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무 외과전문의는 노체리안드리 자애병원 의무부원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경기도 가평군 하면에 있는 노체리안드리 자애병원은 사회복지시설 꽃동네 가족들을 치료하는 병원입니다. [박선무의 이야기공방]에서는 박선무 의무부원장이 갈 곳 없는 분들의 병을 진료하면서 보고 느낀 점을 싣습니다. -편집자주

 
퇴근하는 길, 자연의 향기가 차창을 넘어 밀려 들어왔다. 자랑이 아니라 출발부터가 시골 산중이다 보니 사계절을 자연과 함께 보낸다. 수능시험이 끝난 지 며칠 되지 않아 그런지 교육방송은 수능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드디어 오늘은 진로를 정하는 데 아주 전문가들의 논조가 열렬하다. 과연 오늘날 이공계가 전도유망할 것인가? 그럼 인문계열은 희망이 없을 것인가? 소위 삶의 빛을 볼 수 있다고 하던 전문가, 즉 법조인, 의료인 등에 대한 전망 등을 놓고 전문가다운 해석을 하고 있었다.

의료인에 대한 이분들의 해석은 이랬다. 의료 전문가가 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는 선택하지 말라는 것이다. 전문가로서 역할을 하는 것에 만족을 할 수 있다면 한번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간단했다.

의료인으로서 법조인을 평하기 어렵고, 그들의 고민을 알 수 없다. 법조인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많은 이해관계, 은원관계에 개입하여 해결하고자 한다. 그러나 질병을 다루는 의료인들은 자연과의 질서가 유지되지 않아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잘되기 위해, 잘 보이기 위해 힘쓰는 의료행위와는 다른 것이 질병과의 싸움을 준비하는 의료인의 모습이다. 가벼운 질환이든, 아니면 손쓸 수 없는 중병을 앓든 의사의 손길이 필요한 것은 의사가 무엇을 해 줄 수 있다는 기대도 있겠지만 그들의 작은 노력이 자신들과 함께 한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의료가 될 수 있다.

언론에서는 의료분쟁, 마찰, 의료기관에서의 난동, 때로는 의료인의 부적절한 언행이 문제로 떠오른다. 진료에 불만을 가지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의료활동의 결과에 분노하기도 한다. 나 또한 되돌아보면 얼마나 부족한 의료인이었던가, 하루하루 반성의 나날을 보내게 된다. 이런 의료인의 심적인 번뇌가 오히려 세상 많은 사람들의 지탄이 되어가는 현실, 의료활동의 위축, 쇠퇴, 기술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이 발전하는 기술보다 잃어버리는 것은 없는지 생각해본다.

자연은 우리가 벗어날 수 없는 순환의 고리를 가지고 있다. 대자연의 순리를 인간의 힘으로 거스를 수는 없다. 그 순환의 고리에 의료라는 아주 작은 재주가 개입하고 있는 것이다. 병원에서 어떤 환자의 임종을 맞이하게 된 경우가 있었다. 그 보호자는 나에게 물었다.

“최선을 다하였는가”라고.

나는 생각이 많았던 탓인지 최선이란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소위 의료인의 마지막 최선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연의 그 무엇을 변화시킬 수 있는 최선을 말하는 것인지가 궁금했다. 심장이 안 좋았고, 폐질환을 앓고 계셨던 분이 복막염에 걸려 수술을 받게 된 것이었다. 지나고 나면, 모든 것이 아쉬운 것뿐이라고 하시던 어른들의 말이 그렇게 주마등같이 스쳐지나간 적이 없었다.

그 환자의 임종과 보호자들의 넓은 마음이 오히려 나를 위로해 주었다. 앳된 젊은 의사를 보던 그 부인의 눈매가 자신과 오랜 세월을 같이 한 분의 임종 앞에서 가족들을 다독거리는 모습에 아직도 잊을 수 없는 보호자로 남아 있다.

지렁이처럼 고불고불한 산간 도로를 벗어나자 얼마 전에 새로 곧게 뚫린 37번 국도가 나타났다. 한적한 곳이라 달리는 자동차를 찾아보기 힘든 곳이다. 속도에 욕심이 나는 곳이기도 했다. 계기판의 속도계가 나도 모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가파른 고갯길을 넘어서고도 남들은 관심을 가지지 못하는 울적한 이야기를 머릿속에 담고 있다 보니 속도를 줄이는 생각도 못했다. 뒷골이 시큰거렸다. 소심한 생각에 얼른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자 금방 떨어지는 속도계는 과속 감시카메라를 비웃듯이 제한속도 밑으로 잽싸게 숨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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