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고, 서른에 뜻이 확고하게 섰으며, 마흔에 미혹이 없어지고, 쉰에 천명을 알았으며, 예순에 남의 말이 귀에 거슬리지 않게 되었고, 일흔이 되어서는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내 나이 열다섯에는 공부가 참 많이 싫었고, 마흔에는 삶에 대한 온갖 욕심에 미혹되었으니 쉰이라고 어찌 지천명일 수 있겠는가. “공자는 모든 인간이 대등한 인격을 갖고 있다고 여겼다. 그러니 ‘래디컬(radical)’한 진보”라고 말하면서 인문학서당 ‘온고재’를 운영하는 선배가 있다. 선배가 발간한 900페이지에 가까운 두꺼운 책 <이우재의 논어일기>(21세기북스)를 뒤적이면서 내 나이를 생각한다.

이우재 선배는 ‘천명은 주희에 의하면 천도가 유행(流行)해 사물에 부여한 것으로, 바로 사물이 당연히 그러한 까닭이다. 다시 말해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까닭, 즉 내가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소명을 알게 됐다는 말이다’라고 소개하고 이 주장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는 글을 남겼다.

이십대 그 눈부신 시간을 같은 공간에서 꿈을 그린 동기들이 있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서로 살아가기 바쁘다보니 만나는 일도 나누는 일도 많지 않았다. 인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은 참으로 다양한 분야로 진출한다. 학교, 언론, 방송, 정관계, 금융, 기업, 출판, 이게 다가 아니다. 종교인이 된 자도 있고 의료인이 된 자도 있다. 이들이 이제야 서로를 찾기 시작했다. 달려만 가다가 이제는 숨을 고르는 시간이 된 모양이다. 정상에 도달해서가 아니라 ‘달리는’ 그 자체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할 나이가 된 것 같다. 

안타까운 소식이 들렸다. 암이었단다. 믿어지지 않는 소식에 뛰어갔다. 졸업생 40명 중 반은 모인 것 같다. 얼마나 놀랐으면 다들 뛰어왔을까. 걸쭉한 부산 사투리의 이 친구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던가. 그의 결혼식에 갔었다. 우리들 중 좀 늦게 하는 결혼이라 아들을 데리고 찾은 친구들이 많았다는 기억을 한다. 그러고는 특별히 만난 기억이 없다.

작년 여름 미국에서 잠시 귀국한 동기가 이 친구를 만났다고 했다. 모교 캠퍼스 안 은행에서 근무한다는 사실도 이를 통해서 알았다. 미국에서 온 친구는 만나면서 어찌 이렇게 가까이 살고 있는 친구는 챙기지 못했을까. 언제라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냥 그렇게 시간이 지난 것이다. 슬하에 자식이 없다는 사실도 오늘에야 알았다. 영정 사진은 활짝 웃고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그 모습 그대로였다. 강촌으로 MT 갔을 때 그 짓궂은 웃음 그대로였다.

테이블을 길게 이어서 동기들이 한자리에 앉았다. 최근에 좀 만났던 이도 있지만 참 오랫동안 못봤던 친구도 있다. 들리는 소문에 어디어디서 무슨 일을 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지만 지금 상황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고민하면서 살고 있는지 선뜻 물어보기는 쉽지 않은 사람들이 되었다.

여전히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놈이 있고, 조용히 술잔만 기울이는 친구가 있다. 한가운데서 거만하게 폼을 잡는 놈도 있다. 그러고 보니 직장에서 아주 잘 나가고 있다고 들었던 것 같다. 상갓집에서는 차마 물도 마시지 못했던 여학생이 이제는 국 하나 더 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앉아있다.

약속은 하지 않았지만 오래오래 앉아있었다. 긴 시간 만나지 못했지만 아름다운 기억 속 친구의 마지막 길을 오래오래 지켜주고 싶었다. 누군가가 이제 상주도 쉬어야 한다는 말에 툴툴 털고 일어서는데 “상여 멜 사람은 있는가? 우리가 해야 한다면 누가 올 수 있나?”라고 말을 하는 친구가 있다. 예나 지금이나 진정한 리더의 자리를 지키는 이 친구에 대해서 나는 감사했다.

어떤 자리에서든 주인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고 객인 사람이 있다. 특별히 거들먹거리는 일 없이 자리를 지키면서 챙겨야 할 것을 챙기는 이 친구의 존재감은 동기들 마음속에 믿음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본인도 사업을 하면서 마음의 병까지 얻었다는 이야기를 알고 있다. 이런 사람이지만 역시 ‘주인의 자리’에 있음을 확인했다.

입학하고 얼마 후 과대표를 뽑는다고 했을 때 과 사무실 테이블 위에 구둣발로 올라 유세를 하던 그 청년은 지천명 나이에 어울리는 훌륭한 신사가 되어서 이 자리에 있다. 이제 우리의 리더는 더 이상 테이블에 올라 목청을 높이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이 친구가 있어서 참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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