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길홍 고려대 의과대학 교수
대한민국 경제성장률은 재벌 성장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업경영성과 평가기관인 ‘CEO스코어’에 따르면 삼성ㆍ현대차ㆍSKㆍLG 4대 그룹이 2013년 창출한 부가가치총액이 총 140조2000억 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각각 4.73%, 2.61%, 1.34%, 1.03%로서 총 9.71%에 달하며 전년 대비 3.7% 증가했다. 특히 삼성ㆍ현대차 그룹의 매출액 합계는 2012년 476조원으로 GDP의 35%를 차지해 2008년의 23.1%에 비해 급성장하였다.

비정상적으로 불균형한 경제 산업구조로서 경제성장률 증가는 부익부빈익빈의 심화를 의미하게 됐고 양극화가 심각한 사회병리가 되었다. 이에 따라 서민층의 구매력 위축으로 사상 최악의 내수침체를 겪고 있다.

이는 자본과 사람 간 수익배분의 근본 구조적 문제이다. 수익금의 ‘낙수효과’를 기대하며 재벌기업에게 수출지원, 감세 등 제도적으로 정책적 특혜를 주었으나, 성과급, 주주배당금, 고용, 시설 및 R&D 투자, 세금, 저소득층 복지 지원 등 어느 것으로도 충분히 사회에 환원하지 않았다.

김대중정부는 외환위기 극복을 위하여 위기의 재벌들에게 서민세금과 금붙이 등 쌈짓돈을 모은 공적자금을 긴급 수혈하여 회생시켰다. 이명박정부는 2008년 세계 경제위기 와중에도 서민 물가상승을 담보로 인위적인 고환율 정책을 시행하여 재벌들이 수출로 사상 최대 매출을 올릴 수 있게 하였다. 이명박정부 5년간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2.9%로 저조했지만 삼성그룹 매출액은 51.7%, 현대차그룹은 76.2% 증가했다. 또 이 기간 세액공제혜택을 받아 삼성전자의 경우 무려 6조7113억 원으로서 우리나라 전체 기업 세액공제금액의 16.7%에 달했다.

재벌기업들이 전쟁과 같은 세계시장 경쟁에서 승리하여 국가 브랜드 가치를 높인 공이 인정되지만 혼자 한 것이 아니라 국가ㆍ국민적 후원과 함께 한 것이다. 하지만 막대한 수익금은 사내유보금으로 비축되며, 내수부양에 이은 경제활성화에 기여하지 않고 이자 수익, 부동산 투기, 총수일가 부당이익 제공 등으로 부익부빈익빈만 심화시켰다. ‘CEO스코어’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10대 그룹의 금융사를 제외한 상장사의 사내유보금은 과세방침에도 꾸준히 증가하여 537조8000억 원이었다. 이제 기업과 개인 소득격차는 OECD 최고이다.

‘경향신문’이 분석한 국내 500대 기업의 노동소득분배율(인건비/영업이익 + 인건비 x 100)을 보면, 2012년 53.7%였다. 20대 기업의 경우 49.9%로 감소하였다. 우리나라 대기업의 정규직 임금 수준은 국민소득 대비 선진국보다 높으나 인건비 절감을 위하여 비정규직 비율을 대폭 늘리는 등 대기업일수록 총부가가치에서 노동자 인건비 비율이 더 낮다. 반면 프랑스를 비롯한 선진국의 경우 노동소득분배율이 60~70%에 이른다. 즉 우리 기업문화는 기업 수익 증가가 노동자 소득 증가로 충분히 이어지지 않는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대기업ㆍ중소기업 하청업체, 정규직ㆍ비정규직 간의 임금격차이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30대 재벌 그룹 취업자는 전체의 5%인데, 나머지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 취업자의 인건비는 대기업 정규직의 절반도 안 된다. 국제노조총연맹에 따르면 한국 노동자의 권리보장, 삶의 질, 행복지수는 세계 최하위권이다.

