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시스헬스 신태식 논설위원.
"인생은 '우리가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감동적인 순간을 보냈느냐'로 측정된다."

이 말은 102세의 나이에 노년의 철학(Philosophy for Old Age)을 정의한 죠지 칼린(George Carlin)의 말이다.

경제가 나아지고 의학이 발전함에 따라 평균수명이 증가하면서 우리는 급격한 고령사회를 맞이하게 되었다.

2011년 우리나라 40세 남녀의 평균 기대여명은 42.36년으로 55세 은퇴를 가정한다면 이후에도 30년을 더 살아야 한다는 조사가 나왔다.그것도 소득 없이......

우리는 어떤 노후를 맞이할 수 있을까?

지난해 10월 호주금융연구센터(ACFS)가 발표한 '멜버른-머서 글로벌 연금지수'에 따르면 우리나라 종합지수는 44.7점으로 조사대상 18개국 가운데 16위(D등급)에 그쳤다.

이 등급은 노후보장체계의 필수 부분이 부재하거나 주요 약점이 존재하여 제도개선을 하지 않을 경우 효율성과 지속가능성이 의문시 된다는 평가이다.

상위권(A-B) 국가인 덴마크, 네덜란드, 호주의 경우를 살펴보면 퇴직연금제도가 성공적으로 정착되어 공적연금의 부족한 노후소득보장 기능을 충실히 보완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OECD 선진국의 경우 일반적으로 '공적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으로 구분되는 3층 구조의 연금체계가 훌륭하게 정착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어떤가?

1988년 국민연금제도가 시행되면서 공적연금은 안정화 단계에 들어섰지만, 퇴직연금은 2005년 12월에 근로자 퇴직일시금제도를 연금제도로 전환하는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을 시행하면서 이제 겨우 시행 8년을 맞는 초기 단계에 있다.

그러다 보니 퇴직연금의 경우는 사업장의 낮은 가입률과 수급권 보호장치의 미흡 그리고 퇴직연금 지배구조의 비효율성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아직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퇴직연금 운영현황을 살펴보면, 2013년 6월 말 현재 적립액이 70조4,526억 원으로 나름 큰 성장을 이루었지만, 전체 사업장 중 226,994개인 14.1%만 가입하였으며, 그나마 10인 미만의 소규모사업장은 9.9%로 500인 이상 사업장의 가입률 93.6%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우리는 이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실 퇴직연금은 대기업 종사자보다 영세 중소기업 근로자에게 더욱 필요하다.

아마도 그들에게는 연금만이 유일한 노후의 대책일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근로자를 고용하고 있는 중소기업은 퇴직연금의 도입을 주저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과거 퇴직일시금제도와 달리 퇴직연금은 연금재원의 사외적립과 수수료지급으로 당장 비용이 발생한다.

즉, 영세한 기업일수록 당장의 비용부담이 경영난을 가중시켜 오히려 근로자의 소득기반인 사업장의 존립에 위기가 오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둘째로는, 중소기업의 인사, 노무관리의 역량이 취약하다는 점이다.

사용자가 퇴직연금제도를 운용하기 위해서는 제도의 설계, 근로자 동의와 규약신고, 퇴직연금사업자 선정, 부담금 납부와 적립금 운용 등 상당한 시간과 전문성이 요구되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비해 전문적인 인력의 수급에 절대적으로 불리한 입장이다.

세 번째 이유를 살펴보자, 현재 우리나라의 퇴직연금제도는 계약형 구조로 연금의 관리, 운영을 민간 금융기관에 일괄 위탁하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계약형 구조는 중소기업사업장의 퇴직연금제도 도입을 어렵게 하는 주요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윤추구가 목적인 금융기관 특성상 기여금 규모가 작고 관리비용이 높은 중소기업사업장에 대해 디마케팅(demarketing) 전략을 취하거나 높은 수수료를 요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퇴직연금제도는 사용자와 근로자 간의 합의에 따라 도입되는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의 특성상 연금의 운영에 관한 의사 결정은 사업주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노사합의 과정은 형식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왜냐면 주거래은행의 대출만기 연장, 우대금리 및 대출거래 제공 등의 불건전(조건부)가입권유 등 금융기관의 이익추구에 따른 영업활동은 퇴직연금의 실제 수익자인 근로자가 배제된 채 사용자의 입장에서 제도도입이 이루어지게 되는 요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한 대안은 없을까? 우리는 퇴직연금에 대한「기금형 제도」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기금형 제도'는 기업과 별도로 독립된 퇴직연금운영기구를 설립하며 이 운영기구가 퇴직연금의 전반적인 운영업무를 수행하는 제도이다.

그러므로 퇴직연금의 운영에 있어 근로자의 이익을 추구하기보다는 금융회사 또는 사용자의 이익을 추구하는 '대리인 문제'의 발생을 예방할 수 있다.

OECD 국가에서는 이러한 기금형제도가 일반화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기금은 사용자, 노동자 단체의 공동출자로 설립되며, 연금의 주요 의사 결정은 노사동수의 '퇴직연금위원회'를 기금 내에 설치하여 제도운용에 관한 전반적인 결정을 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기업을 제외한 중소기업사업장에 대해서는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기금설립의 주체가 되거나 재원마련이 쉽지 않다.

또한, 영세한 조직 내에서 노사동수의 '퇴직연금위원회'의 설치도 비현실적이다.

그러므로 이들 중소사업장을 연결하는 '공적 기금형제도'의 도입을 검토하여야 한다고 판단된다.

이 제도를 도입할 경우 궁극적으로 공정한 제도운용을 통해 현행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으며, 낮은 수수료로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중소기업의 재무, 행정적 부담을 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공적 기금형제도'는 많은 영세근로자의 연금가입을 가능케 할 수 있으며, 기금의 공적관리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이룰 수 있어 비록 적은 연금을 받는 근로자에게도 문화, 건강, 의료, 장례 등 필요한 서비스를 저 비용으로 제공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전체인구의 약 14%(712만 명)를 차지하는 베이비붐 세대가 본격적으로 은퇴하는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들은 지독한 가난 속에 태어나 1인당 GNP를 2만 달러로 끌어올린 장본인이다.

평생을 가족과 사회에 희생을 강요받으며 자신은 굶주리면서도 부모와 자식을 위해 일한 이들이 아닌가?

넉넉한 살림으로 오랫동안 풍부하게 사는 노후는 기대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최소한 이들에게 '그동안의 삶이 헛되지 않았노라'는 감동만은 남겨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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