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무 외과전문의는 노체리안드리 자애병원 의무부원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경기도 가평군 하면에 있는 노체리안드리 자애병원은 사회복지시설 꽃동네 가족들을 치료하는 병원입니다. [박선무의 이야기공방]에서는 박선무 의무부원장이 갈 곳 없는 분들의 병을 진료하면서 보고 느낀 점을 싣습니다. -편집자주

 
꽃동네를 향해 출발하는 아침 시간은 늘 시간에 쫓긴다. 그렇다고 해도 날아갈 수 없는 것이 아침 출근 전쟁이다. 별 다른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니 결국은 열심히 직장을 향해 가는 것이 출근하는 자의 자세다.

10여 년 된 중고차는 겨울이 되자 시동이 단박에 걸리지 않는다. 가속페달을 살짝 밟고서 기름을 뿍뿍 품어주고 나니 매캐한 기름 타는 냄새를 뒤로 토해 낸다. 기럭기럭 크러렁 거리는 자동차 소음은 막히던 길이 시원하게 뚫리는 듯하다.

서울을 벗어날 즈음이면 ‘시사고전’ 시간이 된다. 오늘은 형설지공(螢雪之功)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공부를 열심히 하도록 독려하는 고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눈이 내려 세상이 온통 하얗게 덮여 있으면 정말 희미하게 글자가 보입니다. 반딧불을 이용해서 글을 본 적은 없지만 아마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거짓은 아닐 것입니다. 요즈음 아이들은 상상도 못하는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형설지공 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가 그 뒤에 나왔다. 이렇게 공부하는 이유를 율곡 이이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 공부를 해야 한다.” 많은 세월을 공부한다고 하면서도 당연히 돈을 벌기 위해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예전과는 다르다고 할 지 모르나 오늘날 대부분 공부하는 이유를 안정된 직업을 가지기 위해서, 돈을 잘 벌기 위해서라고 한다. 나 역시 의사가 되는 것이 그리 나쁠 것 같지 않았고, 힘든 경제생활보다는 그나마 나은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짐작이 있었다는 데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의학을 배워도 돈 버는 이야기만 하고, 애들 키우는 혹은 돌보는 공부를 해도 돈 버는 이야기만 하고, 법을 공부해도 돈 잘 버는 법률가만 이야기 대상이고, 역사를 공부해도 돈 잘 버는 졸업생만 이야기 주제가 되고, 졸업해서 하는 이야기는 돈 버는 이야기다. 돈이 어느 정도 있어야 사람 행세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돈 버는 이야기를 한다. 돈을 벌지만 돈을 버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어진다.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일까? 막연하기 때문일까? 좋은 일을 많이 하기 위해서 일까? 

법률을 공부해도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경영을 공부해도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의학을 공부해도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교육을 공부해도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철학, 심리학 등 대학에서 가르치던 소위 학문을 배우는 데는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라고 바꾸어 보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소위 ‘학문’이란 경계가 모호해진 대학의 상아탑을 떠올리면 뭐라 말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학문을 하는 이유에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라는 문구를 칠판에 적어 놓으면 분위기가 바뀔 수 있을까?

그럼 사람답게 살려는 사람은 ‘돈은 어떻게 벌까’라고 고민을 하게 될 것이다. 그것에 대한 답을 우리 사회는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사람답게 잘 사는 사람은 돈이 많은 사람은 아닐 것이다. 돈이 많은 사람이 사람답다고 말하는 것은 좀 실례가 되는 것 같다. 그러므로 사람답게 살려는 사람에게는 높은 가치를 인정해 줘야 한다는 등의 생각이 떠오른다.

공부는 왜 하는가? 사람이 사람 되는 길이 공부하는 것이라는데…율곡 선생님의 말씀이 가슴 깊이 스며드는 날이었다. 나는 사람이 되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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