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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여자 먹거리 보고서
고선윤 논설위원 | 승인 2015.07.08 11:05

   
 
【서울=뉴시스헬스】고선윤 논설위원 =  마른 여자, 날씬한 여자, 뚱뚱한 여자. 재미난 조합의 세 여자가 눈부시게 밝은 여름을 즐기며 원주로 향했다. 아침 8시 반의 만남은 가족을 떠나 혼자 사는 여자에게도, 두 아이를 등교시켜야 하는 여자에게도, 아들을 군에 보내고 빈 둥지를 지키는 여자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침을 먹지 못해서 배가 고프다면서 이것저것 먹거리를 꺼낸다.

먼저 마른 여자가 철제 도시락을 꺼냈다. 손가락 크기로 자른 오이, 당근 그리고 호두가 전부다. 나누어 먹자고 건네자 두 여자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언니는 이런 거 먹고 살아? 토끼도 아니고.” 이런 말을 하면서 크게 웃는다. 그래도 하나씩 집어서 뽀독뽀독 씹는 맛이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마른 여자는 마흔이 넘어 시작한 요가에 푹 빠져서 산다. 요가를 하다 보니 몸이 보내는 신호에 예민해져 맑은 음식을 골라 먹게 되었고, 제대로 배워보자는 마음으로 공부해서 자연치유전문가가 되었다. 여자는 고무신을 신고 천가방을 든다. 동물의 슬픔이 깃든 가죽 제품은 지니고 싶지 않다는 거다. 가방에는 항상 오이와 당근이 든 도시락이 있다. 허기와 갈증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다.

날씬한 여자도 가방을 열었다. 급하게 나온다고 아이들 간식가방을 그냥 들고 왔다고 했다. 냄새만 맡아도 버터가 녹아내릴 것 같은 쿠키, 알록달록 색깔을 뽐내는 사탕, 형광색에 설탕을 듬뿍 묻힌 모양도 요상한 젤리, 번거롭게도 치즈를 찍어서 먹어야 하는 막대모양의 과자 등등 보기만 해도 달콤한 미소가 쏟아지는 것들이 줄줄이 나왔다.

마른 여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운전대를 잡은 뚱뚱한 여자는 “이렇게 단 걸 어떻게 먹어? 나 더 살찌면 안 된다니까”라고 투덜거리지만, “운전하는 사람이 배고프면 안 되지”하고 입으로 쏙 넣어주는 쿠키를 못이기는 척 받아먹는다. “나 원래 아침 안 먹는 사람이라 배도 안 고픈데…”라면서도 친절하게 치즈를 듬뿍 찍어서 건네는 과자를 좋다 한다. 급기야 젤리 봉투를 옆에 끼고 운전을 한다. 

날씬한 여자는 한약을 먹는다는 이유로 음식을 가린다. 일어나자마자 커피부터 찾았던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냉수 한 컵으로 아침을 시작한다. 모든 먹거리에서는 해산물을 배제했다. 멸치다시 없이 된장찌개는 어떻게 끊이는지 모르겠다. 오일파스타를 주문하고도 앤초비를 빼달라고 할 정도로 마음 독하게 먹고 실행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 가방 속 과자는 온전히 뚱뚱한 여자의 몫이었다.

먹니 안 먹니 웃음으로 가득한 차는 이리 가니 저리 가니 몇 번을 헤매다 원주에 도착했다. 문인과 예술인들에게 작품 구상을 위한 공간이 지원되는 토지문화관을 찾았다. 세 여자는 조심스럽게 이사장방의 문을 열었다. 이사장께서는 크림에 설탕을 듬뿍 담은 걸쭉한 커피를 마시면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쭈뼛쭈뼛 서 있는 여자들에게 앉으라고 손짓하고 “뭐 드실랍니까”란다. 말이 떨어지게 무섭게 뚱뚱한 여자는 “블랙,” 마른 여자는 망설임 없이 “이사장님과 같은 것으로 주세요”라 하고, 날씬한 여자는 살짝 눈치를 보다가 “저도 이사장님이랑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뚱뚱한 여자만 빼고 모두 달달한 믹스커피를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오늘부터 다이어트, 내일부터 다이어트 입에 달고 사는 뚱뚱한 여자는 궁금했다. 맑은 음식만 고집한다는 마른 여자와 먹거리를 가리는 날씬한 여자는 왜 믹스커피를 마신다고 했을까. 그 답은 돌아오는 길에 풀었다. “언니들 믹스커피 좋아했었어? 나만 특별한 사람 같았잖아”는 말에 마른 여자의 대답이 재밌다. 그 누군가를 알고 싶으면 그 사람과 같은 음식을 먹어봐야 한다는 거다. 날씬한 여자도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라고 거든다. 

뚱뚱한 여자는 마른 여자가 평상시 한 말을 기억했다. “사람은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형태, 감정, 생각 그리고 모든 능력이 변할 수 있다. 먹는다는 작업은 다른 자연의 에너지를 우리 몸에 흡수・동화하는 것이다. 그러니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상태가 달라진다. 커피를 마시면 30분 내에 이에 반응하는 행동을 한다. 말이 많아진다거나 빨리 움직인다거나….”
그리고 이런 말도 했었다. “음식은 사회적 도구다. 어떤 민족이던 그것을 먹으면서 융합한다. 까다로우면 친구가 되기 어렵다”고.

여기서 뚱뚱한 여자는 내일부터 다이어트 하겠다고 다짐한 다음, 지금 이 순간 야식을 먹으면서 글을 쓰고 있는 나 고선윤이다. 누군가 나를 알고 싶다면 모두가 잠든 조용한 밤에 매운 닭강정과 맥주 한잔 들이키면서 행복을 느껴보기 바란다. 그리고 내일부터는 본격적 다이어트를 약속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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