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지고 있는 옷 중 또 하나 비싼 옷은 한복이다. 아버님 칠순 잔치를 준비하면서 가족이 모두 똑같은 모양과 색상의 한복을 맞추어 입기로 했다. 시집와서 이날까지 새끼 키우랴 집 마련하랴 옷이라면 백화점 마대에서 겨우 하나 건져 입는 나에게 몇십 만원이나 하는 한복이 웬 말인가. 나는 까칠한 소리로 반대했지만, 시누이 동서 모두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막내며느리는 미운털만 박히고 한복을 맞추는 일에 동참했다.

잔칫날 친척들은 시어머니, 시누이, 올케 모두 똑같은 한복을 보고 예쁘다니 부럽다니 난리다. 사촌들에게는 우리의 끈끈한 가족애를 하나의 한복 유니폼으로 뽐냈다. 물론 병풍만한 크기의 가족사진도 찍어서 시댁 거실에 걸었다. 각 집에는 텔레비전 화면보다 조금 작은 가족사진이 배달되었다. ‘우리는 하나’라고 구호를 외치는 것 같은 사진을 식탁 옆에 걸었다.

사진 속 우리 아이 앞니 빠진 것을 보니 아직 학교도 가기 전의 일이다. 그러니 이 일도 10년이 훨씬 지난 이야기다. 분명 그해 설에는 이것을 입고 세배를 드렸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후 행방이 묘연하다. 그래도 이게 결혼 후 마련한 가장 비싼 옷이다.
 
선배 아들 결혼식이라 한복을 입기로 했다. “존경하는 당신의 특별한 날 특별히 예의를 갖추어서 찾아뵙니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의자를 놓고 올라가도 손이 잘 닿지 않는 옷장 위 저 구석에 모셔둔 한복 상자를 꺼냈다. 기침을 콜록콜록하면서 상자 위 뽀얀 먼지를 털었다. 

결혼할 때 여름한복 겨울한복에 두루마기까지 준비했건만 함 받는다고 한번, 결혼식 날 한번, 신혼여행 다녀와서 한번…, 그리고 언제 또 입었나 싶다. 그러고 보니 두루마기는 한번도 입어본 기억이 없다. 잠자리날개마냥 하늘하늘 여름한복은 세월에 삭아서 만지자마자 쭉 찢어졌다. 그래도 아버님 칠순이라 미운털 박히면서 맞춘 한복이 입을만하다. 

미장원에서 머리를 올리고 한복을 곱게 차려입었다. 택시를 타고 우아하게 가려고 했는데 30분을 기다려도 오지 않아서 결국 버스틀 탔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 보기도 민망한 배꼽티니 핫팬츠니 희한한 옷들도 많건만 왜 나만 남의 시선이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식장에서도 주눅이 들만큼 사람들이 한마디씩 던진다. 친척도 안 입고 오는 한복을 입고 네가 뭔데 입고 왔냐는 분위기다. 한복은 이제 결혼식장에서도 특별한 옷이 되었다. 이날 결혼식 뒷이야기를 담은 SNS에 ‘고선윤 한복과 시아버지의 가발’이 화제로 올랐다.

우리 생활 속에서 한복은 이렇게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내가 어릴 적만 해도 엄마가 학교에 오실 때는 항상 한복차림이었다. 할머니는 집에서도 한복을 입고 계셨다. TV 속 영부인도 한복차림의 단아함으로 기억된다. 우아하고 화려한 한복이 화보집을 장식하고, 드라마 속 한복의 아름다움은 한류 붐과 더불어 전 세계인들을 감탄케 했다. 그럼에도 생활 속에서 멀어진 사실만은 부정할 수 없다.

우리에게 한복이 있다면, 일본에는 ‘기모노(着物)’가 있다. 워낙 고가이고 활동하기 불편한 옷이라 일상생활 속에서는 잘 볼 수 없지만 결혼식, 장례식, 졸업식, 성인식 등 특별한 날에는 지금도 많이들 입는다. 미혼여성들만이 입을 수 있는 ‘후리소데(振袖)’, 가문(家紋)이 그려져 있는 기혼여성의 ‘도메소데(留袖)’, 상갓집에서 입는 ‘모후쿠(喪服)’, 방문할 때 입는 ‘호몬기(訪問着)’ 등등 기모노는 성별만이 아니라 입는 사람의 사정에 따라서 다양한 종류가 있다. 

까다로운 건 이것만이 아니다. 기모노는 T자 모양 한 장의 평면이라 입을 때마다 그 사람에 맞게 잘 조정해서 오비(帯, 허리띠)를 둘러야 한다. 이른바 입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 특별한 교육을 받지 않고는 혼자서 입을 수 없으므로 옷을 입혀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기모노를 입혀주는 자격증을 가진 사람을 ‘기쓰케시(着付師)’라고 하는데, 학과와 실기시험에 합격한 국가자격 소유자다. 실무경력 5년이 지나야 1급 수험자격이 주어진다니 상당한 시간을 요하는 자격증이다. 일본에는 이것을 위한 학원이 다수 있고, 좋은 집안 규수들의 교양으로 또는 직업을 가지기 위한 수단으로 적지 않은 수강생들이 있다.

여하튼 일본의 기모노는 쉬운 옷이 아니다. 그 가격도 만만치 않다. 성인식 때 아가씨들이 입는 후리소데는 100만 엔을 호가한다고 들었다. 입는 것도 쉽지 않다. 대부분이 자격증 소유자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20~30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 기모노차림의 사람을 보는 일이 우리나라에서 한복을 입은 사람을 보는 일보다는 훨씬 많다. 특히 젊은 아가씨들이 기모노를 입는 경우는 우리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다. 정월초하루 신사를 참배하는 사람 중에서도 찾아볼 수 있고, 성인식은 물론 친구의 결혼식, 졸업식에서도 화사한 그들의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서울의 모대학교 졸업식에 갔더니 놀랍게도 기모노를 입은 학생이 있었다. 일본사람이냐고 물었더니 재일교포라고 했다. 졸업식에 입기 위해서 일본에서 가지고 온 모양이다. 모두가 예쁘다고 한마디씩 건네고 같이 사진을 찍기도 한다. 그녀 앞에서 ‘반일’을 말하고 비난하는 이는 없었다. 우리 학생들이 그만큼 성숙해진 모양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이날 한복을 입은 졸업생은 한명도 보지 못했다. 나 역시 한복을 입고 갈 엄두도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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