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부인의 수다는 남편 흉보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새해라 모처럼 가족이 음악회를 갔는데 시작과 동시에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 남편이 급기야 코를 골기 시작했다는 거다. 아뿔싸 흔들어 깨웠더니, 무안해서 한다는 소리가 “다들 잘 하고 있는데 지휘자는 왜 있을까”란다. 혹시나 누가 들을까, 다독다독 다시 재웠다는 이야기다. 

두 딸이 다 바이올린 연주자라 악단의 단원으로 활약하고 있는데, 그 아버지가 이런 말을 하니 ‘무식한 이 남자를 어떻게 해야 하나’ 머리에서 열이 나는 음악회였다고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음악당을 나오면서 “히딩크 없이 월드컵 4강이 가능했겠어”라고 쏘아붙이고 아직까지 말없이 살고 있다는 뒷이야기까지 이어졌다.

우리 사회에서 ‘리더의 부재’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가정에서 아버지의 자리는 작아졌고, 학교에서도 선생은 학생 눈치 보기 바쁘다. 개인의 권리가 존중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만큼 어른이 어른으로 대접받기 어려워졌다. 어른이 어른 대접받지 못하는 것에는 여러 복합적 요인이 있겠지만, 오랜 시간 어른이 어른으로, 리더가 리더로서 그 역할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최근 우리 주변에서 발생한 참혹한 대소사의 중심에는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리더가 있었고, 그들을 보면 견딜 수 없는 인간에 대한 비애마저 느낀다. 이런 세상을 살고 있으니, ‘지휘자가 왜 필요하냐’는 말이 나오는 것도 그럴 만하다.

작년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세월호 참사, 윤일병 폭행 사망 소식은 자식을 둔 부모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일들이었다. 체육관 붕괴, 요양병원 화재, 헬기 추락사고 등 많고 많은 사건사고 앞에서 ○○전문가들은 행동 없는 말만 늘어놓았고, 관료는 무능했고, 정치인은 무책임했다. 그래서 더 갈망했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진정한 리더를.

2014년 우리는 3명의 리더를 만나고 열광했다. 그 하나는 7월에 개봉한 영화 <명량>의 이순신이다. 1760만 관객이라니, 5000만 인구 3명 중 한명이 이 영화를 본 셈이다. “충(忠)은 의리다. 의리는 왕이 아닌 백성에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충은 백성을 향하는 것이다”는 대사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리더의 모습을 찾았다. ‘이순신 신드롬’은 여기서 비롯된 것일 거다.

그 다음은 8월 한더위에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고 겸손하고 검소한 행보를 이어가면서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섬김의 리더십, 자신을 낮춘 소통과 화해의 리더십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었다. 천주교 신자들만이 아니었다. 무책임한 관료주의적 리더들에게 상처받은 온 국민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지고 떠났다.

세 번째 인물은 정도전이 아닐까 생각한다. 작년 상반기 KBS에서 방영한 정형민 극본의  <정도전>은 19%에 이르는 최고 시청률을 자랑했다. 정도전은 부패한 정치권력을 뒤엎고 ‘민본주의’를 부르짖는 위민(爲民)의 대의정치를 실현하려는 모습을 담았다. 사람들은 조선건국의 정쟁 속에서 현 정치를 비추어보고 진정한 리더의 모습을 찾고 싶어 했다.

다사다난했던 한해, 험한 일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우리는 각 분야 리더들에 대한 불신 그리고 실망만 가득했다. 그래서 존경할 수 있는 리더를 갈구했다. 그것이 현실이든 가공이든 열심히 찾았다. 그리고 열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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