더욱이 재벌기업들은 수익 극대화를 위하여 중소기업의 성장 모멘텀을 고사시키고 있다. 중소기업은 우리나라 전체 기업 중 99%를 차지하고 종업원 수도 88%에 달한다. 따라서 중소기업이 경제성장의 조연이 아니라 주연이 되어야 한다. 대기업의 종속변수가 아니라 독립변수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대기업은 절대적 '갑'의 지위를 이용하여 윈ㆍ윈이 아니라 착취적 기업 관행과 문화로 일관하며 단가 후려치기, 대금결제지연 등 온갖 불공정 관행으로 하청업체에 딱 망하지 않을 만큼만 돈을 준다. 따라서 중소기업은 인건비를 충분히 줄 여력이 없다. 또한, 정정당당한 M&A 대신 핵심인력 스카우트를 통한 기술 빼가기 등으로 중소기업의 생존마저 위태롭게 한다. 심지어 경쟁력 있는 잠재적 경쟁자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흡수하거나 시장에서 퇴출시킨다.

재벌기업의 막대한 현금은 세계 초일류기업을 향한 R&D 투자 대신 근시안적 이익을 쫓아서 문어발식 확장에 사용되며 주로 자영업자와 구멍가게 등 골목상권과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몰락시켰다. 어묵, 순대, 떡볶이 등은 중소기업도 위생적으로 맛있게 만들 수 있다. 영화상영관의 독과점으로 보고 싶은 영화보다는 재벌에게 돈 벌어 주는 영화만 봐야 한다.

재벌기업의 성장에는 편법, 탈법, 불법도 한몫한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중소기업과 서민들의 몫이다. 탈세, 회계조작, 배임, 횡령, 비자금조성, 불공정 거래, 독과점 담합, 주가 조작 등 경제사범은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사회 지도층일수록 엄격히 처벌한다. 시장경쟁논리가 아니라 불공정한 방법으로 시장지배력을 확장하는 것은 법에 따라 엄단해야 한다.

또 최소한의 지분으로 전 계열사에 지배적 경영권을 행사하고 기업의 자산을 재벌 일가의 개인재산처럼 유용ㆍ횡령하면서도 경영 실패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는다. 때로는 경영손실을 서민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

재벌들은 다른 주주들의 권익을 희생하며 기업의 부를 소위 ‘로열패밀리’와 그 가신 등 극히 소수에 몰아주기 위하여 상속세 탈세와 불법을 동원하며 경영권을 세습한다. 경영권을 적법하게 세습하려면 기업을 공개하지 않으면 된다. 기업공개 후 기업은 자기 개인회사가 아니라 사회적 자산이다. 상장기업의 상속ㆍ증여세 탈세 등 편법 경영권 승계는 주주들에게 사기 치는 것이다. 또한, 기업의 미래는 CEO의 능력에 좌우되는데, 능력 있는 CEO는 총수 일가라는 극히 한정된 인력풀(pool)에서 선임하는 것보다 전문경영인이 더욱 바람직할 수 있다. 그리고 탈세는 나라 운영자금을 도둑질하는 중범죄이다. 절도범의 최고 형량을 액수에 비례하여 선고해야 한다. 재벌 규제가 아니라 범법행위를 처벌하자는 것이다. 대한민국에 소중한 것은 기업 총수일가가 아니라 기업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법은 부자에게는 관대하고 빈자에게는 가혹하다.

일부 보수언론과 인사들은 앞장서서 재벌들이 우리나라를 떠나지 않도록 세금 감면, 규제 완화, 법치주의 확립, 노사관계 등 특혜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슈퍼부자들이 온갖 불법을 저질러도 초법적 특혜와 대접을 받으며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나라는 세계에서 현재 대한민국뿐이라는 것은 그들 자신이 더 잘 안다. 법치주의와 공정한 시장경쟁 질서가 확립된 선진국에서는 탈세와 비자금 조성이 중범죄로 처벌받고 독과점과 담합이 적발되면 기업이 망할 정도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법인세, 소득세, 자본이득세도 한국보다 훨씬 높다.

재벌기업에 정책적 특혜를 주며 수익성을 극대화시켜 준 것은 ‘낙수효과’를 통한 내수부양을 기대한 것이었지 ‘분수효과’의 잠재력마저 고사시키라는 것이 아니었다.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면 소비가 위축되어 내수시장이 침체되고 경제성장률이 저하된다. 실제 1999년 외환위기 이후 노동소득분배율의 지속적인 감소와 더불어 경제성장률이 하락하고 있다. 2012년에 들어서며 경제성장률이 세계 순위 100위권인 2%까지 하락했다. 경제성장률 둔화는 소극적인 R&D 투자, 중국ㆍ인도의 약진, 엔저, 세계적인 디플레로 수출경쟁력이 약화되며 더욱 심화되고 있다. 내수ㆍ수출 부진, 경기침체, 경제성장률 저하, 고용ㆍ투자 감소, 소비위축 심화의 악순환이다.

