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2년에 완성된 <고지키(古事記)>는 현존하는 일본의 가장 오래된 문헌으로,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천지가 개벽하자 천상계에는 여러 신들이 나타났다. 이 때 땅은 아직 굳지 않아서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기름 같았다. 이에 신들은 마지막으로 태어난 남신 이자나기와 여신 이자나마에게 땅을 단단히 굳혀서 잘 지키라는 명을 내린다. 두 신이 하늘과 땅 사이에 걸려 있는 다리에 올라 창을 밑으로 내리고 휘저은 후 들어 올리니 창끝에서 소금물이 뚝 떨어지면서 섬이 생겼다.

두 신이 섬으로 내려와 기둥을 세우고 궁전을 지은 후 이자나기가 이자나미에게 물었다. 
“그대의 몸은 어떻게 만들어졌소?” 
“내 몸은 만들어졌는데 한 군데 부족한 곳이 있습니다.” 
“내 몸은 만들어졌는데 한 군데 남는 곳이 있습니다. 내 몸의 남는 곳을 그대 몸의 부족한 곳에 집어넣어 국토를 낳고자 하는데 어떻소?” 
“좋습니다.”
“그렇다면 성스러운 기둥을 돌고 행복과 다산을 기도하고 결혼합시다.”

두 신은 기둥을 돌고 만나서 부부가 되는 행위를 한다. 이어서 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지는데, 여하튼 남신과 여신이 결혼해서 14개의 섬을 낳아 현재의 일본열도를 만들어내고, 또한 여러 신을 낳아 국토를 통치하게 한다. 그리고 태양신이자 일본 천황가의 시조신인 아마테라스 오미카미가 태어난다.   

일본의 기원은 땅을 만드는 이야기에서 시작되는데, 이것은 남녀 두 신이 부부가 되는 행위를 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이렇게 남녀의 만남은 모든 ‘시작’의 자리에 존재한다. 그러니 인간지사에 있어서 결혼이란 그 어떤 일보다 중대한 사건이다.

봄이 되고 여기저기서 결혼소식이 들려온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했다고 ‘삼포세대’라는 말까지 만들어진 젊은이들의 결혼 소식은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다 만들어진 몸이지만 한군데 부족한 신과 한군데 남는 곳이 있는 신의 만남을 <고지키>에서는 여성의 성기를 의미하는 ‘미토’와 눈맞춤이라는 뜻에서 전성되어 성교를 의미하는 ‘마구하히’를 합쳐서 ‘미토노마구하히’라고 상당히 에로틱한 표현을 하고 있다.

결혼은 두 사람의 ‘미토노마구하히’만을 의미하지 않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몸이 다 만들어지기까지 그를 둘러싼 개개인의 역사는 결혼 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면서 또 하나의 ‘시작’을 주도하기 때문이다. 사람 사는 거 별반 다를 바 없다고는 하지만 집집마다 가지고 있는 색깔은 참으로 다양하다.

시아버지가 암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형님 주도하에 사남매가 모여서 조용하게 의견을 나누었다. 고령이기는 하나 수술을 결정하고, 부모님께는 이 사실을 어떻게 알릴 것이며 혹시나 큰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자는 이야기까지 나누었다. 다행히 수술은 잘 되었고, 다시 사남매는 모여서 수술비를 분담했다. 수술을 결정하고 퇴원까지 긴 시간이었지만 누구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고 동요하지 않았다. 각자 맡은 바를 다했다.  

이게 시댁사람들이다. 그런가하면 친정식구들은 참 다르다. 자정이 넘은 시간에 눈물로 말을 잇는 못하는 전화를 받았다. 할머니가 편찮으시다는 거다. 위암이 의심되니 다음날 재검진을 해야 한다는 말에 모두가 모였다. 삼촌이고 조카고 눈이 발갛게 되어서 “우리 어머니”, “우리 할머니”라면서 난리도 아니다. 뒤늦게 소식을 듣고 달려온 막내이모는 오는 길에 얼마나 울었는지 도착하자마자 드러누웠다. 정작 할머니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웃고만 계시는데 말이다.

밤새 울고불고 지쳐서 아침이 밝아 막상 병원에 가야할 시간에는 누구하나 일어나지 못하고 “얘들아 나 병원 간다. 아침밥 차려두었으니 챙겨먹어라”는 할머니 말에 벌떡 일어나 어찌할 바를 모른다. 이렇게도 다른 문화 속에서 만들어진 두 사람의 만남이 결혼이다. 결혼은 두 사람의 만남이 아니라 두 문화의 만남이다. 그래서 재미난 새로운 ‘시작’이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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