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헬스】 기자 = 보건의료시장은 일반적인 시장과는 달리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경제학 이론대로만 작동하지 않는 특수한 분야이다.

개인에게는 다른 무엇보다도 가장 소중한 비가역적인 '생명'을 다룬다는 점이 그 한 원인이고, 공급자(의사, 약사와 같은 보건의료서비스의 공급자)와 소비자(환자) 사이에 엄연한 지식의 비대칭성이 존재한다는 점이 또 하나의 원인이다.

과거에 비해 보건의료시스템이 비교적 잘 갖추어져 있는 요즈음에도 병원에서 포기한 환자들의 경우 잦아드는 자신 또는 가족의 생명을 되살리기 위해 허황된 광고나 소문에 쉽게 매달리게 되고, 그럴 경우 치료(?)에 드는 비용은 가히 상식선을 벗어난 거액일 때가 많은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따라서 소비자들은 흥정하기 어려운 자신의 건강을 목적으로 공급자들과 합리적으로 거래하고 자신의 건강 상태와 그에 따른 치료 방법과 비용에 대한 적절한 정보를 취해야 한다.

또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최소한의 건강권을 보장받기 위한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개인을 대신하는 누군가가 필요한데 이를 '선한 대리인'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러한 '선한 대리인'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하여 사회보험제도를 도입하였고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설립, 운영하고 있다.

전 국민의 공평한 건강 보장을 위하여 공보험이 도입됨으로써 우리나라 보건의료시장은 공급자-보험자-가입자(소비자)간 삼자계약구조가 형성되었고, 비록 저부담, 저보장의 형태로 시작되었지만 괄목할만한 성장을 해 온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성장과 함께 건강보험의 질적, 양적 규모도 더불어 커졌으며 2000년 지역과 직장 의료보험의 통합으로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단일보험자로서 사회로부터 절대적인 권한을 위임받았으니 ‘선한 대리인’으로서의 그 역할이 실로 막중하다 할 것이다.

하지만 최근 경제성장을 훨씬 뛰어 넘는 우리 국민의 건강에 대한 요구 및 다양한 수요증가와 인구노령화로 인한 보건의료비의 가파른 상승은 건강보험공단의 '선한 대리인'으로의 역할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가입자 중 보건의료서비스의 혜택이 불필요한 상당수는 마치 조세처럼 빠져나가는 보험료에 불만을 가지고 있으며, 실제 혜택을 받고 있는 가입자들에게도 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으로 인해 불만이 있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공급자들의 불만은 가입자들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욱 크다.

세련되지도 않고 효율적이지도 못한 간섭과 참견은 공급자들로 하여금 민간의료보험 도입을 주장하도록 할 만큼 불만을 증대시키고 있으며 의료계에서는 단일보험자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자신들을 옥죄고 있다고 여기고 있다.

어쩌면 공단이 단일수가계약을 유형별수가계약으로 바꾸어 협상의 유리한 고지를 점한 것처럼 공급자들도 보험자를 다양화시켜 경쟁을 시키려 하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른다.

이와 같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아직 건강보험의 '선한 대리인'으로서의 역할에 커다란 기대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기대는 현 정부의 효율 중심의 파고 속에서도 건강보험의 민영화 포기를 유도해 낸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 사회보험은 비록 적지 않은 논쟁들 속에 놓여 있지만, 전 국민의 공평한 건강안전망 구축이라는 측면에서는 단지 보완할 대상들이지 결코 부정되거나 뒤집혀서는 안 될 시스템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국민의 '선한 대리인'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안고 설립된 본래의 목적을 결코 잊지 않고 스스로 사회의 '정실주의'와 '부패', '비효율'에 대한 의심스러운 눈초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가입자들에게는 공단이 자신들을 지켜 주기 위한 '선한 대리인'이라는 믿음에 실망을 주어서는 안 될 것이며, 공급자들에게는 업무상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행정적 오류를 가지고 그들을 번거롭게 하거나 마치 부도덕한 단체로 몰아서는 안 된다.

가입자들에게 보험료율 인상을 설득하고, 공급자들에게 수가 동결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봉급인상률도 같은 논리선상에 있어야만 한다.

4대보험 통합징수권한까지 가지게 될지도 모르는 거대한 공룡 단일보험자인 국민건강보험 공단의 '선한 대리인'으로서의 역할은 우리 사회에 커다란 선물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미 우리 사회에 보충형 민간의료보험이 사실상 도입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같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조직만을 보호하기 위한 '정실주의'와 실제 자신들의 역할에 대해 책임지는 이는 없는 '부패'와 '비효율'만이 난무한 또 하나의 옥상옥이 된다면 국민마저 포기하는 아픔이 될 것이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공적 사회보험에 대한 포기는 건강보험공단 직원들에게만 불행이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로부터 '선한 대리인'을 빼앗아 가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선한 대리인'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기대와 의심의 눈초리를 가지고 건강보험공단의 운영은 물론 보건의료제도 변화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아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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