지금 체감경기는 IMF 시절보다 더 나쁘며 해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현재 가계부채는 사상 최대이다. 저소득층 자제들은 정부의 학자금 융자 재원이 한정되어 대부업체에서 30% 전후의 고금리 대출로 학비를 충당한 후 빚더미를 짊어지고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다. 청년들은 장기 경제 불황으로 일자리가 없다. 대기업 취직은 하늘의 별따기이다. 공무원은 자리가 한정되어 있고 중소기업도 재정형편이 팍팍하여 고용ㆍ임금을 늘릴 형편이 안 된다. 요식업 등 자영업은 시장포화가 극에 달하여 수년 내에 대부분 망한다. 운이 좋아서 대기업 손자회사 하청업체의 재하청업체라도 되어 재벌이 흘리는 국물을 먹으며 연명하지 않으면 안정적인 사업기반과 수익구조를 자신하기 어렵다. 아니면 감방 갔다 오더라도 사기 치는 것 외에는 자력으로 경제적 신분상승이 불가능할 정도다. 우리나라 출산율이 세계 최하위인 것은 낳아서 키울 돈이 없는 이유가 크다.

단지 청년들에게 국한된 이야기만은 아니다. 명예 퇴직한 장년층도 100세 시대에 여생을 품위 유지는 고사하고 호구지책을 어떻게 마련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세계 최고인 것 같다.

경제 활성화 대책은 먼저 중소기업과 저소득층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ㆍ금융정책이다. 즉 과거에 위기의 재벌에 그랬던 것처럼 공적자금의 긴급 수혈이다. 재원은 재벌 사내유보금에 대한 세율인상이다. 또 한편으로 재벌기업은 고용, 시설 및 R&D 투자, 세계 초일류기업 성장, 수익 증대, 고용ㆍ투자 확대의 선순환 생태계를 창조하여 그 동안의 국민적 지지에 보답하는 것이다.

다음 자본과 장인정신에 대한 수익의 합리적인 분배에 따른 수출과 내수,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이 건강한 경제 펀더멘털을 위한 제도적 관행이 되어야 한다. 독일은 2012년 기업의 99.7%, 종업원 수의 60.8%가 중소기업이며, 기업 전체 매출의 38%가 중소기업에서 발생하였다. 중소ㆍ중견기업으로서 생산품목이 세계시장에서 '히든 챔피언(Hidden Champion)'인 강소기업이 전 세계 히든 챔피언의 합보다 많은 1600여 개이다. 일본만 해도 220여 개이나 우리나라는 26개에 불과하다. 독일이 유럽경제위기에도 세계 경제의 주역으로서 무역수지 흑자 세계 1위를 달리는 것은 중소기업들이 세계시장의 리더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도전도 아직 역부족이다. 그 중심에는 장인(Meister) 제도가 있다. 마이스터는 평생직장에서 수십 년간의 현장경험으로 축적한 노하우를 가진 기술의 달인이다. 이들은 세계 최고 수준인 독일 제조업의 혁신적 기술력의 원천이다.

핀란드 경제는 수 년 전까지 휴대폰 시장 세계 부동의 1위, 핀란드 GDP의 4분의 1을 차지하던 글로벌 대기업 노키아가 스마트폰 경쟁에서 패배하면서 위태로워졌다. 하지만 일반적인 예상을 깨고 탄탄한 벤처기업과 중소기업의 경쟁력으로 지금은 노키아 몰락의 영향을 이미 거의 극복하였다.

먼 옛날 ‘국제시장’에서는 열심히 일하면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으나 지금은 퇴직금 투자한 것 날리지 않으면 다행이다. 구조적 양극화의 벽이 너무 높고 견고해서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다. 신봉건주의 사회가 되어 재력가는 왕족ㆍ귀족이고 서민은 상놈이 되는 것이다.

저작권자 © 뉴스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