우고 익숙해질 수도 있지만 북한말은 무조건 쓰지 말고 고치라는 것에 대해서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부딪히기도 합니다.”

“우리 딸은 지금 고등학교에 다녀요. 기숙사에 있는데 주위 친구들은 우리가 북한 출신인 것을 몰라요. 우리는 말투를 쉽게 바꿀 수 없지만 애들은 잘 바꾸잖아요. 저도 딸 친구들은 일부러 피합니다. 딸하고 이야기 해 보면 따돌림은 당하지 않고 잘 지낸다고 해요. 딸이 집에 올 때에는 몇 정거장 앞에서 내려서 돌아옵니다.”

자녀들은 어려서부터 한국 사회에 적응하기 시작했고, 그 적응에 부모의 존재가 부담이 된다는 것을 개인적인 문제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보자. 시골 출신이 서울에 와서 공부하면서 자신이 시골출신임을 숨기고 그로 인해 부모와의 관계가 소원해진다면 이것이 정상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세대 간의 단절은 불가피한 것인가? 사회가 이런 모순에 빠져있다면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고민되어야 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바로 ‘낙인’의 문제이다. 언어습관만으로 사회적으로 열등하거나 화합할 수 없는 대상으로 낙인 하는 것은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다.

외적으로 식별 가능한 외국인이 한국어를 서투르게 한다고 해서 열등하다고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들이 언어는 표준어와는 상관없을 수 있다. 그런데 유창한 북한 사투리의 언어습관은 낙인을 만드는 암묵적 동기가 되는 것이다.

그 낙인은 다름 아닌 계급적 낙인이다. 그리고 자신의 낙인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부딪히면서도 자녀의 문제에 대해서는 낙인을 인정하고 스스로 숨어버리게 되는 것은 그 낙인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경험했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북한이탈주민은 자녀와 단절되면서 일반적인 부모의 역할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북한 출신이라는 낙인이 자녀의 앞길에 장애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한국 사회와 자녀와의 원활한 관계를 위해 자녀를 피해야 하는 것을 선택하게 하는 사회라면 우리가 누구에게 그 책임을 묻고 변화를 요구해야 하는지는 분명하다. 한국 사회는 분명 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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