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자료원 '1931-1975 이만희 감독 40주기 기념전'

▲ '이만희 감독 40주기 기념전' 포스터. (사진=한국영상자료원 제공)
탕웨이와 현빈의 안타까운 로맨스를 담은 김태용 감독의 '만추'(2010).

이 영화는 원래 1966년 이만희 감독의 '만추'(晩秋)가 원작이다. 일본 사이토 고이치 감독의 '약속'(1972)을 비롯해 '육체의 약속'(김기영, 1975), '만추'(김수용, 1981) 등 벌써 4번이나 리메이크됐다. 그만큼 높은 작품성으로 인정을 받았지만 아쉽게도 현재 원본은 남아 있지 않다.

그뿐만이 아니다. 김지운 감독의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2008)은 이만희 감독의 '쇠사슬을 끊어라'(1971)에서 영향을 받았다.

박찬욱, 김지운, 홍상수 등 내로라하는 세계적 감독들이 존경하는 감독으로 꼽은 천재감독 이만희가 저 세상으로 떠난지 벌써 40년이 됐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처럼 그는 돌아오지 않지만 그가 남긴 작품들은 해를 거듭할수록 하나둘씩 세상빛을 보고 있다.

지난 2005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만희 감독 회고전을 열면서 타계 30년만에 작품들이 재조명됐고, 2006년에는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전작전(全作展)을 마련했다.

이어 프랑스의 필름보관소 격인 파리 시네마떼끄에서 이만희 감독 회고전을 열었다. 부산영화제가 인연이었다.

그리고 40주기를 맞은 올해 다시 한국영상자료원이 '이만희 감독 40주기 기념전'을 마련했다. 오는 14일까지 '영화의 시간'이라는 타이틀로 시네마테크KOFA(서울 마포구)에서 26편이 무료로 상영된다.

10년만에 다시 아버지 이만희 감독의 영화를 만나게 된 배우 이혜영씨(53)는 "30주기 때만 해도 아버지에 대해 많이 몰랐다. 돌아가신 지 30년이 지난 뒤에 아버지를 영화로 만나게 된 것"이라며 "새롭게 아버지를 발견하고 놀라고 깨닫게 됐다"고 했다.

개성파 여배우 이혜영은 아버지 이만희 감독을 어떻게 기억하고 무엇을 발견한 것일까.

"미완성으로 끝난 아버지의 인생을 살아있는 사람들이 완성시키고 있다"고 말하는 그를 4월의 끝자락 서울 종로의 한 레스토랑에서 만났다.

▲ 배우 이혜영씨는 아버지 이만희 감독에 대해 "틀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움이 영화 곳곳에 묻어난다"고 말했다. 최문수 기자 cms1024@newsin.co.kr

이만희 감독은 1961년 첫 번째 작품 '주마등'부터 1975년 '삼포가는 길'까지 생전 51편의 영화를 만들었지만 현재 26편이 남아 있다. 그마저도 4편은 이번에 40주기 전작전을 준비하면서 찾은 것이다. 아직도 25편은 사라졌거나 누군가 갖고 있지만 발굴되지 않았다.

이 중에서도 이혜영씨가 가장 찾고 싶은 영화는 단연 '만추'.

이씨는 "만추의 시나리오와 촬영 당시 스틸 사진들이 남아 있고 만추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정작 원본 필름은 없다. 신상옥 감독이 북한에 납치됐다가 돌아왔을 때 '만추'의 필름 박스가 그곳에 있는 것을 봤다고 증언했는데 그게 유일한 희망"이라고 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씨에게 위로가 되는 영화가 있다. 지난 2005년 영상자료원을 통해 발굴돼 씨네21이 '그 해 최고의 영화'로 선정하기도 한 '휴일'(1968)이라는 작품이다.

"두 남녀가 나오는 흑백영화인데, 황량하고 불안한 화면에서 만추를 연상했어요. 만추가 이런 느낌이 아닐까 하고. 또 이만희 감독의 대표작으로 평론가들이 극찬해서 위로가 됐습니다."

이만희 감독은 1975년 '삼포가는 길' 편집 도중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그때 이혜영씨는 13살이었다.

그즈음 제작된 영화 '청녀'(1974)를 보고 왔다는 이씨는 "초등학교 때 본 아버지 영화는 뭔가 다르다고 생각했다. 오늘 다시 보면서 '아 정말 대사가 다르구나. 시가 있다'고 생각했다. 장르를 불문하고 기존의 틀을 넘어서는 자유로움이 바로 아버지의 영화"라고 말했다.

당시를 회고하던 이씨는 잠시 눈물을 글썽였다.

"1970년쯤 이미 간경화로 사형선고를 받으셨어요. 그때 고생을 많이 했는데, 영화를 보면서 '아버지가 얼마나 힘드셨을까' 생각했어요. 이 영화를 찍는 카메라 앞에 아버지가 있었겠지 하면서. 아버지를 기억하는 건 좀 힘들어요."

이만희 감독은 코믹, 느와르, 멜로 등 다양한 장르를 섭렵했다. 그 중에서도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과 같은 전쟁영화는 그 시절 27만명이라는 관객수를 기록하며 흥행했다.

"당시 군사정권시절이었지만 아버지는 반공이 아니라 반전을 얘기했어요. 이데올로기를 뛰어 넘어 공산당도 인간이었던 거죠. 어느 영화에서나 휴머니즘이 살아 있어요."

하지만 이념이 대립하던 시절의 휴머니즘은 용공 시비를 불렀고, 이만희 감독은 '7인의 여포로'(1964)에서 북한군을 미화했다는 이유로 40일간 투옥되기도 했다.

"'들국화는 피었는데'(1974)를 보면 들국화가 가득 피어있는 아름다운 장면이 있는데 거기서도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인민군이 나와요. 반공을 외치던 시절이었지만 아버지는 유치하게 그러지 않으셨어요. 아마 아버지는 죽은 뒤 자유로울 것 같아요."

앞으로 10년 뒤 또다시 '이만희 감독의 50주기 전작전'이 열릴 때는 '만추'의 원본필름을 찾을 수 있을까? 이념을 뛰어넘은 이만희의 휴머니즘 정신이 남북의 경계를 허물고 보석을 찾아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다음은 '이만희 감독 전작전' 상영작품과 부대행사.

▲YMS 504의 수병 ▲돌아오지 않는 해병 ▲검은 머리 ▲마의 계단 ▲흑룡강 ▲군번없는 용사 ▲물레방아 ▲잊을 수 없는 연인▲귀로 ▲싸리골의 신화 ▲원점 ▲창공에 산다 ▲휴일 ▲생명 ▲암살자 ▲여섯개의 그림자 ▲여자가 고백할 때 ▲고보이 강의 다리 ▲쇠사슬을 끊어라 ▲04:00-1950- ▲0시 ▲들국화는 피었는데 ▲삼각의 함정 ▲청녀 ▲태양닮은 소녀 ▲삼포가는 길

5월 7일(목) 19:30  '휴일' 상영 후 강의, 허문영(영화평론가)
5월 9일(토) 14:00  '물레방아'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 양택조(배우) 백결(시나리오 작가) 김형석(영화평론가)
5월10일(일) 16:00 '귀로' 상영 후 강의, 정성일(영화평론가, 감독)
5월14일(목) 19:30 특별이벤트 '시나리오로 보는 만추: 만추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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